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노블레스'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김영사)에 대한 리뷰를 청탁받고 쓴 것이다. 지난달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김영사)까지 출간되었는데, 진화론에 관한 책과 무신론 책으로 대략 양분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 만들어진 위험>은 도킨스의 무신론 압축판으로 읽을 수 있다...
노블레스(21년 5월호)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적 무신론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저자다.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1976)를 시작으로 그의 저작 대부분이 번역되었고, 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가장 명쾌한 해설가로 찬양받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명도 높은데, 주로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만들어진 신>(2006) 때문이다. 그로부터 13년 뒤(번역서는 15년 뒤)에 나온 <신, 만들어진 위험>은 <만들어진 신>의 속편이면서 보급판이다.
<신, 만들어진 위험>의 독자는 두 부류로 나뉘는데, <만들어진 신>을 이미 읽은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고려해 내용을 되짚어보면 <만들어진 신>은 종교, 특히 인격신에 대한 신앙을 근거 없는 망상으로 비판함으로써 도킨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로 만들어준 책이다. 비종교인은 그의 거침없는 종교 비판에 환호했고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은 그의 비판이 너무 거칠거나 독선적이라고 생각했다.
도킨스의 도발적인 과학적 무신론은 자연스레 그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낳았다. 학자 중에서 꼽자면, 도킨스를 포함해 '무신론의 네 기사'로 불릴 만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등이 그의 강력한 동료들이고(네 사람은 <신 없음의 과학>을 공저했다), 존 레녹스와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의 신학자가 단호한 비판자들이다. 쟁점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부터 '우리가 도덕적으로 선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이 필요한가'까지 여러 문제에 걸쳐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지적 설계론과 그 비판이다.
흔히 도킨스를 비롯한 일군의 '전투적 무신론자' 입장을 신무신론(새로운 무신론)이라 부르는데, 신무신론의 특징은 종교적 신앙을 과학이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그 비합리성을 가차없이 폭로하는 데 있다. 사실 과학과 종교가 반드시 대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종교가 각각 사실의 세계와 의미(구원)의 세계에 관여하고 각기 다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이라면 둘의 공존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이 정색하고 종교 비판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변형된 창조론으로서 지적 설계론의 등장과 득세가 있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 현상이 너무도 복잡하기에 무작위적인 우연의 결과로는 탄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치 시계처럼 복잡한 기계장치가 시계공이라는 창조자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복잡다단한 생명 현상도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설계자를 가정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것이 틀린 주장이며,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실제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예증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종교가 어떻게 해서 진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까지도 제시하려 한다 예컨대 종교가 진화적 적응이라는 설과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설, 그리고 종교가 문화적 복제자로서 하나의 밈(meme)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사실 생명의 진화에 관한 진화론의 설명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지적 설계론이 충분한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신학자와 일부 과학자는 다시 생물학 대신에 우주론을 주제로 끌어온다. 중력상수(G)를 포함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힘과 그 상수의 값이 왜 그렇게 매겨졌는지 현재의 과학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것이 신이라는 설계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내기를 건다면 단연코 신이 아니라 과학에 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 내기판이 독자 앞에 놓여 있다. 당신이라면 어디에 걸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