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지만 같은 날짜에 같은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논평과 기사가 게재되어 있어서 옮겨놓는다(그리고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다). 먼저 읽은 건 '기러기 아빠'들의 조기유학을 이슈로 한 대담인데, 말 그대로 '생생토크'이다. 그리고 뒤에 읽었지만 앞에 놓은 건 현직 영문과 교수의 대학가 영어강의 붐에 대한 쓴소리이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영어광풍'과 관련되는 것이어서 제목은 '영어에 미친 나라'라고 붙였다(사실 같은 타이틀의 책이 있다).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따라가노라면 한국사회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아름답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된다. 한국학 키워드에 '영어'도 들어가 있는지?.. 

창비주간논평(07. 07. 10) 대학의 영어강의를 향한 쓴소리

지난달 미국 댈러스에서 이민생활을 하던 한국인 부부가 폭우와 엉터리 표지판 때문에 차가 강에 빠져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일부 국내 언론은 정확한 취재도 없이 이 사건을 희생자들의 영어가 서툴러 구조요청을 제대로 못한 탓으로 보도하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오보는 한국사회가 영어에 얼마나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난 4월 인터넷 상의 '토플대란'은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기 위한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응시자의 80%가 유학 준비생이 아니라 특목고 진학이나 대학입학시의 혜택을 겨냥한 초중고생이며 수험료가 연 16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조기 영어교육과 해외어학연수,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빠는 어느덧 한국사회의 낯익은 풍속도로 자리잡았고,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3학년 아닌 1학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이 나오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사교육비 지출이 최고이며 초중등학교까지 포함할 경우 미국 유학생 수가 인도나 중국을 앞질러 당당히 1위인 대한민국의 사교육 영어 시장이 얼마나 큰 규모일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영어광풍 부추기는 대학 영어강의의 실상

그야말로 영어광풍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이런 흐름을 바로잡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후 갓 대학에 자리잡은 한 신임교수는 학기당 한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계약서 상의 의무 조항을 어겼다가 낭패를 겪었다. 그는 첫 학기 담당과목을 모두 우리말로 강의하다가 경고를 받았고 다음 학기에 두 과목을 영어로 진행해야 했는데, 그가 유학한 나라는 불행하게도 영국이 아니었다. 선생의 영어능력이 모자란 상황에서 수업진행이 원활할 리 만무하고, 학생들도 영어로 하는 철학수업을 따라갈 능력이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이 어이없는 사례에서 보듯이 요즘 우리 대학의 영어강의 관련 정책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에 걸맞은 철학 위에 서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명문 사립대는 몇년 전에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 신임교수가 모든 과목을 영어, 혹은 해당 원어로 강의하도록 강제했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전체 개설과목의 60%를 영어강의로 바꾸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학 외에도 신임교수에게 영어강의를 의무로 부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기존 교수에게도 영어강의를 의무화하여 영어강의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미국 유학 출신 교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 학문의 편향성은 심화되게 마련이다.

학문의 대미편향과 영어학습에 매몰되는 대학교육

물론 영어강의를 확충하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현대 세계에서 아직도 달러가 기축통화이듯이 오늘의 국제어는 영어임에 틀림없고, 수준높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력에 대한 수요는 매우 크다. 이를 위해 영어강의의 양적, 질적 발전은 긴요하며, 실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교양영어'는 상당수 대학에서 영어강의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학의 영어강의 정책은 우려할 만하다. 영어강의가 투자 없이 무원칙하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대학생들에게 사교육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하는 꼴이다. 그 결과 영미에서 살아봤거나 특목고나 철저한 사교육 덕분에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춘 경우가 아닌 학생은 학원, 해외어학연수 등을 이용해 영어능력―주로 듣고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대학생활과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어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준높은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며 토론하고 고민하는 일에서 성취될 대학교육의 본모습은 그만 실종되고 만다.

