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소설들이 대거 번역/소개되고 있지만 중국 관련서들 또한 쏟아지고 있고, 그 중에는 눈독을 들일 만한 책들도 많다(내가 중국 전공자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다). 생소한 저자인 줄리아 로벨의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07) 또한 만만찮은 분량이긴 하나 탐나는 책이다. '문명과 야만으로 본 중국사 3천 년'이 부제인데, 원제는 말 그대로 '만리장성(The Great Wall)'이고 작년에 나온 책이다. 아래 리뷰기사를 읽다 보니 손에 집어들지 않고는 못배기겠다. 러시아사도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문화일보(07. 07. 20) 신화의 덧칠 아래… 보라, 중국의 오만을
‘만리장성(萬里長城·the Great Wall)’. 흔히 2000년 전 진 시황 때 축조됐다고 알려진 성벽, 장성을 둘러싼 신화는 많고도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1893년 작가 로버트 리플리가 퍼뜨린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조물”이라는 말이리라. 여기서 한발 나아가 조지프 니덤은 중국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술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화성의 천문학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업적”이라고까지 호들갑을 떨었다.
작가와 학자들이 이렇게 나서니 허풍이 전문인 정치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장성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 1935년 장제스에게 쫓기던 마오쩌둥(毛澤東)이 공산혁명가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보낸 호소문 중 일부다. 이로부터 약 40년 뒤 죽의 장막을 헤치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찾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화답했다. “장성은 위대한 성벽이며, 위대한 민족이라야 이런 것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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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은 만리장성을 둘러싼 이런 호들갑을 증폭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다. 장성을 둘러싼 신화의 지층을 벗겨내고, 장성이라는 거대한 메타포로 중국을 제대로 읽으려는 것이 목표다. 신화 벗겨내기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우선 과녁은 ‘위대한’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허세적 분위기다. 만리장성에 부여된 최초의 신화는 그것이 수천년 전부터 하나로 건설되었다는 것이나, 그것부터가 오해라는 것이다. 이르게는 기원전 1000년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조들이 여러 곳에 ‘하나로 이어지지 않은’ 성벽을 건설했으나 그 대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오늘날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는 베이징 북쪽의 말끔한 성벽은 20세기 후반 공산주의 노동력으로 복원되고 단장된 것일 뿐이다.
책의 더 큰 목표는 이런 물질로 된 장성의 허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표상으로서의 장성이다. 후대의 역사적 낭만주의자에 의해 은폐된 성벽을 제대로 살피며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어내자는 것이다. 장성을 뒤덮은 신화의 지층만 제대로 벗겨내면, 사실 그 성벽은 중국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완벽한 표지다.
책의 처음은 ‘왜 성벽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답은 흉노·몽골·만주·훈 족 등으로부터 변경을 지키기 위한 방어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장성의 역사와 흔적을 살피며, 장성의 축조 목적이 방어가 아니라 영토 획득이라고 말한다. 방어가 목적이라면 자국의 거주지를 수천리나 벗어난 곳의 사막을 가로지르며, 장벽을 건설할 필요가 없었다.
저자가 성벽이란 창을 통해 읽으려는 보다 근원적인 것은 성벽 축조의 근저에 깔린 중국인의 정체성과 세계관이다. 기원전 2000~1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중국인들은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잡고, 다른 민족을 벌레나 ‘날짐승이나 길짐승’(금수·禽獸)으로 보는 뻔뻔스러운 세계관을 완성한다. 중국인이 아닌 민족은 ‘외양은 인간이지만, 내면은 짐승인 종족’, 혹은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는 늑대’일 뿐이었다.
요컨대 성벽은 더불어 상종할 수 없는 이민족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책은 춘추전국 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왕조와 시기에 걸쳐 중국을 관통한 호전적인 외국인 혐오증과 문화적 우월주의와 패쇄성을, 장성이란 표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목민이 강성할 때마다 장성은 유린됐고, 때로 유목민들은 중국의 한복판에 그들의 제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중국의 역대 왕조는 성벽 건설과 유지에 계속 매달렸다. 그때마다 죽어난 것은 성벽 건설에 동원된 민중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를 단순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어리석은 왕조의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는다. 그 전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장성을 쑨원(孫文), 마오쩌둥 등의 지도자들이 되살려내는 것을 보며 이런 의구심은 더욱 깊어진다. 말하자면 장성으로 은유되는 중국의 호전적 외국인 혐오증과 우월주의, 패쇄성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인터넷 공간에 세우는 방화벽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앞으로의 중국을 어떻게 볼까.
‘중국이 설령 180도 변신해 서구식의 개방적 민주자유국가가 된다고 해도, 그들은 수천년 묵은 행동 양식을 포기하거나 정치적, 문화적 독자성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또는 밀물처럼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감시하는 수단인 심리적·물리적 축출과 엄격한 국경 통제라는 노선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역사와 역사 지식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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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리하면 책의 문제제기와 결론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가 드러내는 해박함과 이야기 솜씨는 눈을 비비게 하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다 자주 저자 프로필에 눈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줄리아 로벨, 영국에서 태어난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중국사로 학위를 받은 뒤 중국사와 중국문학을 가르쳤단다. 한동안 중국에 살다 케임브리지 퀸스칼리지의 연구원으로 있다는 젊고 가냘픈 미모의 여성이 이 정도의 책을 쓴 것은 정말 뜻밖이다.
번역도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지명과 인명을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명으로 옮긴 것부터가 그렇다. 한시를 옮기며 영어 원서에서 중국어 원문과 맛이 달라진 부분도 일일이 원문을 기준으로 고쳤다. 책이 최근 쏟아지는 중국 관련 책 가운데 빼어난 봉우리가 된 것에는 저자의 역량 못지 않게 번역자의 공이 큰 것으로 보인다.(김종락기자)
0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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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최근에 나온 중국사 관련서로 두 권을 더 거명하고 싶다. 먼저 이중텐의 <제국의 슬픔>(에버리치홀딩스, 2007). 이중텐은 <삼국지 강의>(김영사, 2007)로 중국 관련서쪽으로는 올해 가장 유명해진 저자라 할 만한데(중국에서도 '역사 대중화'로 유명하다고), 이 책에서는 "전제주의 지배하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알력 다툼과 음모, 비리들이 낱낱이 공개되는 한편, 정치 활동의 주체인 정치인, 지식인들의 이중적 삶과 애환, 갈등, 숙명 등을 지은이 특유의 필치로 드러낸다" 한다. 일독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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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앞의 두 책에 비하면 좀 얄팍한데 국내 필자들이 쓴 <아틀라스 중국사>(사계절출판사, 2007). 경향신문의 간략한 소개에 따르면, "약 1만여년 전 고대 신석기 문명의 탄생부터 20세기말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책은 중국 시대사별 전문가 5명이 3년여 동안 매달려 만든 중국사 개설서다. 중국사를 시대별로 96개의 주제로 엮었으며, 저자들 각자의 역사관을 투영하면서도 통사적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양면에 걸쳐 한 주제씩이 펼쳐지는 책은 입체적인 역사지도를 중심으로 텍스트와 연표, 다이어그램, 사진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정리되고 압축된 텍스트와 도판은 사전의 역할도 가능할 듯하다." 그러니까 일종의 역사부도이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와 <제국의 슬픔>을 읽다가 그때그때 참조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