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재미철학자 승계호 텍사스대 석좌교수가 내한하여 강연회를 가졌다. 'T. K. Seung'이름을 저자 혹은 편자로 달고 있는 책을 나는 두어 권 갖고 있는데, 영어명 T. K. Seung이 바로 승계호 교수이다.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김재권, 조가경, 정화열, 이광세 등과 함께 가장 손꼽히는 재미철학자가 아닌가 싶다('한국철학자'라고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책은 모두 국내에 한두 권씩은 소개돼 있다. 특별히 더 눈길을 끈 건 이 분이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문화철학·문화비평 쪽도 다룬다는 것. 이번 석학강연의 주제 중 하나도 '과학과 시의 갈등'이었다. 책으로 묶여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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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07. 05. 29) 과학과 詩는 왜 싸웠나
조선일보사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9회 석학연속강좌’가 오는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 이번에 초청된 석학은 정치철학과 문화철학·문화비평의 대가로 손꼽히는 승계호(承啓浩·T K Seung·74) 미국 텍사스대 인문학 석좌교수다.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그의 공개강연은 ▲31일 오후 3~6시 ‘과학과 시의 갈등’ ▲6월 1일 오후 3~6시 ‘마음과 물질의 신비’를 주제로 두 차례 이뤄진다.
평북 정주 출신인 승 교수는 6·25 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했고, 연세대를 거쳐 1954년 도미(渡美), 예일대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단테를 주제로 한 문학비평서를 써서 명성을 높였으며, 이후 플라톤·칸트·니체 등 서양철학의 거장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해 미국 지성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직관과 구성(Intuition and Construction·1993)’의 반향은 컸다. 현재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한국계 철학자는 그와 김재권(브라운대), 정화열(모라비아대), 조가경(뉴욕주립대), 이광세(켄트주립대) 교수 등이 있다.
첫 번째 강연에서 승 교수는 서양철학의 정신을 이루는 두 기둥인 ‘과학’과 ‘시(詩)’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싸움은 고대 그리스철학이 탄생했을 바로 그 때 시작됐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모든 지혜의 샘으로 존중받았으나 그 권위는 새로 등장한 과학(고대의 과학은 자연학 개념)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둘 중에서 어느 쪽이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있느냐는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중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철학이었으며, 시나 과학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보존하고자 했다. 플라톤은 과학과 시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논리학·자연학은 물론 시학·정치학까지 망라한 개별 과학들의 체계였다.
철학과 자연과학을 구별하는 경계선은 데카르트에 가서야 도입됐다. 칸트는 형이상학을 ‘선험적 원리들을 바탕에 둔 과학’으로 건립하려 했다. 하지만 궁극적 진리의 소중함을 보이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현대철학계에서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이제 대부분의 철학적 저술은 시시하고 지루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더 이상 ‘만학(萬學)의 여왕’이 아닌 철학을 현재의 곤경에서 구출하려면 다시 철학에서 ‘과학’과 ‘시’의 역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연은 심신(心身)의 관계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탐구다. 승 교수는 “나의 마음과 나의 뇌는 같은 것이므로, 뇌가 마음에 작용한다든가 그 역이 성립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현대의 심신 이론 중 정신을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보는 ‘환원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세포들이 생물학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관계망을 형성함에 따라 생명과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며, 이 관념을 추적한다면 물질세계의 내재적 생명 원리가 바로 영혼이라는 플라톤의 사상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인 정신과 물질은 결국 동일하다는 독특한 이론이다.
지난 2000년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는 지금까지 김재권 미국 브라운대 석좌교수(철학),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신학), 다니엘 데넷 미국 터프츠대 교수(인지과학), 모리스 고들리에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장(경제인류학), 정재식 미국 보스턴대 석좌교수(종교사회학), 마이클 루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석좌교수(생물학 철학),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필립 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중국역사학)를 초청해 여덟 차례의 강좌를 열었다.(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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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07. 05. 30) “철학은 좀 더 시에 가까워져야”
조선일보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은 정치철학과 문학비평·문화철학의 세계적 권위자 승계호(承啓浩·T K Seung) 미국 텍사스대 인문학 석좌교수를 초청, ‘2007 제9회 석학 연속강좌’를 갖는다. 지난 2000년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는 학문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석학을 초청, 강연과 토론의 장(場)을 통해 세계 첨단의 지식 흐름을 소개해 왔다. 이번 주제는 ‘서양철학의 문화적 배경’이다. 승계호 교수는 플라톤·단테·칸트·괴테·니체와 같은 서양 지성의 거장들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미국 학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켜 왔다. 첫 번째 강연에선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에서 나타난 ‘시(詩)’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갈등에 대해 말하고, 두 번째 강연에선 심신(心身)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이야기한다.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엄정식(嚴廷植) 서강대 교수가 그를 만나 대담을 가졌다(*대담은 원본을 옮겨놓는다).