영어 공용화론의 맹목과 허구성

경쟁지상주의 담론의 핵심에 자리잡은 영어능력에 대한 강조는 어느새 질적 변화를 일으켜 아예 지적 활동과 사회생활의 수단을 우리말에서 영어로 바꾸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은 그것을 상징하는 담론이다. 그는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지식을 창조하지 못하며 남들이 생산한 지식을 소비만 한다는 어느 미국 학자의 발언을 논거로 들면서, 영어공용화가 한국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한다.(《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삼성경제연구소 2003, 46면)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지식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현실을 정확히 짚은 것은 결코 아닐뿐더러, 한국 대학의 질적 도약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영어공용화 하나로 달성 가능한 양 주장하는 것은 도무지 진지하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우리는 외국어를 공용어(公用語)로 강요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해방 후 3년간 미군정의 공용어는 영어였고, 일제강점기도 처음부터 일본어가 공용어였으며 나중에는 일상생활에서마저 일본어 사용이 강제되었다. 소설가 김동인이 외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조선인은 적어도 중등학교 이상 학력이고 일본어를 잘 하는 그들은 외국문물을 우수한 일본어 번역으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우리말 번역을 하려는 노력은 무익하다고 쓴 데에서 그 시절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번역문학〉, 《매일신보》 1935년 8월 31일)

식민지시대의 조선어말살정책과 오늘의 영어광풍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언어의 선택이 인간 생활 전반과 직결된 총체적인 사안이라는 상식을 환기시켜 준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택하는 것은 우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어 공용화는 강남의 중상류층이 상징하는 경제적, 문화적 역량이 전국민에게 주어져야 현실적 가능성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일일 터인데, 이는 자유주의자 복거일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무계급사회의 지상낙원을 당장 건설하겠다는 이데올로기적 선전과 흡사하다.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복거일은 영어 공용화를 반대하면 오히려 많은 국민들을 영어의 혜택에서 소외시키는 계급적 자세가 된다는 묘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어쨌든 요즘 일부 상위권 대학의 영어강의 정책은 그의 입론을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셈이라는 점에서 착잡하기 짝이 없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문화주체성 세워야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그것을 위한 조건을 제대로 갖춰가며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대학에서 꼭 거쳐야 할 지적 훈련을 제한된 영어구사력 향상을 위해 속절없이 희생할 위험이 크다. 영어강의 도입의 당위성이 큰 영어영문학과에서도 영어강의로만 수업을 편성하면 많은 문제가 따를진대, 학생의 전반적 수준이나 학생간의 편차, 전공 분야의 특수성을 막론하고 영어강의만이 살길인양 밀어붙이는 일만큼은 재고되어야 한다. 충분한 준비와 투자가 없이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은 영어도 늘지 않고 수업 내용도 못 따라가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고급 외국어독해력 향상은 수업이 우리말로 진행될 때 종종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될뿐더러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이 간다.

영어의 문제는 단순히 외국어 습득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이냐는 전망과 연결된 심각한 사회적 쟁점이다. 명심할 일은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도 우리 나름의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면서 우리 역사에 뿌리박은 학문과 문화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비이성적 영어열풍은 어떤 성격의 세계화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회적 갈등만을 심화시킬 것이다. 세계화와 공동체의 주체성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김명환/ 서울대 교수)

*이 글의 일부는 필자가 《안과밖: 영미문학연구》(2007년 상반기, 창비)에 게재한 시평 〈대학의 영어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내용을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 필자. 

경향신문(07. 07. 10) [2007한국인의 자화상](7)조기유학 열병앓는 ‘기러기 아빠’

조기유학 바람은 상류층에서 중산층으로까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한 다리 건너면 기러기 아빠’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들은 매년 3만~5만달러의 유학비용은 물론 부부·가족간 생이별을 감내한다. 이런 고통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이 ‘교육 엑소더스’란 무엇인가. 지난 6월9일 3명의 기러기 아빠가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모여 항상 곁에 두어도 부족한 아이를 이역만리로 떠나 보내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이들은 아이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영어 만능주의’와 ‘입시지옥’에 관해 매우 강한 비판을 했다. 경향신문 사회부 최민영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집담회는 참석자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했다.

사회(최민영 기자)=조기유학 보내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익준(가명·54세)=저는 애가 둘입니다. 내 소신은 애들한테 과외도, 영어공부도 안시키는 것이었어요. 둘째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등록해 가방을 받아왔을 때 ‘우리 말부터 배우라’며 아내랑 싸워 결국 가방을 억지로 반납시켰어요. 그런데 애가 초등학교 취학하고는 내가 졌습니다. 학원 안가니까 친구가 없어요. 애가 ‘왕따’를 당해도 학교에서는 관심도 없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영어만 잘하면 뭐든 ‘오케이’더라고요. 그래서 조기유학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에 중학생이던 첫째와 둘째를 모두 미국에 보냈죠. 당시 주변의 고위 국가공무원들이 자녀들을 막 조기유학 보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자기들 자식 편하게 살 수 있게 정책 개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괘씸하게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자기 애들 대학갈 즈음에 국내 대학들이 영어 잘하는 애들을 위한 특별전형을 만들더라고요.

