종교가 갑작스레 '화두'가 됐다.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아프칸 인질 사건과 최근 출간된 도킨스의 종교비판서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이 이 화두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는 종교적 근본주의 내지는 종교 자체에 대해 새삼 성찰해볼 것을 요구한다. 그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 가운데 공산주의와 종교, 보다 정확하게는 '종교로서의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처갓집에 점심을 먹으러 건너갔다가 우연히 읽게 된 해외서평인데,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란 폴란드 책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종교로서의 주체사상'에 관한 기사도. 따지고 보면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들이긴 하나 그러한 비판이 함축하는 바는 더 음미될 필요가 있다. 가령, 나로선 '공산주의로서의 종교', '주체사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사실 이런 타이틀의 책들도 이젠 나옴 직하지 않을까?). 

조선일보(07. 07. 28) 공산주의는 종교를 패러디한 권력의 산물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Religiopodobny komunizm)
마르친 쿨라 지음|크라코프 노모스|181쪽|32즐로티

구 소련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레니나(Lenina), 니넬(Ninel) 등의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레니나는 레닌의 여성형, 니넬은 레닌의 철자를 거꾸로 부른 이름이다. 남자 아이에게는 블라딜렌(Vladilen)이라는 이름이 주어지곤 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약어인 셈이다. 유대인 아이들이 모세라는 이름을 흔히 갖듯이, 소련의 아이들은 러시아 인민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공산주의의 모세인 레닌의 이름을 가졌다.

공산주의의 종교적 특성에 주목한 것은 물론 마르친 쿨라(Marcin Kula)가 처음은 아니다. 저자도 인용하듯이, 사회학자 오소프스키(Ossowski)는 1956년 일기장에 “사회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신정국가의 신의 독재의 근대화된 형태”라고 조심스럽게 썼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폴란드의 신학자 티쉬네르(Tischner) 신부는 “공산주의는 종교의 적대자일 뿐만 아니라 캐리커처이자 패러디였다”고 선언했다.

무신론을 외치는 공산주의와 종교는 서로 적이라는 상식을 한 꺼풀 벗겨보면,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공산주의 역사철학은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마니교적 비전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라는 세속적 사탄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위대한 수령의 영도 아래 낙원을 향해가는 고난의 행군의 역사인 공산당 약사는 동족을 끌고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에 정착한 모세의 이야기와 닮았다. 결국 공산당 약사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같은 플롯 위에 서 있다.

교회와 당은 계시된 진리 혹은 절대적 진리의 유일하고 정당한 수호자이다. 교회와 당은 모두 밖의 이교도보다는 내부의 이단을 더 위험하게 여겼다. 트로츠키 주의와 수정주의를 비롯한 무수한 이단적 ‘주의’들에 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은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를 떠올리게 한다. 이단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기 때문에 이단이 되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공산주의의 로마였으며, 크레믈린은 세속의 바티칸이었다.

당 조직은 수도원과 유사하다. 교회법에 대한 순종, 엄격한 규율,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수도원의 조직은 당 조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들은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적 조직이라기보다는 굳건한 ‘형제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들 공동체는 개인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대신, 의식주에서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가톨릭의 역사 못지않게 공산주의의 역사 또한 많은 ‘성인’들을 낳았다. 이 성인들은 죽어서도 당과 인민에 봉사한다. 평양의 혁명 열사릉이나 크레믈린의 담장 밑에 묻힌 죽은 자들이 산 자를 인도한다. 붉은 광장의 ‘영묘’ 속에 누워있는 레닌의 시신을 필두로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 프라하의 고트발트, 하노이의 호치민, 베이징의 마오쩌둥, 평양의 김일성 등 방부 처리된 ‘성인’의 시신들은 부패한 가톨릭 성인들의 유해보다 기술적으로 근대화되었을 뿐, 기본 정신은 같다.

