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로 학교에 나왔는데 또 눈에 밟히는 기사들이 있어서 어쩌지 못하고 옮겨놓는다. 그 중 하나는 한국일보의 '100℃ 인터뷰'로 기억에 공지영, 이문열에 이어서 소설가 김훈 편이다. 김훈에 관해서라면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들을 옮겨놓았지만 이번에도 소설쓰기와 관련하여 새로운 내용들이 포함돼 있기에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내가 아는/그리는 그의 모습과 크게 다른 대목은 없지만 가령 <칼의 노래>를 쓰면서 이가 8개나 빠졌다는 이야기 등은 과문한 것인지 몰라도 처음 접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소설쓰기의 결과보다도 그런 '과정'이다. 그가 <남한산성>을 쓰기 위해서 눈발로 뒤덮인 산성을 헤매고 다녔다는 얘기들을 나는 '존중'한다. 결과야 기대 이상일 수도 있고, 이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빠지고 눈길을 헤매며 다닌 일들은 '소설'이 아닌 '삶' 자체이다. 그는 드물게도 그 삶을 (매번 패한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문장으로 버틴다는 점에서 존경에 값한다. 스트레이트로 말하자면, "그는 밤새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한국일보(07. 06. 08) [100℃ 인터뷰] 소설가 김훈

고독한 무사의 진중일기 <칼의 노래>(2001)로 자신의 문장을 알린 소설가 김훈(59). 그가 이번에는 병자호란을 감당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묘파한 <남한산성>을 통해 삶의 영원성을 물었다. <칼의 노래>가 100만부, <남한산성>이 출간 한달 만에 1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김훈을 한국일보 문화팀 기자들이 만났다. 극단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허무주의자, 보수주의자, 남근주의자라는 지적을 받아온 김훈은 그가 오랫동안 몸담은 한국일보 후배 기자들에게 높임말과 반말을 적당히 섞어가며 세상과 문학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_<남한산성>에는 인조도, 심지어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의 칸도 정당성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왜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까.

"서날쇠, 정명수, 뱃사공 같은 민초의 삶에는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화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대장장이 서날쇠가 임금, 사대부가 남한산성에 들어오자 자신도 살아야겠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하는데 정당한 삶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역관으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정명수는 세습 노비의 자식인데 그에게 조국이 있겠습니까. 그가 여자를 노략질하고 깔깔거린 것도 비난할 수 없어요."

_인조 등 병자호란을 초래한 집권세력의 잘못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는데요.

"47일간 고립무원 상태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안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지. 싸우자는 자, 투항하자는 자, 오늘은 싸우자 했다가 내일은 투항하자는 자, 오늘은 투항하자고 했다가 내일은 싸우자는 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 살아야 겠다고 개구멍으로 성을 빠져나가는 자, 살자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 나는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어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는 아니니까."

_<남한산성>을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 나는 세계의 맨 밑바닥은 악과 폭력이며 그것이 전쟁을 통해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소설은, 역사적 전쟁을 소재로 삼은 것이지요. 나는 이 세계가 악과 폭력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어요."

_세상을 그렇게 보다니, 너무 비극적인 생각 아닙니까.

"그것이 세계의 본디 모습이지요. 인류사의 거듭된 약육강식. 그것이 바로 악과 폭력이 세계의 바탕이란 증거 아닐까. 약육강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어. 내가 소설에 그린 세계도 그런 것이지."

_그럴수록 그 악과 폭력을 극복,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류 역사가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의 바탕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에요. 프랑스혁명, 볼셰비키혁명, 동학혁명은 약육강식의 질서를 부수기 위한 것이지만 모두 실패했어. 어찌 보면 인류사는 실패한 혁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 혁명이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지나고 보니까 세상을 개선하는데 별 도움이 안됐다는 뜻이야. 개선하려는 시도는 고귀하지만 많은 고통과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세상을 부수는 것이 혁명가의 몫이라면 나는 생활인이므로 죽지말고 살아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구원, 초월, 내세를 말하는 작가를 나는 좋아할 수 없어요."

_'현세적'이라는 단어가 달리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세적이라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worldly' 즉 현실적, 세속적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세속적, 현실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도덕이냐 이익이냐의 딜레마에 빠졌을 때, 역시 이익을 추구해야 하겠지요. 이익을 포기하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어. 악과 폭력의 기반 위에 인간다운 가치나 아름다움을 건설하는 것이 미래의 과업이 될 텐데, 나는 그것이 좌파에 의해 실현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요. 물적 토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 남한산성에서 투항한 것도 물적토대가 없었기 때문이거든."