구영찬(가명·48세)=나는 아이 둘과 애엄마를 미국에 보낸 지 4년 됐습니다. 둘째애 때문에 결심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 갔다가 가방 안이 텅 비어 있는데 집에 와도 ‘그냥 친구들한테 빌려줬다’고만 대답하더라고요. 초등 2년때 선생님들이 미국 가면 ‘왕따’ 없고, 아이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조언하더군요. 능력이 되든 안되든 우리 애한테 새로운 교육환경을 주자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최세현(가명·50세)=우리 딸애는 중학교 2학년 때 보냈고 지금 고등학교 2학년쯤 됐어요. 애엄마가 먼저 조기유학을 제안했지만 한달가량 “그렇게는 못한다, 월급쟁이가 어떻게 그러냐”고 버텼어요. 그런데 애가 출근하는 내 손에 “아빠,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라며 편지를 주더라고요. 자기 학교 생활을 적은 것이었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학교 끝나고 학원 가서 자정에 돌아오면 또 새벽 2시까지 숙제하고…. 시험 때는 더 심하더라고요. 아이는 “나중에 커서 누가 어린 시절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해요. 그 말에 두손 들었어요. 딸애는 몰라도 늦둥이인 5살배기 아들은 그래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할 생각입니다.

사회=조기유학, 효과는 있었나요.

최세현=우리 딸은 수수깡처럼 말랐었는데 보낸 지 1년 만에 스트레스를 벗어나서 건강해졌어요. 거기서도 여전히 우리나라 엄마들은 ‘두들겨 패가면서’ 공부시키지만 아이들에게는 여기보다는 여유가 있어요.

김익준=난 얻은 게 있고 잃은 게 있습니다. 얻은 것은 애가 중·고등학생 기간을 무척 행복하게 지냈다는 거예요. 잃은 것은 내가 가족과 몇년간 떨어져 살았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애들을 예뻐하면서 키울 기회를 이 나라 위정자들이 박탈했어요. 내 결단이었지만, 배경을 제공한 것이죠. 꼴보기 싫어요.

최세현=한 예로 우리 회사의 한 분은 재작년에 아이가 강남 8학군의 모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반 남학생 중 1, 2등 하고 여자까지 합치면 8등쯤 했어요. 한달에 과외비가 적게 들 때 400만~500만원, 많이 들 땐 1000만원도 들었다더라고요. 그렇게 돈 많이 들여가지고 등수가 많이 오르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그 돈 들여서 등수 유지하는 게 목표라는 겁니다. 목표로 하는 대학이 어디냐고 물어봤어요. 우리 때는 공부 못해도 서울대, 연·고대 반이었고 다른 반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목표가 서울대 연·고대도 아니고 ‘인(in) 서울’대였습니다. 그것도 불안해 하더라고요. 그렇게 공부를 시키는데도. 그 분은 자정쯤 퇴근할 때 부인한테 전화가 옵니다. 애 과외 중이라 방해될테니 좀 있다 들어오라고요. 좋은 과외선생 잡으려면 12시 넘어서 수업받는 것도 감내해야 된다나. 그 정도 돈이면 미국에서는 웬만한 대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아이 조기유학 보낼 때 아내가 설득하며 하는 얘기가 “당신 유학비 아까워서 그러는데 고교 때 과외비는 뭘로 댈 거냐, 그 돈이면 유학간다” 그러더라고요.

구영찬=이번에 11학년된 딸애는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하는데 다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둘째애는 내가 워낙 예뻐하는지라 지난 3월 미국에 만나러 갔을 때 “여기 안맞지? 아빠랑 같이 한국가자”고 운을 떼봤어요. 그런데 말수도 적은 애가 조그만 목소리로 “아빠가 와요” 이러더라고요. 여기 교육환경이 싫은 겁니다. 그래도 거기는 학교폭력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김익준=내 생각은 좀 달라요. 그쪽 선생은 결코 따뜻하지 않습니다.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학생을 퇴학시킬까를 고민하지 봐주는 게 없어요. 체벌도 안합니다. 여차하면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애정이 없어요.

사회=아이들 대학도 미국에서 졸업시킬 계획입니까.

