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영화 리뷰 하나를 옮겨온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에 대한 언급 때문인데, 실상 리뷰 대상인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하이스미스의 작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감독의 이름은 생소하다). 나 역시 이 리뷰와는 무관하게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이미지로 띄워놓는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 집>(창해, 2007)과 함께. 사실 그녀의 <검은 집>(표제작이 포함된 작품집이 국내에선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5)로 번역돼 나왔다)에 대해서는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타인의 환상을 침범하지 말라, 는 게 교훈이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리뷰는 그닥 공포스럽지 않다...

컬처뉴스(07. 06. 14) 아무 감정 없는 잔혹한 살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미국작가가 쓴 소설 중에 <검은 집 Black House>이라는 게 있다. 한 외딴 마을의 뒷산에 이른바 검은 집이라 불리는 흉가(凶家)가 하나있는데, 마을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 모일라치면 어김없이 화제로 등장하곤 했다. 귀신을 봤다는 등 여러 설(說)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 흉가에 대해 듣게 된 한 나그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을 샅샅이 뒤져보고는 그저 텅 빈 집일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날로 마을사람들한테 그 사실을 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호들갑을 떤다는 투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일단의 마을 사람들이 격분하여 나그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마을사람들한테 그 흉가는 바로 환상공간이었고, 그 불쌍한 나그네는 환상공간을 침범하는 우를 저질렀던 셈이다.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사실 이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시 유스케가 쓴 동명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두로 꺼낸 까닭은 무엇인가?

 

 

 

 

 

 

 

 

신태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은 집>은 한국영화로서 드물게 보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이전에도 스릴러 영화는 심심치 않게 만들어졌지만, 무늬만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검은 집>은 이 장르에서 거둔 하나의 작은 성취라고 할만하다. 이 영화는 보험사기라는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병폐현상과 싸이코패스라는 원인모를 병리현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매우 지적인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다.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보험사기와 싸이코패스는 이 영화를 푸는 두 개의 핵심 코드가 된다.

다 알다시피 보험(保險)이란 적금(積金)과는 다르다. 일정기간 적립했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쳐서 받는 적금과는 달리 보험은 만기가 되더라도 원금 회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사망, 화재, 질병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내게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정한 보험금을 주어 그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불행 중 다행(한몫 챙기니까)이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금은 한 푼도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 중 불행이랄까?

바로 그 틈바구니 속에 보험사기라는 유혹이 끼어들게 됨은 물론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뜻한 바 있는 사고’를 통해 위장(僞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사정 업무를 통해서 뜻하지 않은 사고냐 ‘뜻한 바 있는 사고’냐를 가리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의파 싸나이 전준오(황정민)에게 어느 날 보험사기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검은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전화문의의 내용인즉, 자살을 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탈 수 있다’이고, 바야흐로 억대 보험금을 노린 범인의 대담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단순 사기꾼이 아니라 싸이코패스였다는데 스릴러물로서의 영화의 묘미가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해 간단명료한 정의를 내려준다. 극중 한 젊은 심리학도가 준오에게 찾아와서 자신이 작성한 석사논문을 통해 싸이코패스와 싸이코의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우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해보자.

심리학도(한승규) : 싸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감정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어요.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데다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거죠. 개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설령 자기 자식에게 조차 잔혹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요.

전준오 : 아니 그럼 싸이코랑은 다른가요?

한승규 : 싸이코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뿐예요. 하지만 싸이코패스는 다릅니다. 아이를 죽이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이는 거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그냥 물건 보듯 하는 겁니다.

전준오 : 병입니까?

한승규 : 전 병으로 봅니다. 치료할 방법은 없어요.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참고로 극중 이 남자는 그 싸이코패스로부터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라는 스릴러물의 공식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인성을 가진 싸이코패스가 보험사기에 뛰어들었고, 순박한 보험사 직원 전준오가 그 상대역으로 간택을 당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인공 전준오가 과연 어떻게 그 악의 손길을 물리칠지가 영화 감상의 관건이 됨은 물론이다.

전준오 역을 맡은 황정민은 기대한 대로 무척이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황정민은 일치감치 캐릭터 배우(character actor : 조연급)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너는 내 운명>이라는 가장 최근작을 통해서 당당하게 스타로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말하자면 캐릭터 스타(주연급)로의 승격인 셈이다. <검은 집>에서 그는 캐릭터 창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이병헌을 위협하는 극악한 캐릭터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던 황정민은 바로 얼마 후 <너는 내 운명>에서는 순박하기 이르데 없는 우직한 노총각으로 180도 변신을 한다. 그랬던 그가 다시 열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소심한듯하면서도 대범하게 행동에 나서는 보험사 직원 역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관객이 응답할 차례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검은 집>의 핵심 줄거리를 하나도 발설하지 않고 리뷰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검은 집’의 환상공간을 불가피하게 침범(侵犯)하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환상공간을 대면코자 한다면, 직접 ‘검은 집’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김시무/ 영화평론가)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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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6-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로쟈님의 페이퍼가 여전히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 로쟈님의 시도 참 좋았어요.

로쟈 2007-06-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온 글을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머쓱하네요.^^;

Joule 2007-06-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모르시나봐요. 재미있는 글 퍼오는 것도 능력이라는 거. 전 신문도 안 보고 테레비도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뉴스를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