모로조프, 스타하노프, 레이펑 등의 각종 사회주의 영웅들은 바로 이들 사회주의 성인 따라잡기의 결과이다. 1980년대에 한국의 대학가에서도 널리 읽힌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중세 성인전의 사회주의 버전이며, 그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및 순교자 명부 등재 요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인민들에 대해 체제에 대한 순응과 동의를 넘어서 그들의 영혼까지 지배하고자 했던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 권력은 교회 못지 않게 많은 성인들을 필요로 했다.

공산주의는 사실상 ‘호모 소비에티쿠스’ 혹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인간혁명’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개인을 혁명과 공동체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만드는 작업은 각 개인의 실존적 근거까지 근원적으로 바꾸는 ‘개종’ 작업이기도 했다. 스탈린주의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인간혁명’의 프로젝트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쳐 그 원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한다. 매년 레닌의 기일마다 연구소와 문화 관련 국가기관을 다니며 그 안에 놓인 레닌 흉상에 꽃다발을 바치고 가는 문화부 고위 공무원이 있었다. 그는 저자가 근무하던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건물 안의 레닌 흉상에도 어김없이 꽃다발을 바치곤 했는데, 소장 비서는 그가 나가자마자 늘 그 꽃다발을 소장실의 화병에 꽂아버렸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자가 되지 못한 관료들이 남에게 성인처럼 굴기를 설득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 아니었을까?

흥미진진한 분석과 유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전근대적 동유럽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종교를 닮게 됐다는 저자의 결론은 다소 아쉽다. 민족, 조국, 국가, 계급 등의 세속적 실재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의 신성화’ 혹은 ‘정치종교’는 그 자체로 이미 근대성의 산물인 것이다. 막스 베버가 근대에서 ‘탈주술화’와 ‘재주술화’를 동시에 읽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근대적 합리주의가 정교분리에서 보듯이 전통종교의 헤게모니적 지위를 박탈했지만, 근대야말로 새로운 유형의 세속적 종교성이 만들어지는 온상인 것이다(*참고로, 임지현 교수가 주도한 <대중독재2>는 '정치종교와 헤게모니'를 주제로 하고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쟈코뱅이 공화주의 사상에 입각해 정교분리를 외치면서 국가교회였던 팡테온을 혁명열사와 민족 영웅의 성스러운 묘역으로 만들었을 때, 이미 정치종교는 근대적 헤게모니적 지배장치로서 꿈틀대고 있었다. 주기도문을 그대로 패러디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 총통을 위한 기도문이나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는 모두 근대 권력의 무한한 지배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21세기 남한사회에서 스스로 종교가 되고자 하는 근대 권력의 욕망은 얼마나 큰 것일까? 나라 사랑의 표현인 우리의 ‘국민의례’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의 정치종교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세계일보(07. 05. 18) 北 주체사상 종교로 볼 수 있나

미국의 종교 사이트 ‘어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이 최근 “어마어마한 신도수(1900만명)를 가지고 있고, 그들 인생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다” 등의 이유로 북한 주체사상을 종교로 규정, 세계 10대 종교로 올려놓자 국내 관련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드히런츠닷컴은 심지어 ‘주체교’를 유대교(12위·신도수 1400만명)보다 앞세웠다. 그런데, 왜 ‘주체’를 종교로 파악했을까.

 

 

 

 

 

 

 

 