_김훈 소설의 허무주의는 결국 소설 너머 철학의 문제인 것 같네요.

"내 소설에는 악과 폭력도 나오지만, 세계와 처절히 싸우는 사람들도 등장하는데 왜 그것을 허무주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소설에 세상의 허무한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몸을 던져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영웅도 함께 그렸는데 그들은 허무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이거든."

_허무주의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허무라는 것은 주의가 될 수 없어요. 나는 혁명을 믿지 않고 진화, 전환을 믿는데 병자호란 이후 그 극적인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효종 때 조선은 병자호란의 수모를 갚고 치욕을 씻겠다며 군사력을 모아 청을 정벌하려 했는데 그것은 노론의 정치 기반 강화에 기여한 허구였어요. 대신 조선의 최고 엘리트들은 북벌에서 북학으로 전환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조선의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환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국이 혁명 없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 것도 역시 역사의 위대한 순간이지요."

_평론가들의 지적은 경청하는 편입니까.

"그들은 틀린 말 하지 않아. 그런데 그것이 내게는 아무 도움이 안돼. 나는 나의 과오 조차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해. 내게는 소설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말하고 싶은 허영심도,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_그래서 허무주의자란 지적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아니 그럼 당신들은 도덕적 목표를 갖고 있나. 소설가는 그냥 소설 쓰고 안 쓸 때는 시시껄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도덕적 인격이 무슨 소용 있겠어."

_<남한산성> 끝낸 뒤 어찌 지냅니까.

"쉬고 있습니다. 나는 책을 내면 살짝 들춰보다가 후딱 덮어버립니다.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만 드니까. 책이 꿈에 보일까 무서워. 아예 만지지도 않아."

_이제 어떤 소설 씁니까.

"당대의 일을 쓰려고 그럽니다. 이승만 시대부터 내가 살아온 이 시대의 이야기."

_어떤 내용인데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가다가 자꾸 같은 자리에서 자빠지는데 그 문제 다루고 싶어요. 노사 문제라든지, 사교육 문제라든지. 사교육 문제는 박정희가 과외 하는 사람 감옥에 보내고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_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평준화는 진짜 웃기는 수작 아닌가. 똑같은 사람 만들자는 것인데 그것이 국가의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대만 해도 세계 100위 권 밖의 대학인데 예산을 들여 일류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국가 목표가 돼야지 거꾸로 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어."

_평준화를 폐지한다고 해서 교육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일류 대학 만들어야지. 평준화는 최소한의 정책이어야지 마지막 목표가 돼서는 안돼. 아이들이 고생을 하겠지만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경쟁도 훌륭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_불평등의 원인이 타인이나 환경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럼 그럴 때 세상을 부수어야 하나. 그러나 세상은 부숴지지 않아."

_새로 쓰는 작품의 배경이 현대라면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없을 텐데…

"불평등보다 부자유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 근대의 평등은 결국 법 앞의 평등이기 때문에 재벌 회장도 폭력을 행사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나는 법치주의 신봉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말 무법천지라고 할 수 밖에 없어요.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침범하고 경찰차를 불지르고. 그런데도 처벌하지 않고. 이것이 관용이고 민주주의인가…광화문 다니는 사람은 다들 자기 밥 벌어 먹으러 바삐 움직이는데 그 거리 막아 놓고 시위하면 그들의 생업이 마비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놓고 자기 주장하고 경찰은 방치하고. 그래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겠지."

_법치주의의 동요 외에 통탄할 만한 일은 또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시 양극화의 문제지. 경제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이념 등 광범위한 양극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을 나는 한미FTA 체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FTA 체결하고 나니까 많은 언론이 이념적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공격하던데 나는 그런 언론 정신병자라고 생각해요. 이념의 일관성이 대체 무슨 소용 있나. 밥 먹여주는 것도, 미래를 열어주는 것도 아닌데. FTA로 농민이 희생되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 아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미래를 관리하는 태도가 아니지. 열강이 세계의 악을 대표한다 해도 그들과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_문장이 너무 미문이라 삶의 비루함을 적은 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다고 한 평론가가 지적했는데.

"<칼의 노래>를 수사적 장치를 전혀 동원하지 않고 주어와 동사, 문장의 뼈다귀만 갖고 썼어요. 그랬는데도 수사적이라고 하더군. 나는 스트레이트 문체로 글을 쓰려고 사력을 다하는데 그것 보고 수사적이라고 하니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지."