김익준=미국 대학은 도대체 입학사정의 기준이 뭔지 밝히질 않아요. 1등이 떨어지고 10등이 붙어도 저간의 배경을 알 수가 없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도 예일대를 나옵니다. 학비가 일단 너무 비싸니까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거기에 불만을 안가져요. 우리 국민은 그런 식의 선발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나라 제도를 꼭 좋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둘째애는 한국에 돌아와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지금 고3입니다. 애가 죽어요. 아침에 내가 자고 있을 때 애는 나가고, 자정 넘어도 애는 안오고 내가 먼저 잡니다. 주말에나 보고 ‘힘들지?’ 물어보면 ‘괜찮아요’라고 합니다. 내신으로 애를 왜 이리 괴롭힙니까. 미국처럼 돌머리라도 부잣집 애로 뽑는 식이면 차라리 모르겠어요. 애가 고1 때는 과외 안받았는데, 고2 올라가서 과외받게 해달라고 조르면서 “진작 과외받았으면 내신이 더 나았을걸” 얘기하는 모습 보면서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애가 텝스(TEPS) 만점에 가까운데, 학교 내신 영어시험에서는 하나 틀려서 내신 3등급입니다. 말이 됩니까.

미국에 유학갔다 온 박사들이 우리나라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주 불만입니다. 어느 아프리카 사막 지역 추장이 미국에 갔는데 사막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게 너무 좋아서 수도꼭지를 떼서 가져갔답니다. 물이 나오겠나, 안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영어 타령입니다. 가까이 지내는, 돈 없는 친구들은 가슴을 칩니다. 내 애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조기 유학을 못보내줘서 그렇다는 거예요. 국내에서 가르치려니 됩니까. 그런데 정책결정자들, 이 인간들 하는 짓 봐요. 영어 잘한다고 대학 어느 과든지 갈 수 있는 나라가 어딨나요.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제 새끼 챙기느라 국민을 배신했어요. 요즘엔 영어 잘하면 의대도 갑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못가진 사람 가슴 치게 만들어요. 교육부 미국박사 출신들 다 나쁜 놈들이고,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도 나쁜 놈들입니다.

구영찬=대부분 국민들이 공감하는 말입니다. 대학뿐 아니라 입사할 때도 토익, 토플, 텝스 봅니다. 우리도 경제대국인데, 영어를 그렇게 강제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후처럼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때가 아니잖아요. 프랑스 봐요. 절대 영어 안씁니다. 영어로 말 걸면 대꾸를 안합니다. 미국애들이 우리나라 오면 걔들이 우리말 공부를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정도라도 말 할 때 수용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러시아어도 배우고, 중국어도 배우고 해서 다원화해야지 끝까지 영어니까 주변나라에서 뭐라 그러겠습니까.

김익준=강의 듣는 큰애한테 물어보니 한국 대학에서 교수들 영어는 영어가 아니고 ‘콩글리시’랍니다. 귀 버린다고 하더군요. 한국 관련 강의를 하는데 왜 영어로 번역을 해서 가르칩니까. 우리는 백날 해도 미국 대학 못따라갑니다. 교육부가 정신이 나갔어요. 각 대학에 돈을 지원하는데 영어강의 비율에 따라 지원합니다. 미국 유학파가 환상에 젖어서 이 나라를 버려놨어요.

최세현=전염이 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젠 애 친구 대부분이 미국에 가있어요.

김익준=유행병이죠.

최세현=우리 애가 외국 나가기 전에 학교 선생님들께 밥을 사야겠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갔더니 여섯분 정도 와 있더라고요. 아주 잘 보낸다 그래요. 그 중에 2명이 애들 유학을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가려는 사람들 말려서 국내에서 공부시켜야 할 선생님들이 보내면 어떡하느냐” 했더니 선생님 말씀이 “제 아내도 교사인데 우리나라에 몇년도부터 몇차 교육제도 그러는데 그게 뭘 의미하고 애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해요. 공교육 종사자들부터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신뢰가 안선다는 거예요.

또다른 얘긴데, 우리 딸애 학교친구 하나가 공부를 좀 못했어요. 그런데 아빠 닮아서 음악을 좀 잘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타를 쳤는데, 김밥집하던 그집 부모들은 고민고민하다가 애를 호주로 유학보냈어요. 음악 전문학교가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하면 엄청나게 레슨비가 들텐데 거긴 교육비에 다 포함돼 있다고 해요. 그걸 잘해서 오세아니아 전체 대회에서 1등했고, 미국 대학 입학허가를 받아 장학금 받고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지금 그집 부부는 뉴질랜드에서 김밥 팔면서 애 뒷바라지 해요. 우리나라에 그 아이 있어봤자 ‘문제아’ 취급밖에 더 받았겠어요.