 #주체사상이 종교인 이유
어드히런츠닷컴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체사상은 명백히 종교”라고 못박았다. 사이트는 북한 체제가 옛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에서 연유됐음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독특한 변이를 이룬 점에 주목한다. 또,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승을 공식적으로 부인한 점도 언급했다. 사이트는 “지금 상황에서 주체사상을 공산주의의 이단적 갈래라고 구분하는 것은 불교를 힌두교에 포함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순위 선정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종교가 성립되려면 ‘교주(敎主)’ ‘교리(敎理)’ ‘교단(敎團)’ 등 크게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일견 그 요건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주체사상을 태동시켰던 김일성을 교주로 볼 수 있고, 주체사상 자체를 교리로 파악할 수 있으며,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북한사회 전체를 하나의 교단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전 조선노동당 황장엽 비서도 김일성의 수령절대주의 독재가 계급독재와 다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동안 남한사회에서 주체사상을 거의 ‘종교’ 수준으로 보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미 국내에는 주체사상을 종교로 인식한 ‘북한사회의 종교성-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종교양식 비교’(김병로 지음, 통일연구원 펴냄)라는 저서까지 출간된 바 있다.

#국내 신학자·종교학자들의 반응
주체사상이 10대 종교로 ‘둔갑’한 것에 대해 국내 신학 및 종교 학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신학자인 이정배 감리대 교수는 “주체사상을 종교에 포함시키는 건 신학적인 면에서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주체사상은 아주 인위적인 통치이념으로 자기초월적 기능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종교엔 자기초월·자기비판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숭고하게 이끄는 체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회학 입장에서 종교로도 볼 수 있지만, 이 경우 미국과 대결 상황에서 발생한 아주 기형적인 형태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교·인류학자 김성례 서강대 교수 역시 부정적 입장이다. 그는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히틀러의 나치즘도 종교“라면서 “한 세대만 지나면 소멸할 유사종교일 뿐”이라며 통계의 의미를 축소했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땔감으로 쓰인 ‘가장된’(disguised) 종교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정일이 죽고, 계승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간단히 와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매우 정치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일 뿐인데, 북한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계 결과가 초래할 파급력을 우려했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실장은 “주체사상을 충분히 종교로 볼 수 있다”며 유연하게 말한다. 단, 종교의 범주가 넓고 역기능도 있음을 전제한다. 장 실장은 “내세관과 초월적 요소가 없어도 종교라 부를 수 있다”며 “심지어 사람을 미혹하고, 괴롭히는 종교도 있지 않은가”하고 반문했다. 장 실장은 “‘종교’란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체사상을 달리 볼 수 있다”면서 “통계 결과보다는 종교의 개념을 좀더 확실히 한 뒤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방 세계의 시각과는 달리, 북한은 주체사상을 하나의 철학과 사상 체계로 선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불거져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심재천 기자)

07. 07. 29.

P.S. 러시아 공산주의와 관련하여 언급해두고 싶은 책은 니콜라이 베르쟈예프(1874-1948)의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1937). 우리말로는 <러시아 지성사>(종로서적, 1975)로 옮겨졌는데, 영역본을 중역한 책이다(영역본은 http://www.questia.com/PM.qst?a=o&d=297502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러시아 전통사상과 공동체의식에서 찾는다. 20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베르자예프의 책들은 과거에 몇 권 번역된 바 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되었다. 분량도 얇은 만큼 이 책만큼이라도 재번역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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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9 23:28   좋아요 0 | URL
모든 거대 담론이 신학적인 지점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사상도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임지현 교수가 조선일보에 글을 쓴 것을 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학자들이 우파들과 모종의 이해의 일치를 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임지현은 '적대적 공범자'?)

로쟈 2007-07-29 23:51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박정희주의)와 주체사상(김일성주의)가 실상 '적대적 공범자'였던 걸 상기해볼 수 있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7-07-30 00:12   좋아요 0 | URL
지금의 조선일보를 박정희주의로 볼 수 있을까요? 조갑제 같은 사람 제외하고는 대세는 신자유주의로 알고 있는데요...

로쟈 2007-07-30 00:22   좋아요 0 | URL
지금이야 이명박주의쯤 되나요?(성장주의, 친미주의 혹은 기득권주의?)사실 '생활우파'란 말이 시사해주듯이 '머릿속 이념'은 한국에서 별거 아니거나 속임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포장이거나 알리바이인 셈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조선일보는 순진한(노골적인) 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