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 가던 길에 이번주 씨네21과 토요일자 한겨레를 집어들었다. 씨네21의 특집기사는 '내 인생의 영화평론가'인데 새로운 얼굴이 없어서 다소 실망(?)했다. 대부분이 한번쯤은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었던 것(유일한 예외라면 작고한 영화평론가 이영일 선생 정도이다). 한겨레의 '책과 생각'에도 눈길을 확 잡아끌 만한 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해서 대신에 김지석 논설위원의 '종횡사해'나 옮겨놓는다. 항우울제 '프로작 20년'에 관한 기사이고 나름대로 흥미롭다(며칠전 한 여대생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영향도 있을 법하다). 작년에 <우울증에 반대한다>(플래닛, 2006)가 출간되었을 즈음에 관련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909608) 같이 참고할 만하다.

한겨레(07. 06. 15)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20년, ‘병 주고 약 파는’ 우울한 사회

올해 스무 돌을 맞은 건 6월 민주항쟁만이 아니다. 그만큼 두드러지진 않지만 지구촌 주민들의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다. ‘프로작 혁명’이 그것이다. 프로작은 미국 회사가 개발한 우울증 치료제다. 1987년부터 시판된 이 약은 이전 약들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복용이 간편해 우울증 치료제의 새 시대를 열었다.

지금 미국에서 한해 2천만 건 이상 처방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보통 사람도 기분을 좋게 하려고 먹는 바람에 ‘해피 메이커’라고 불릴 정도다. 사람의 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프로작은 그 중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약이 호전성과 자살 충동도 키운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우울증은 가장 흔한 질병 가운데 하나다. 지구촌 인구의 20%가량이 평생 한번 이상 경험한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까지 인류의 장애 요인 가운데 심장질환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우울증의 첫 발병 평균연령은 20대 후반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2배가량 많으나, 50살을 넘으면 비슷해지고 노인이 되면 함께 늘어난다.

스스로 우울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미국 작가 앤드류 솔로몬이 쓴 <한낮의 우울>(민음사 펴냄)은 ‘우울증 완전정복’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우울증은 숨겨야 할 잘못이 아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의지를 갖고 꾸준히 대처해야 할 지속적 증상이다. 의료진과 주위 사람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남에게 자신의 우울증 증상을 털어놓는 일은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우울증이 약물·알코올 중독과 대인관계 단절,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우울증 자체의 속성은 아니다. 그보다는 장애인 문제와 마찬가지로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완고한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비싼 치료비 또한 좌절과 재발에 기여한다.

현대사회는 우울증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이 병을 일으키는 주된 심리적 원인은 상실과 스트레스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학교, 사회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가 학업, 외모, 재산, 지위 등 여러 면에서 비현실적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된다. 그 기대와 현실의 거리가 상실감의 원천이다. 상실감은 일상 생활에서 안개처럼 스며들어 마음 구석구석을 갉아먹다가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절망으로 치닫는다. 속도와 다중인격을 강요하는 전자문명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 그래서 ‘시대의 우울’과 ‘사회의 우울’이 상승작용을 한다.

현대사회는 많은 구성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치명적 결함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도 누구도 그것을 나서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프로작 혁명 바람을 타고 다양한 종류의 우울증 약이 개발돼 팔리고 있다. 먼저 병을 만들어낸 뒤 새 약을 개발해 산업을 창출하지만 병의 원인을 없애는 데는 무심한 것이 현대사회의 우울한 작동방식이다.(김지석 논설위원)

07. 06. 16-17.

P.S. 프로이트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우울증과 그 불만' 정도가 되겠다(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제거 가능한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도 우울해지는 게 인간 아닌가?). 기사에서 '우울증 완전정복'으로 언급된 <한낮의 우울>에 버금하는 체험담은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의 나라>(1994/1995)이다.

<비치: 음탕한 계집>(황금가지, 2003)의 저자이기도 한 워첼에 대해서는 "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요커',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의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95년 롤링스톤 대학 언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항우울제의 나라>, <더, 지금, 다시> 등이 있다."고 소개돼 있는데, <항우울제의 나라>가 바로 <프로작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 후속작인 <더, 지금, 다시>도 저자의 체험담을 담고 있다. <프로작의 나라>는 2001년에 영화화되기까지 한 베스트셀러이다. 이런 책이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은 걸 보면, 우리의 우울증은 아직 정도가 심하진 않은 것인지?  

20대 초기 발병시 남성보다 두 배 높다는 여성의 우울증 발병 원인도 무엇인지 궁금하다(우울증은 히스테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워첼의 경우를 참조하자면,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여자는 '까다로운 여자(difficult women)'가 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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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d 2007-06-17 12:1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프로작을 다년간 복용해본 자로서...통념처럼 약에 취하는 수준은 아닙니다.미국은 거대 제약회사가 대화치료(정신분석 등)의 힘을 '비과학적' 명목으로 '거세'하는 중입니다^^

로쟈 2007-06-17 12:56   좋아요 0 | URL
그러한 거세에 제약회사들의 입김도 한몫했겠네요...

가을산 2007-06-17 17:36   좋아요 0 | URL
제 느낌으로는 몇십년 후면 프로작 등이 커피나 비타민 처럼 복용될 것 같아요.

로쟈 2007-06-17 23:20   좋아요 0 | URL
프로작이 인민의 종교가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