_그런데 왜 세간에서 그런 반응이 나올까요.

"스트레이트 문장이 오히려 탐미적으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나는 스트레이트 문장이 제일 좋아.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멋진 스트레이트 문장이 나옵니다. 전령이 와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5만 명이 전사했다고 보고하자 이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정말 '죽이는' 스트레이트 문장을 쓴 것이지. 만 마디 주절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_습작기의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칼의 노래>가 습작이라면 습작인데 그것 쓰면서 정말 힘들었어. 난방이 안 되는 후배의 작업실 지하에 책상 하나 놓고 썼는데 어찌나 고생했는지 이가 쑥 빠졌어. 아무 통증 없이 바람이 새 나가듯 하나하나 빠져 침 뱉듯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썼어. 소설 다 쓰고 나니까 8개가 빠졌더라고. 턱이 내려앉아 사람 몰골이 안될 것 같아 동인문학상 상금으로 임플란트 8개 하고 남은 돈으로 빚을 약간 갚고 술 먹었지."

_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은 없습니까.

"제 처는 남편이 하는 일에 감히 가타부타하지 않습니다. 좋은 덕성, 훌륭한 전통이지요. (인터뷰에 참가한 여기자를 향해) 그걸 배워."

_그렇게 말하면 반페미니즘 입니다.

"나를 남근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자가 여근주의 하면 페미니즘이고, 남자가 남근주의 하면 잔혹하게 매도되잖아. 나는 여자를 존중하지, 결코 학대하는 사람이 아니야. 여자를 보호하고 어려운 일 시키지 않는 것이 가부장적 덕성이지.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는 가부장이 아니라 건달이야.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딸이나 이모들이 참 행복하게 살았어."

_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수천 년 동안 하등하게 대접받았고 교육과 세상에 대한 경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 수렵 기술 같은 것이 남자 위주로 전수돼 왔으니까 여성의 지위가 유전적으로 저열하게 평가됐지. 인류의 거대한 비극 중 하나입니다."

_여성 독자로부터 항의받은 적 있지요?

"단편 <화장>을 쓰면서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는데 그러다 보니 기능이나 역할은 없고 인격도 잘 드러나지 않았어. 그 글을 읽은 여성 독자가 왜 여성을 그 따위로 그리냐고 항의하더군. 그렇다고 그 때문에 내가 마초인 것은 아니잖아."

_아니오. 마초라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마초가 아니야. 남들이 마초라고 그러는데 그냥 내버려둡니다. 해명하거나 항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Let it be."

_<언니의 폐경> 같은 소설을 보면 여성 심리를 매우 잘 그린 것 같은데요.

"그 소설에는 생리대, 헤어스타일, 패션, 화장품 등 여자에게 필요한 온갖 자질구레한 것이 다 나와. <알루아> <코스탄폴리탄> 같은 여성 잡지 보면 신제품 설명 자세하게 나오는데 빨간 줄 치면서 몇 달 동안 밤새 읽었어. 마누라가 한심하다고 했지만 내겐 매우 소중한 정보였어요. TV 홈쇼핑의 란제리광고를 메모하면서 본 적도 있어. 예컨데 브래지어를 보면 컵이 있고 와이어가 있는데 컵에서 중요한 것은 위의 봉긋한 데가 들뜨면 안되고 조금이라도 뜨면 팔 수 없다는 것이지. 그걸 메모하면서 소설은 나 같은 선비가 할 짓이 아니구나 싶었지."

_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자료를 모으고 메모를 합니까.

"나는 계통 없이 책을 읽습니다. 남들이 보면 왜 읽나 하는 책들도 읽어요. <화장>을 쓸 때는 해부학 책도 읽었지. 거기에 여자의 신체를 부위별로 해부한 사진이 있었어. 교보문고 기술서적 코너에 가서 용접공, 정비공, 연판, 배관, 항공기 조정, 선박 조정, 항해술, 비행술 같은 책도 보는데 아주 좋은 자료들이지. 요즘은 항해술 책을 보는데 반 정도 이해할까."

_항해술 책은 작품을 쓰기 위해 읽습니까.