엄정식 교수=승 교수님 오래간만입니다. 1995년에 열린 '한민족 철학자 대회'때 다녀가신 적이 있지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어떠세요?
승계호 교수=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정말 이번에는 한국이 더 발전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철학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좀 더 다듬어졌다고나 할까요.
엄정식=우선 선생님이 철학을 공부하신 동기를 말씀해주시지요.
승계호=저는 평안도 정주에서 남하하여 전쟁에 참전했던 6·25세대입니다. 도미 유학의 기회를 얻었을 때, 무엇보다 이 전쟁의 의미에 관해서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서구인들의 전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구 문화를 심층적으로 공부해야 그 전쟁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 가운데서도 제일 효과적으로 서양문화를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게 되면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과 같은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전공을 나누기 전에는 세계 문학에 대해서 배우는데, 공부를 하면서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철학이었습니다.
엄정식=6·25 전쟁을 경험하시고 나서, 그런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제대로 파악하시기 위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승계호=그렇지요. 한국을 이해하려면 한국만 보고서는 이해를 못합니다. 세계 문화 전체 속에서 파악을 해야 합니다.
엄정식=철학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셨지만, 용어 자체가 너무 넓은거 같군요. 언젠가 콰인(Quaine·1908~2000, 미국의 분석철학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철학이 뭐냐?” 콰인의 대답으로는 철학은 너무나 넓어서 철학자가 하는 게 철학이고, 본인에게는 논리학이 철학이라는 겁니다. 다른 이에게는 문학이 철학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문화가 철학이고. 선생님에게는 철학이 무엇이고, 왜 그런 철학을 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승계호=말씀대로 철학은 굉장히 광범위하지요. 그래서 많이 방황했습니다. 결국 예일대학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 로스쿨에 입학신청서를 냈는데 둘 다 합격한 거예요. 고심 끝에 예일대학 로스쿨을 선택했는데, 공부를 해보니 법학은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법 공부라는 게 단지 직업교육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법관이 되어서 일생을 보낼 수 있을까? 법을 공부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서양 문화를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법철학을 하는 노스로프(F.S.C. Northrop)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 분이 저에게는 동양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더니, 나보고는 서양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결국 두 번째 학기에 로스쿨을 그만두고, 다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도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학 철학과에 서류를 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하버드 대학에서는 전교에서 한 명에게 주는 유니버시티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하버드를 가려고 마음먹던 중에, 예일대학 철학과장을 맡고 있던 존 슈뢰더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은 칸트학자였는데, 하버드에 가지 말라고 말리는 겁니다. 거기 가봐야 콰인이니 누구니 맨 논리학만 공부할게 뻔한데, 법과 공부가 싫다고 뛰쳐나온 나온 녀석이 하버드에 가면 공부하기 더 싫어질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자기와 같이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문화에 대해서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을 거다. 뭐 이렇게 설득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일 대학에 가서 다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정식=정말 긴 이야기군요.
승계호=사실 그 전에 예일 대학 학부를 다니던 1학년 때 문학강좌를 들으면서 서양 문학, 특히 ‘시’는 동양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양의 문학은 서양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학기말에, 그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강의가 감명 깊었다는 이야기를 드리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름방학 3개월 동안 서양 문학과 문화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작품들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께서 긴 목록을 적어 주셨어요. 받고 나서 제가 물었습니다.적어주신 것이 중요한 작품 모두냐고요.그랬더니 하나가 더 있기는 한데, 어차피 어려워서 읽지 못할 거라 적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연히 나는 그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게 바로 단테의 '신곡'이라는 겁니다. 그 말에 오기가 날 수 밖에요. 그 해 여름방학 내내 다른 것은 제쳐두고, 그것만 읽었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그 후에 많은 방황을 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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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로스쿨 다니면서 그 동안 접어두었던 '신곡'을 여름방학 때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단테의 '신곡'에 관한 책만 수천 권이 있었을 거예요. 그 중에서 몇 권 빌려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조금 눈이 뜨이기 시작했는데, 눈이 뜨일수록 '신곡'은참으로 기형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서사시(epic)는 영웅이야기인데, '신곡'은 서사시이지만 영웅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서사시적 영웅 없는 서사시’(Epic without epic hero)라고 불렀어요. 로스쿨 그만둘 때까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학 철학과 대학원 1학년 1학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공부했어요. 그리고 그 책에 대해서 아퀴나스가 쓴 주석서를 읽었는데, 그게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 주석서를 읽으면서 단테 '신곡'에 대한 해결책이 생각났어요.
