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읽을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은 책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에 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책의 앞부분은 나도 읽어봤는데(마저 읽을 시간을 못내고 있다) 지난 80년대에 관한 것인지라 20대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의미도 있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다시 회고해보는 의미도 있고. 그래서 한 개인사를 따라가며 복잡한 반성과 성찰에 젖게 된다. 마치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때처럼. 저자인 황광우씨는 <철학 콘서트>(웅진지식하우스, 2006) 등으로 형 황지우 시인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논술교재들도 여러 권 펴냈다) 서평을 읽어보니 현재 병상에 누워있다고 한다. 쾌유를 바란다.   

오마이뉴스(07. 06. 27) 책에서만 보던 혁명이 현실이 되었을 때

사람을 빨아들이는 글쓰기는 황광우가 가진 남다른 재주인가보다. 어제(26일) 저녁을 먹고 펼쳐든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어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단숨에 읽었다. 1985년 대학에 입학해, 가을 무렵에 황광우가 쓴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절망하고 분노하였던 기억이 있다.

이듬해부터 나는 참 많은 후배들에게 그가 쓴 책 '소삶'과 '들역'(우리는 그 때 이렇게 불렀다)을 읽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던 많은 후배들이 나처럼 절망하고 분노하며, 이른바 의식과 교육에 입문하였고, 곧이어 짱돌과 꽃병을 들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소위 '운동권'이 되었다.

우리 학번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혹은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노동현장'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다. 한두 학번 밖에 차이 안 나지만 86학번, 87학번은 이른바 '애국적 사회진출운동' 세대들이다.

현장에 들어갈 준비과정으로 생각하고,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 노동야학에 참여하였다. 노동야학에서 만났던 1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과 함께 읽었던 입문서 역시 황광우가 쓴 '소삶'과 '들역'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밖에 몰랐다. 어쨌든 그가 쓴 두 권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소위 의식화교육의 입문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철학공부의 입문서였던 <철학에세이>를 쓴 사람도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조성오라는 사실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쏟아낸 숱한 번역서를 읽고 공부하였던 이들이 이른바 '386세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80년대 후반 사회과학서점을 통해 그가 참여했을 인민노련 기관지 '노길'(노동자의 길, 그때는 이렇게 불렀다)을 꼬박 꼬박 사서 읽었다.

황광우를 통해 만나는 우리시대의 '전사'들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수많은 팸플릿과 정세분석 문건으로 그와 만났으며, 이윽고 어제는 그에게서 그와 함께 빛나는 80년대를 살았던 '전사'들의 무용담을 자정 무렵까지 혼자서 들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황광우의 개인사와 같은 책이다. 개인사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순한 자서전이나 개인사는 아니다.

그 내용이 어두운 과거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은이 특유의 '혁명적 낭만주의'가 스며있기 때문인지 패배보다는 작은 승리를 읽으면서 기뻐할 수 있었다. 버스 환기통을 이용해서 유인물을 뿌리는 장면에서, 혹은 수배 중 어렵사리 경찰 검거를 피해나가는 장면에서 그리고 마침내 87년 6월 100만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군사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는 승리의 장면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읽으며 우리는, 황광우를 통해서 혹은 황광우의 동지들을 통해서 혹은 그가 찾아낸 역사의 기록물들을 통해서 그 시절 전사들, 운동가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가 남긴 시 '전사'처럼 살았던 김남주, 저항의 구심 윤한봉, 그리고 박기순, 박관현, 윤상원, 강용주, 권인숙, 박종철, 전희식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지금도 치열하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특히, 윤한봉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면서 읽은 <다산시문선>에서 얻은 깨달음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요. 정약용은 식량 증산을 강조하지요. 놀리는 땅 없이 작물을 심고 개간하고, 저수지나 연못 같은 곳도 놀리지 말고 뗏목을 만들어 콩을 심으라고 해요. 그분은 민중들을 위한 생산적인 사고를 한 겁니다."

