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이 '블룸스 데이'였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하루를 기리기 위한 더블린 시민(아일랜드 국민)들의 기념일이다.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해서가 아니라 토요일자 신문들에 관련기사가 실렸기에 알게 됐다. 그리고 일단 알게 되면 또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운 법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엔 지나쳤는데, 다시 눈에 띄기에 일단은 관련 이미지들을 찾아서 스크랩해놓는다. 언제 한번 더블린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일정을 6월 중순으로 맞춰야겠다...

한겨레(07. 06. 16) 한국판 블룸스 데이 ‘구보의 길’ 꿈꾸며
6월 16일, 오늘은 ‘블룸스 데이’(Bloom’s Day)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사에 뚜렷이 등재되어 있다(*아예 'BloomsDay'라고 붙여쓴다). 블룸스 데이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인 1904년 6월 16일을 기리는 날로, 소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 <율리시스> 이날 하루 동안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배회하는 내용을 축으로 그의 아내인 몰리 블룸,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스티븐 디덜러스 등 세 명의 중심 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이다. 현대 영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문제작이지만, 난해한 문체와 현란한 기법,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그럼에도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딴 블룸스 데이는 더블린 시민과 아일랜드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 대표적인 문학 축제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6월 16일이 되면 소설 무대인 더블린에서는 레오폴드 블룸의 행적을 따라 걷거나 소설 <율리시스>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된다. 축제는 대개 1주일 전부터 시작되는데, 올해의 경우 지난 9일부터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소재로 한 영화 상영과 노래 공연, 전시회, 걷기 행사 등이 펼쳐졌거나 진행되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절정은 역시 당일인 16일. 이날 아침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서 ‘블룸스 데이 브렉퍼스트(아침)’를 먹는 것으로 시작된 축제는 지역 명사들과 조이스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율리시스> 낭독회와 연주회, 뮤지컬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블룸스 데이의 핵심은 아무래도 주인공 블룸의 발길을 따라 더블린 시내를 걷는 답사(walking tour)에 있다.


‘레오폴드 블룸의 발자국을 좇아서’라는 이름의 답사 프로그램은 이미(11, 13, 14일) 진행되었고, 16일 하루 동안에만도 ‘조이스와 영화’ ‘음악과 정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테마 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올해는 조이스의 연작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된 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더블린 사람들>의 무대를 밟는 답사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마무리는 17일 정오 조이스 센터에서 있을 ‘<율리시스>의 기원들’이라는 강연이 장식할 참이다.
블룸스 데이의 성공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 문학에서도 블룸스 데이와 같은 축제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없지 않다. 한국판 ‘블룸의 길’에 해당하는 코스가 우리에게도 있다. 바로 ‘구보의 길’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가 걸었던 1930년대 경성의 중심부 노선이다.


건축학자 조이담씨는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2005)라는 책에서 소설 속 구보의 하루를 1934년 8월 1일로 특정하고, 청계천변 다옥정 7번지 집에서 출발해 종로네거리와 동대문, 남대문과 경성역, 광화문통 등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총연장 15.7㎞(전차 구간 5.7㎞ 포함)의 ‘구보 노선’을 정리해 놓은 바 있다. 복원된 청계천과 광화문, 시청 광장, 서울역, 남대문 등을 포괄하는 이 노선은 한국판 ‘블룸의 길’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난달 29일과 이달 9일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씨가 독자들과 함께 답사한 남한산성 길 역시 문학·역사 기행 코스로 개발할 만하다. ‘구보의 길’이든 남한산성로든, 한국판 ‘블룸의 길’의 출현을 꿈꾸어 본다.(최재봉 기자)

중앙일보(07. 06. 16) 하루의 힘
'블룸스데이'를 아시나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라고 부르며 축제를 벌인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엔 블룸이 거닌 길을 따라 걷거나 그가 먹은 음식을 똑같이 먹는 이벤트를 펼친다. 그리고 더블린의 공영방송에선 아예 아침부터 30시간에 걸쳐 '율리시즈'를 낭독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별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율리시즈'가 1904년 6월 16일 오전 8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2시 반까지 하루가 채 안 되는 19시간여 동안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무대로 일어난 일들을 장장 800여 쪽에 25만여 단어로 담아낸 것임을 감지하는 순간 '블룸스데이'의 비밀 아닌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 말이 800여 쪽이지 그것은 영어 원본의 경우이고 '율리시즈'의 우리말 번역본은 해설을 포함해 1300여 쪽이 넘는다.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단 하루, 아니 19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일을 묘사한 것이라니! '율리시즈'를 보노라면 하루, 즉 24시간=1440분=86400초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것들의 은밀한 압축이요, 함축인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고 경탄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에서의 단 하루의 일들로 한 권의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단 하루의 삶일지라도 그것은 한 권의 소설 이상을 탄생시킬 만큼 그 뭔가로 농축돼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율리시즈'에 묘사된 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한평생의 숙제요, 존재할 이유이며 삶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 앞에선 묘한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김종건 전 고려대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 시절 원어 강독 시간에 '율리시즈'를 만나 자신의 평생을 그것의 번역을 위해 바쳤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율리시즈'를 번역한 김 교수는 20년 후인 88년 다시 개정번역을 냈고, 또 한 해 모자란 20년 후인 올해 2007년에 세 번째 번역본을 내놓았다. 평생 고치고 또 고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의 평생을 소설 '율리시즈'에 묘사된 하루와 고스란히 맞바꾼 셈이다. 그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일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평생을 바친 것이다. 물론 노 교수의 학문적 투혼도 무서울 정도지만 25만 단어 이상의 사연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가 뿜어낼 수 있는 하루의 힘, 그 하루의 저력은 무섭다 못해 위대하지 않은가.
그래서 하루가 아까운 것이다.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단칠정 논쟁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의 13대 후손인 기세훈 변호사의 고택 사랑채 당호는 다름 아닌 애일당(愛日堂)이다. 애일당이라…하루를 사랑하는 집? 아니다. 애일당 툇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것이 너무 아쉬울 만큼 좋다. 결국 애일당은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하루가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깝고 아쉽다는 함의가 깃든 집 이름이 아닐까.
하지만 하루가 지나는 것을 아깝게만 생각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아까운 하루를 최고의 하루,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 그렇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분명히 선물이다. 그 선물인 오늘 하루를 최고의 날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다.(정진홍 논설위원)

07.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