단테의 '신곡'을 보면, 천당이 10군데, 연옥은 7군데, 지옥은 9군데 입니다. 이게 정합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옥에서는 죄 때문에 처벌 받고 연옥에서는 갱생하는 것이니, 지옥의 수와 연옥의 수가 서로 맞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천당하고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갱생한 사람이 천당으로 가는 건데, 천당의 수와 연옥의 수가 다릅니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것은 프라이머리 릴리전(primary religion)이 3개였습니다. 지옥도 그렇고 연옥도 그렇고, 그게 성부, 성자, 성신과 연결됩니다. 그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도 나옵니다. '신곡'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것인데, 영웅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읽으면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엄정식=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석서가 아주 중요했군요.
승계호=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책을 하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가끔 마주칠 때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시던 예일 대학원의 대학원장님이었습니다. 바로 대학원장님을 찾아가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에 무려 1,000불이라는 거금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때 1,000불이면, 지금 돈으로 10,000불 정도가 될겁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에 Fragile Leaves of the Sybyl: Dante's Master Plan(1962)을 썼습니다.
엄정식=단테를 통해서 철학으로 들어오신 거군요.
승계호=그렇지요. 그리고 그게 바로 ‘주제학' 을 한 것입니다.
엄정식=선생님의 ‘주제학’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승계호=간단해요. 주제가 뭐냐,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단테의 해석에서 내가 찾아낸 주제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어요.
엄정식=그럼 정합성과 일관성에 의해서 ‘주제’를 찾아내시는 거군요. 뭘 다루고 의도가 뭔가 등등. 그러나 문학적으로 표현해도 되고, 철학적으로 표현해도 되고,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군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는 없고,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의 해석은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덜질 수 있겠군요. 주제가 여러 가지로 나올 경우,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요?
승계호=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을 얼마나 잘 해석할 수 있느냐, 그것이 기준입니다.
엄정식=그렇다면 가장 포괄적이고,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하는 것이로군요.
승계호=그렇습니다. 광범위하게 가장 포괄적이어야 합니다.
엄정식=버트란드 러셀(B. Russell)은 철학이 과학과 종교의 중간쯤에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철학이 시와 과학의 중간쯤에 있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아마 선생님의 문학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러셀이 신화를 읽으면 종교적 측면을 많이 볼 것이고, 선생님께서는 시적인 측면을 많이 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화에서는 표현 방식에서 시적인 방식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그런 표현 방식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셔야 하지 않을까요?
승계호=한국 사람들은 ‘시’(詩), ‘시적’(詩的)이라고 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대개 한국사람들은 ‘시’하면 ‘시조’(時調)를 떠올리는데, 서양에서의 시는 시조와 다릅니다. 우리는 궁극적이라고 하면 과학적이라고 보고, 과학 이상의 것을 더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과학자 자신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을 때 그것이 시적 작업이고 과학 자체가 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 방식보다는 내용과 주제가 더 중요합니다.
엄정식=대체로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이론학’이나 ‘실천학’과는 다른 ‘포이에티케(poietike·詩作)’와 ‘포에시스(poiesis·詩)’에 대한 견해를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선생님의 생각은 넓은 의미로 문학적, 더 넓게는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께서는 사실 단테의 '신곡'도 신에 관한 것인데도 시적인 것을 보시더니, 니체를 논의할 때도 그렇고, 또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신과의 대결인데도 시적인 요소를 찾아내시는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승계호=니체를 그렇게 해석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철학적 경구(Philosophical Aphorism)’로 보았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엄정식=그러니까 선생님의 철학관은 그런 것이군요. 앞서도 말씀하셨던 콰인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승계호=정반대지요!
엄정식=하긴 콰인에게 왜 논리학만 하고, 종교나 예술이나 이런 쪽은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논리학만 하기에도 바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의 철학관을 이해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철학을 이해할 수 없군요. 흥미로운 것은 선생님의 철학관이 있지만, 다른 철학에 대해서 그 철학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세미나에서 다루셨던 ‘프레게의 논리혁명’과 ‘콰인의 형이상학 혁명’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시면서도, 언어철학에서 말하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으시더군요. 특징적으로 말해서 신화 시대부터 플라톤의 등장으로 ‘존재론적 전환(Existential Turn)’, 그 후부터 데카르트에 이르면서 ‘인식론적 전환(Epistemic Turn)’으로, 그리고 현대철학에서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현대철학에서는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거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생각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죠.
