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파일들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시몬느 베이유(1909-1943)에 관한 메모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오래전에 베이유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짐작에 그때 강의자료로 쓰기 위해 작성한 것인 듯하다. 의아한 건 그녀의 전기(연대기)를 정리하다가 만 것. 딱 8살 때까지이다. 베이유의 친구이기도 했던 시몬느 뻬트르망의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까치글방, 1978)의 연보를 베낀 것인지 나대로 정리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어쨌거나 자료 정리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한다.




참고로, 시몬느 베이유 저작들의 국내 소개는 빈약하며 게다가 중구남방이고 그나마 대부분은 절판되었다. 뻬트르망의 전기 외에 <중력과 은총> 정도가 읽을 만한 책이고, 최근에 <시몬느 베이유 철학교실>(중원문화사, 2006)이 다시 나왔다. 그밖에 에세이집들이 몇 권 번역되었지만 정체 불명의 제목들이 붙은 발췌본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 한국어와는 아직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 철학자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개인적으론 관심을 가졌던 여성이고 철학자이다. 아래는 7살(우리 나이로 8살)까지의 그녀의 삶인데, 연보는 부모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시절 에피소드들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앙드레와 시몬느 남매가 그들의 부모를 골탕먹인 이야기들이다.

1872. 베이유의 아버지 베르나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남. 베이유 집안은 알사스 지방의 오래된 상인 가문. 베르나르만이 예외적으로 의사가 됨. 시몬느의 할머니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 어머니 베이유 부인은 폴란드 태생으로 교양있는 예술가 집안 출신(외할아버지는 시인이었고, 외할머니는 피아니스트)으로 성악에 소질이 있었음. 시몬느의 집안(부모와 오빠 앙드레)은 진정으로 행복한 결혼에 의해 결합된 가정이었음: “난 여러 집안에 말썽을 일으켰는데, 도무지 우리 집안에서만은 그럴 수가 없었어.”(시몬느)
1909. 2. 3. 시몬느가 파리에서 태어남. 9개월만의 조산이었으며 생후 6개월까지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맹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시몬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이후 줄곧 시몬느는 병약한 아이였음: “어렸을 때부터 난 (맹장염으로 오염된) 독이 든 젖을 먹고 자랐거든요. 그 때문에 이렇게 실패작이 되고 말았어요.”(시몬느)
1910. 1. 시몬느도 맹장염에 걸렸으나 간심히 목숨을 건짐. 그리고 두 살때는 편도선염에 걸림.
1911. 2. 생일날 사촌에게서 보석반지를 선물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난 이런 거 싫어”라고 해 사촌을 무안하게 만듦. 이미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했음(*이게 두살 때 일이다! 내가 베이유에게서 좋아하는 덕목).
1912. 12. 심각한 맹장염 증세를 일으켜 수술을 받음. 시몬는 자신이 마취당할 때 했던 말을 깨어나서 죄다 기억. 의사는 시몬느가 회복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 회복기가 어머니가 들려준 동화: 계모에 쫓겨나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 마리는 어느 집 앞에 이르러 문들 열자 머리 위로 금이 쏟아져 내려 부자가 됨. 이 이야기를 들은 계모의 딸도 숲속의 그 집을 찾아가 문을 열지만, 머리 위로 타르가 쏟아져 발끝까지 뒤집어 씀.
1913. 시몬느를 위해 가족이 스위스로 휴양을 감. 이후 몸이 회복되고, 시몬느는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하고 매일같이 어머니를 따라 앙드레의 학교(그해 앙드레는 7년제 고등중학교에 입학)에 따라다님.
1914. 여름에 시몬느의 가족은 이모가 사는 쥴르빌로 옮겨감. 아홉 살의 앙드레는 사촌의 기하학책을 보고 혼자서 수학문제를 풀어감(*나중에 앙드레는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다). 한 의사가 장난삼아 시몬느의 손에 키스하는 흉내를 내자 시몬느는 울음을 터뜨리며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침. 아버지의 친구인 메치니코프 박사의 얘기를 들은 이후 시몬느의 가족들은 모두 세균공포증에 걸려 있었음. 시몬느는 성장한 뒤에도 키스받기를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만진 물건에 손을 대는 것도 싫어함(시몬느의 결벽증).
시몬느는 오빠를 몹시 따라서 언제나 붙어다녔음. 언젠가는 이 두 장난꾸러기가 손을 잡고 이웃집의 문을 두드린 다음 “우린 배가 고파 죽겠어요. 엄마와 아빠가 먹을 것을 하나도 주지 않아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여 부모를 곤란하게 만듦. 1차 대전이 터지고 아버지는 야전병원에 배치돼 뉘샤또로 감. 뉘샤또에서 시몬느는 비로소 읽기를 배움(앙드레가 새해 선물로 드리려고 열심히 가르침).
1915. 아버지가 기관지염에 걸려 프랑스 남부 망똥으로 이송됨. 4월 건강이 회복된 아버지는 다시 마이엔느로 이송됨. 시몬느의 집이 세든 집에는 수십 종의 장미가 만발했고, 집주인은 앙드레를 '천재', 시몬느를 '미인'이라고 부름. 이때부터 시몬느는 말을 잘 안 듣기 시작함: “시몬느는 이제 무척 다루기가 힘들답니다. 그런 시기가 왔나 봐요. 아마 제가 그애를 너무 귀여워했나 봐요. 지금도 말쌍을 부리지 않을 때는 키스해주지 않고 못배기겠어요. 아무튼 그애는 자기 기분만 나면 정말 어른처럼 굴거든요.”(시몬의 어머니)
1916. 어머니를 잃을 사촌동생 레이몽드가 집에 놀러오자 시몬느가 앙드레에게 “오빠, 우린 레이몽드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주어야 해. 그애는 불쌍한 고아니까 말이야.”라고 말함. 시몬느는 남의 불행에 민감했고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애씀. 또 시몬느와 앙드레는 공부뿐 아니라 문학에도 열정을 보여서 라신느과 코르네이유의 희곡을 모두 외어 함께 암송하면서 상대방이 틀릴 때마다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거나 운을 맞추어 시를 짓는 놀이를 함.
아버지가 알제리의 병원으로 배치되어 떠나고 남은 식구들은 파리로 돌아옴. 겨울이 되자 갑자기 앙드레는 사내다워지기 위해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지 않기로 결심하고 시몬느도 흉내를 내고 다녀서 어머니가 애를 먹음. 하루는 전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두 아이가 모두 이를 덜덜 떨면서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왜 엄마는 우리에게 양말을 못 신게 하지?”라고 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보도록 만듦. 하지만 어머니를 전차에서 내려서도 두 아이를 꾸짖지 않음...
07. 07. 02.