김익준=사실 미국 문과계통은 좋은 대학 나와봤자 일자리가 없어요. 그러니 도로 한국으로 턴해서 ‘하버드 출신이다. 영어 잘한다’밖에 내세울 게 없습니다. 걔네가 써먹는 건 공대 계통 기술자뿐이지요. 문과는 자기네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인데 한국에 돌아오면 그게 어마어마한 것이 돼요. 그러니 누가 안보내고 싶겠습니까. 김밥 팔아서라도 보내야지.

구영찬=조기유학이라는 네 글자를 놓고 실패냐 아니냐 하는 게 어폐가 있어요. 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여기가 너무 피곤하고 지옥이고 십몇년간을 그러니까 가서 좀 선진문화에서 공부도 해볼 기회를 주는 게 반 이상이지 조기유학 가서 대학입학에 실패했다, 그게 아닙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겁니다. 대학을 못갔다고 해서 조기유학 가서 실패했다고 정의내릴 수는 없어요.

사회=몇년 전 뉴욕타임스가 ‘제 식구한테 손님대우 받는 기러기 아버지’에 관한 기사를 다뤘는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구영찬=그 부분(부모자식관계)은 포기했어요. 애가 성장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지 한국 와서 살든 미국 가서 살든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든 기대감은 없습니다. 보내놓고 1년 정도가 힘들었어요. 한 4년 됐는데, 여러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위해서 보냈으니까 그에 따른 결과를 수용해야지, 내가 못보니까 힘들다고 하는 건 과장이더라고요.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언론에서 보여주는 ‘소주병 끼고 사는 기러기 아빠’ 생활 안합니다.

김익준=첫째 애는 아버지인 나를 과연 사랑할까 싶기도 해요. 가끔 보는 ‘손님’인데. 처음에는 반가워하더니 점점 크고 자기 생활 생기니까, 심지어 아내조차도 자기 생활이 생겨서 잠깐 왔다가는 손님처럼 대하더라고요. 고의로 그러는 건 아닌데 겉도는 느낌이 듭니다.

최세현=난 아직까지는 지낼 만해요. 교회 가서 아빠를 위해 기도도 같이 하고 그런다고 들었어요. 난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무도 없으니 할 일이 없어요. 텔레비전 리모컨 갖고 왔다갔다 채널만 바꾸죠. 주말되면 어떻게든 약속 만들어야 하는데, 안되면 소파 주변 반경 1m 안에서 하루종일 뒹굴뒹굴해요. 허리가 2인치 늘더라고요. 통상 집사람이 오면 처음 1주일은 굉장히 좋아요. 사람 사는 거 같고. 그러다 한두달 있으면 싸우고, 돌아가면 또 허전해집디다.

사회=조기유학 실패 걱정을 안하나요.

최세현=아내한테 리스크를 줄이려면 같이 가야 한다고 했어요. 혼자 가면 거의 탈선한다고요. 홈스테이가 많은데, 순전히 돈벌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10년 정도 하면 새집 비용이 빠진다고 그래요. 거기 교포들도 그리 잘해주지 않아요. 애 지옥에서 꺼낸다고 보냈는데 또 지옥으로 보냅니까. 그냥 내가 기러기 아빠 하고 말지.

김익준=여기서는 영어라도 배우라고 홈스테이 보내는데, 처우가 나빠도 한국 애들은 이상하게도 착해서 부모한테 아무 말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아요. 우리나라는 부실해도 급식이라도 있지, 미국은 그것도 없어요. 홈스테이 점심을 유학생들은 ‘3초 샌드위치’라고 해요. 빵 하나, 치즈 한장, 양상추 한장, 다시 빵 하나. 그걸 점심 때 앉아서 구겨먹고 있는 겁니다. 자기 자식을 청소년기에 왜 그렇게 불쌍한 인간으로 키웁니까.



구영찬=공부를 하려면 조금 나이가 돼야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간 애는 영어는 잘하는데 한국어를 못해요. 자꾸 까먹으니까 서머스쿨 때 거꾸로 한국어 교육을 받아요. 국적이 한국인데, 한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사회=조기유학 문제는 국내 고교평준화 해제 및 특목고 추가설립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익준=우리나라 애들은 이런 교육환경에서 쇠고기 취급 당합니다. 1등급, 2등급….