"응. 거친 파도가 칠 때 인간이 그걸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써놓았어. 사나운 밤바다를 헤쳐나가는 한 사나이의 근육이 떠오른다고. 그러니까 내게 항해술 책은 문학책보다 더 문학적인 것이지.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런 것도 문학이지만 그런 건 미성년자들이 하는 것이고.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게 뭐야. (웃음)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

_벌써 여러 권 히트를 쳤는데 인세 수입이 꽤 되지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돈을 매우 좋아해. 돈을 경멸하는 사람을 나는 경멸해.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 돈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 글을 써서 수입이 생기면 다음 소설을 쓸 때까지 살 수 있어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교육 받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내 책이 팔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도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독자를 길러내 준 사회에 대한 보답이지요."

_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운하, 그건 안했으면 좋겠더라. 그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 분은 왜 항상 토목공사를 얘기할까. 통일을 어떻게 하겠다 이런 얘기는 안하고. 나는 먼지 나는 거 싫어. 물은 다 제 길이 있는 건데. 지금 많은 건축토목학자, 지리학자, 수리학자들이 입다물고 언론도 운하 얘기만 쓰고 있어. 얼마 전 부산에서 어린 아이가 굶어죽었는데,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왜 생겨난 것인지. 신문에서 운하 이야기 그만 쓰고 이런 것을 써야지."

_소설 쓰는 것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여자 구두만 전문적으로 고치는 수선공이 되고 싶어요. 그 구두, 꽃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하고. 너무 예쁠 것 같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구두 낡으면 버리고 새것 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힘들 것 같아."

07. 06. 09.

P.S. 윤동주의 '서시'에 대한 평가에는 나도 공감한다. 그 시 자체가 모자란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엔 순수한 만큼 유치한 시인도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고 그마저 없느니보다는 낫다. 한데, (미성년자도 아닌) 어떤 정치인이 자신이 가장 애송하는 시가 '윤동주의 서시'다 이러면, 좀 곤란하다는 것이다(정치를 애송이들이 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 나는 그런 태도를 김훈식의 '허무주의'라고 부른다. 그건 "성안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지.(...) 나는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어요."라고 말할 때 그 기저에 놓이는 태도를 지칭한다(일차적으로 그것은 '말에 대한' 허무주의이다). "소설가는 그냥 소설 쓰고 안 쓸 때는 시시껄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도덕적 인격이 무슨 소용 있겠어."라는 반문은 그러한 태도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그에게 도움이 될리는 만무하다(다만 나를 위한 것이다). 김훈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 아침에 한겨레에서 본 아래의 사진 같은 게 좋겠다.

사진의 타이틀은 '울먹이는 소년'으로 돼 있고, "한 아프가니스탄 소년이 깨진 달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다. 달걀을 파는 이 소년은 “넘어지는 바람에 갖고 있던 달걀이 모두 깨졌다”며 “어머니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울먹였다. 유엔아동기금 조사를 보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선 5만~6만명의 소년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5월20일 촬영. 카불/AFP 연합)"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소년과 그의 가족에게 이 달걀들이 얼마나 큰 값어치를 갖고 있을지는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이건 먹는, 먹을 달걀이 아니라 파는, 팔아야 하는 달걀이다). '어머니가 나를 죽일 것'이란 그의 울먹임이 공연한 엄살은 아닐 터. 그래서 슬프다. 넘어진 것도 슬프고(나도 잘 넘어졌었다) 달걀이 모두 깨진 것도 슬프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보태줄 수 없기에 또한 슬프다.

사진을 오래 쳐다볼 수 없어 바로 다음 지면으로 넘기고 신문지는 전철에 두고 내렸는데, 이 소년의 이미지와 함께 내게 바로 떠오른 장면은 소년 김훈이 새벽에 해장국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넘어져 엎지르는 바람에 통곡하던 모습이다(예전에 그의 문체를 말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의 '절망'이 이 '울먹이는 소년'의 그것과 닮지 않았을까?(이 '울먹이는 소년' 또한 글을 깨친다면 나중에 소설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우연찮게도 이런 문장을 읽는다.

"얼마 전 부산에서 어린 아이가 굶어죽었는데,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왜 생겨난 것인지. 신문에서 운하 이야기 그만 쓰고 이런 것을 써야지."

다른 것들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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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7-06-0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 쓰며 이가 빠졌다는 얘기는 전에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해장국 사건이 어쩐지 김훈씨의 '밥벌이론'의 원형적 기억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

로쟈 2007-06-0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가 과문한 건 <칼의 노래>가 한창 베스트셀러가 될 때 제가 국내에 없었던 탓인 듯합니다. '원형적 기억'이란 얘기를 섣불리 할 수는 없겠지만 김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에피소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수유 2007-06-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마노아 2007-06-1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만큼이나 덧붙인 글들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