P.S. 인터넷에 귀한 사진 한장이 뜨는데, 1916년에 찍은 베이유 가족의 사진이다. 부모님과 함께 유일한 남매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던 앙드레, 그리고 시몬느의 모습이 보인다. 세살 위인 앙드레가 11살, 시몬느가 8살 때이다. 내게도 이런 류의 가족사진이 어딘가 남아 있을 터인데, 그맘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몬느는 34년의 짧은 생애를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예감하고 있었을까?
사진을 옮겨놓고 보니 초등학교 1학년생인 지금의 딸아이와 딱 같은 나이이다(비교적 최근에 찍은 사진들 가운데 유일한 흑백사진이라 가져왔다). '말을 잘 안듣기 시작함'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라신느과 코르네이유의 희곡을 모두 외어 함께 암송하면서 상대방이 틀릴 때마다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거나 운을 맞추어 시를 짓는 놀이"를 하는 것과는 턱없이 무관한 아이이다. 아이는 라신느와 코르네이유를 읽는 게 아니라 (오늘 쓴 독서록을 보건대) <요정들과 구두장이> 같은 책을 읽는 수준이다.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구두장이와 요정들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요정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른다."(배우고 싶은 점: "요정들과 구두장이의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본받아야겠다.")
그런 마음을 본받아야 하는 건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타고나지 않았거나 그런 마음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불행에 민감했고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애"쓴 사람은 굳이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본받을 필요가 없었을 사람이고.
엊저녁에 아이는 저녁을 먹고 모처럼 아이 엄마가 장을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사온 아이스크림을 내가 눈치 없이 꺼내 먹자 울음을 터뜨렸다(부쩍 살이 쪘다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이 금지돼 있다). 아빠만 혼자서 먹는다고.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자주 핀잔을 듣는 내가 엊저녁에는 아주 오랜만에 시간을 내 잠시 '셈셈 피자가게' 놀이를 같이 했는데, 앞서 나가던 아이가 막판에 역전을 당해 지자 또 거의 울상이 되어 짜증을 부렸다(내가 따귀를 안 맞은 게 다행이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청소년 편전 중에 <꺼지지 않는 불꽃 시몬느 베이유>(이룸, 2004) 같은 책을 사다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로선 아이가 "평생을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사회운동에 투신"하고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사색의 자유와 인간다울 권리를 억압할 수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이러한 신념을 위해 투사처럼 열렬하게 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그걸 부모로서 바라느냐 마느냐는 별개로 하고).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수중에 떨어진 프랑스의 유대동포들의 굶주림과 고통을 나누려다 '기아와 폐결핵으로 인한 심장근육의 마비'로 사망"한 베이유의 삶을 아이가 따라갈 성싶지 않다. 사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만은 아이가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다음부터는 아이가 잘 때만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