최세현=대학교 들어가기까지 너무 애들을 혹사시켜요. 우리나라 입시 유아 때부터 시작입니다. 5살짜리 늦둥이가 있는데, 방학 때에만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닙다. 그런데 놀이기구도 방안에 있고, 거의 하루 종일 공부시키더라고요. 그 어린 것을 공부시켜 뭐합니까. 노는 게 공부죠. 우리나라 학부모는 애들이 유치원에서 논다고 하면 아마 당장 다른 데로 옮길 것입니다.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구영찬=자율성을 부여해서 대학이 입시기준을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1등이 서울대 못가도 5등은 갈 수 있도록 생활기록부랑 연계해서 입학사정관제를 정착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명문고를 늘리기보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도록 구조 자체를 바꿔줘야 됩니다. 교육이라는 게 학교와 부모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서 ‘얘는 공부는 아닌 것 같다, 음악쪽에 소질이 있다’ 이렇게 이뤄져야지, ‘얘는 몇점 나와서 3등급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까?

최세현=미국은 학생 뽑을 때 성적 외에 과외활동도 봐요. 미국에서 우리나라 여학생이 SAT 만점 받고 전학년 올 A받았는데 아이비리그 여러 대학 넣어서 다 떨어졌다고 인종차별로 소송 거는 기사를 봤어요. 공부만 한 애들은 당연히 떨어집니다. 학교에서 공부 외에 학생회라든가, 자기 특기활동한 걸 중요시 여깁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노는 것도 커리어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그런 과외활동으로 대학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김익준=일단 내신부터 없애야 합니다. 내신을 점수화해서 애를 왜 잡아요. 그것만 없애도 떠나는 비율 확 떨어집니다. 고교평준화 하든 말든 큰 상관 없어요. 특목고 만들어도 조기유학 갈 사람 다 갑니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른 일체의 특혜를 없애야 합니다. 공적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공채를 표방하면서 영어 성적에 의해 결정하는 것은 아예 형사처벌해야 해요.

사회=요즘 고민은 뭡니까.

김익준=지금의 40~50대는 유례없이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세대가 될 것입니다. 있는 사람들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들은 없는 대로 쓸쓸할 거예요. 있는 집의 잘 나가는 자녀들은 외국 나가 있어서 부모가 못봅니다. 임종이나 지켜볼까. 없는 집의 못나가는 자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 이후 노동시장이 급격히 유연화되면서 먹고살기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러니 부모 봉양도 제대로 못할 테고.

최세현=그래도 조기유학은 잘 보낸 것 같아요.

김익준=대신 아빠는 ‘꽝’됐지. 화상으로 가족 메일 본다고 해도 직접 애 한번 안아보는 것만 하겠습니까.(정리|박영흠기자)

P.S. 좌담 내용 가운데는 상식적인 대목도 있고 다소 과장(오버)된 부분들도 눈에 띄지만 인상적인 건 "공교육 종사자들부터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신뢰가 안선다는 거예요"란 지적.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교사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실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란 말이 이미 허사(虛辭)가 된 지 오래인 것 아닌가? "당시 주변의 고위 국가공무원들이 자녀들을 막 조기유학 보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자기들 자식 편하게 살 수 있게 정책 개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괘씸하게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자기 애들 대학갈 즈음에 국내 대학들이 영어 잘하는 애들을 위한 특별전형을 만들더라고요." That's the way thing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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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7-11 16:44   좋아요 0 | URL
유학보낼돈이면 한국에서 제대로 교육시킬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들어보면 미국에서도 과외받을것 다받고있고, 영주권이 없으면 나와도 취직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인데.
아는분 2년에 1억 쓸 예산하고 캐나다 가셨는데. 그돈으로 책집에 쌓아놓고 읽어나가면 그게 더 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거든요. 공상인가요.

로쟈 2007-07-12 09:17   좋아요 0 | URL
아마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공상'이라고 생각할 거 같습니다.^^;

마늘빵 2007-07-11 21:16   좋아요 0 | URL
영어에 미친 나라가 되어가는게 확실합니다. 그럴수록 저는 점점 영어를 못하고 싶어져요. 아예 싹 다 까먹어버렸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럼 안되는데. -_- 공부하려면.

로쟈 2007-07-12 09:19   좋아요 0 | URL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각자가 자력갱생하라는...

여형사 2007-07-12 16:3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떤 사회를 건설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것 같다는 말씀이 너무 와닿네요. 씁슬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