승계호=제가 보기에 프레게의 철학을 논의하면서, 데카르트와 칸트의 논의를 연결시켜서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데카르트 이후 모든 것은 객관적이어야 했고, 더 나아가 프레게는 모든 논의에서 심리학주의를 배제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프레게는 새로운 논리학을 내세웠고, 이것이 논리혁명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언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언어적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어 자체가 대상을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논리혁명이라면, 정말 논리가 있다면, 데카르트의 이론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데카르트-칸트-프레게에 이르기까지 핵심은 철학을 과학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그 생각을 실현 못했지만, 데카르트 자신은 수학을 진짜 과학으로 보았습니다. 또칸트는 이 수학을 이용해서 진정한 과학을 한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철학도 결국 순수하게 아 프리오리(a priori)하게(=선험적으로) 과학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해 보세요.
프레게는 칸트가 희망하고 꿈꾸던 철학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만드느냐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죠. 외연 논리로 칸트의 선험적 세계를 분석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선험적 직관을 가지고 했는데, 프레게는 선험적인 것 없이 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에 카르납이나 콰인이 했던 작업은 칸트가 하려는 것을 러셀이나 프레게가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다는 거지요. 정말로 철학을 과학화할 수 있는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학을 자연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적 전회와 같은 것보다 어떻게 해야 철학이 진정한 과학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더 중요합니다.
엄정식=선생님께서는 철학을 넓은 의미의 시와 과학의 중간쯤에 있다고 보시고 있습니다. 서양의 철학은 어떻게 보면 시적인 측면에서 과학적인 측면으로 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언어적 전환은 별 의미 없고, 철학은 끊임없이 과학화의 과정을 밟았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승계호=콰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형이상학적으로 해결 못한 문제들은 과학화 되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엄정식=근데 그 해석은 제가 볼 때는 분석철학 안에서의 해석이고, 그 중에서 특히 과학화의 경향을 쫓아가는 해석 같아요. 칸트의 '프롤레고메나'에서 “과학을 의식하지 않는 형이상학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향은 이제 프레게와 콰인한테 이어졌고, 전부 과학화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현대 철학의 과정을 보면 후설과 사르트르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그런 흐름도 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흐름이었고, 그것은 한마디로 반과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분석철학 내에서도 과학을 의식했지만,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논리학을 형식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또 비트겐슈타인도 어떤 의미에서든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흐름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승계호=재미난 질문입니다. 현상학은 원래가 반-과학이 아닙니다.
엄정식=그것을 넘어서고자 한 것이죠.
승계호=그게 중요합니다. 사실은 데리다가 나온 이유가 과학주의를 추구하면서 나왔습니다. 과학화를 의식한 것이지요.
엄정식=그러면 앞으로 현대철학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하세요?
승계호= 실천적이라는 것은 어떤 철학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은 완전한 이론을 추구하지는 않고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완벽한 설명은 형이상학이지 과학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엄정식=참, 공개강연에서 다루실 심신(心身) 문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오랫동안 인격체적 ‘자아’의 문제에 고심해 왔습니다. 그런데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이른바 ‘공동체적 자아’의 가능성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인격적 자아를 담론에 끌어 들였을 때 인격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여기서도 공동체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승계호=저도 엄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인격체는 어떤 의미로 하나의 공동체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가족이나 민족, 국가 같은 공동체에 자아를 담론의 전제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엄정식=사실 저는 이 개념은 현대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에는 ‘민족적 자아’의 마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고 지금의 분단시대는 이 자아의 분열을 획책한다고, 그리고 통일은 바로 이 자아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해석 할 수 있지요.
승계호=흥미 있는 발상입니다. 그러한 발상과 개념의 구체화는 조국의 현실을 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엄정식=선생님을 비롯해서 외국에서 철학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한국적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특히 남한에서는 동서와 고금이 심층적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에 철학하기에는 최적의 풍토를 조성한 셈이거든요.
승계호=그러면 한국에서 훌륭한 철학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해도 좋겠군요.
엄정식=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될 ‘세계 철학자 대회’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많이 지원해 주십시오. 자주 오셔서 현대 한국 철학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계호=감사합니다.
엄정식=우리 이야기들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07.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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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승계호 교수의 책으론 정치철학서로 분류되는 <직관과 구성>(나남, 1999)이 진작에 번역돼 있다(분량 때문에 미뤄둔 책이었지만 나는 저자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구입했다).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동명사, 1999)와 함께 지난 1993년에 출간된 이 분야의 '문제작'이란 평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