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

한국일보(07. 07. 10) [과학을 읽다]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우리 몸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자 학계는 이러한 유전자 중심적 시각에 대해 꽤 비판적이었다.  

유전자 결정론, 환원론 등과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도킨스가 1982년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이자 비판에 대한 반박편으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을 쓴 배경은 이렇다.
지금은 진화생물학의 교본처럼 인정 받지만, 솔직히 <확장된 표현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학계의 논쟁을 염두에 둔 터라 비전공자를 위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도킨스는 진화생물학계 내부의 적들과 반(反)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거론하고, 복잡한 논리와 시니컬한 수사로 그들을 공략하고 있어 독자들은 갈피를 잃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상대성장측정연구’니 ‘적응지형도’니 하는 낯선 개념들이 과도하게 쏟아지는 데다, 비문이 난무하는 무성의한 번역까지 더해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유전자라는 자기복제자의 생존(복제) 목적을 위해 진행되어 온 것이 곧 생물의 진화”라고 단언한 데 이어 <확장된 표현형>에서 “자기복제자는 자신을 운반하는 개체 수준을 넘어 외부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즉 유전자가 한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특정한 형태나 행동(즉 표현형)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유전자 복제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행동을 원격 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Ti 플라스미드가 박테리아를 통해 식물로 옮겨지면 감염된 식물은 암에 걸린 것처럼 무한히 증식하고, 오파인이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Ti 플라스미드는 숙주인 박테리아가 오파인을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만들어 오파인이 풍부한 환경에서 박테리아가 번성하게 한다.

오파인은 또한 박테리아 사이의 성행위랄 수 있는 접합을 촉진시키는데, 접합된 박테리아끼리 유전자를 교환할 때 플라스미드도 복제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신도 번성하게 된다. 달팽이의 뿔에 침입해 기생하는 한 흡충은 뿔 속에서 진동해 뿔을 곤충처럼 보이게 한다. 새가 뿔을 먹어 흡충이 다음 숙주로 옮겨가려는 전략이다. 더욱이 흡충에 감염된 달팽이는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원래의 본성에서 벗어나 밝고 트인 곳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역시 새에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흡충이 달팽이의 행동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유전자의 표현형은 개체를 넘어 확장된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전자군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나’라는 하나의 개체는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도킨스가 끝으로 덧붙이는 문제의식이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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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07-08-11 19:53   좋아요 0 | URL
"내가 너고, 네가 나다"의 무한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