지난 봄 나온 <희망세상> 5월호를 보면, 그는 지금 폐기종으로 호흡량이 정상인의 11%밖에 안 되는 탓에 하루 15시간씩 산소 호흡기를 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1978년 무렵부터 그는 동지는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대에 대한 '기억'

나는 최근 6·10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지역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 중 일부를 맡았었다.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절이었다. 기록은 곧 국가보안법상 범죄의 증거가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의 지역 운동을 정리하는 데도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년 전 활동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도하였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기억하는 과거 중에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 '서사'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기록물 하나만 발견되어도 그것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기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이 정도 기록을 정리하는 데는 읽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어마 어마한 수고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이들은 마치 지은이가 소주잔을 마주 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쓴 이는 많은 이들의 실명을 담아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으리라.

지은이가 책 쓰기를 마치고 중풍으로 쓰러진 것도 어쩌면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가득 찬 시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부담 없이 읽히는 소설처럼 써내려 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황광우의 탁월한 기억과 지인들의 증언 그리고 이런 저런 자료를 모아 엮어진 이 책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사,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실감나는 문장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또 다른 큰 성과라고 생각된다. 탁월한 감각을 지닌 어떤 영화감독이 이 책을 읽는다면, 감동적인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가 쓴 이 책은 1970년대 어느 때부터 민중의 힘으로 '항복 선언'을 받아 낸 87년 6월 29일, 그날까지의 기록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전사' 황광우가 전하는 6월 항쟁의 의미는 이렇다.

"1987년 6월 항쟁은 1919년 3.1 만세운동과 맞먹는 거국적 국민 항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7년 6월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책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엇었다. 6월 항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 게 혁명적 상황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엄청났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날로 기록될 1987년 6월을 뜨겁게 살았던 지은이에게도 고민이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의 서문을 보면,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역사를 인식하는 간극이 얼마나 큰가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온몸으로 살았던 아버지와 그 형제들, 이한열을 보내는 시청 앞 노제에서 아버지 어깨위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사이의 간극 말이다.

얼마 전 마산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한 토론회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로부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과제는 하나는 세대를 잇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나는 87년 6월 항쟁 당시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그 후배는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며 "솔직히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은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있는 역사인식 간극을 메울 뿐만 아니라 나와 후배 사이,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첫 시도로 내가 읽은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후배에게 권해볼 생각이다. 20~30여 년 전 그날, 그 사람들에게로 확 빨려 들어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읽었던 책을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는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역사 속에서 호흡하는 실천가가 쓴 '역사'

중풍으로 병상에 누운 황광우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독자들이 우리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처럼 삶의 호흡을 느끼면서, 철학처럼 삶의 근본을 사유하는 뜻있는 기회를 만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이 말에는 자신들의 젊은 날 이야기를 통해 세대간 간극을 메워보고자 하는 지은이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우리 손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으니. 지은이의 말처럼 "역사가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보지만 실천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진다." 마오쩌둥은 대장정을 함께 한 작가 에드거 스노우가 그들의 호흡과 냄새를 기록하여 주었고, 김산은 님 웨일즈를 통해 <아리랑>을 남겼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지는 실천가의 눈과 가슴으로 씌어진 책이다. 소설 같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이 시대 실천가로서 역사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만나게 된다.(이윤기 기자)

07.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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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6-28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옛날 '소사'와 '들역'을 읽었던 기억은 나네요.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나지만...
저도 황광우님의 쾌유를 빕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맘이 더 짠하네요.

마늘빵 2007-06-28 16:11   좋아요 0 | URL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고 2때 샀는데 뭣모르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 납니다. :)
황광우씨는 몇달전 철학콘서트로 만났죠.

Koni 2007-06-28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지난해 황광우 씨의 <철학콘서트>를 읽었는데,아프시다니 마음이 안 좋네요.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iamtext 2007-06-28 18: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형제가 나란히 블로그에 올라오네요^^ 소삶뿌와 들녁(우리는 이렇게 불렀습니다)에 대해서는 저역시 아련합니다. 한참 후 황광우의 이름으로 나온 '뗏목'도 있었죠.

로쟈 2007-06-28 19:50   좋아요 0 | URL
역시나 독자들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