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의 대표작이라는 <문체 연습>(문학동네)이 번역돼 나왔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조재룡 교수의 번역. 시집 <떡갈나무와 개>(민음사)도 같이 나왔다. 


















아직 작품들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 크노('끄노'로 알려졌다)는 20세기 중반 3대 프랑스 시인 정도로 가늠하고 있었는데(르네 샤르, 이브 본프아와 함께),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건 <지하철 소녀 쟈지>(도마뱀)가 번역돼 나와서 알게 되었다(2008년에 나왔다가 절판됐다). 그러다 지난해 소설 <연푸른 꽃>(문학동네)이 번역돼 나오더니 이번에 두 권의 작품이 한꺼번에 나온 것. 


"1947년 레몽 크노가 발표한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한 젊은이를 우연히 버스와 광장에서 두 번 마주친다는 일화를 바흐의 푸가기법에 착안해 99가지 문체로 거듭 변주해낸 연작. 다양한 문체가 지닌 잠재성과 혁명적인 힘을 보여주는 책. 한국어판에는 99가지 문체가 담긴 원서 이외에 플레이아드판에서 차후에 작가가 더 수행한 문체 연작에서 뽑아낸 10편을 더하여, 각 편마다 원문과 더불어 상세한 해설을 실었다."


역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작품인데(언어실험적인 작품이라 아무래도 번역과 번안을 동시에 밀어붙였어야 했을 듯) 덕분에 언어적 실험의 극한이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있다(매우 유쾌한 정신의 실험이란 건 라틴어나 욕설 연습을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번역으로도 유쾌하다).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가 경탄을 아끼지 않았고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평했다. “크노의 <문체 연습>은 그 자체로 수사학 연습이다. 그가 이 책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바퀴를 발명해낸 것과 같은데, 이걸로 누구든 원하는 만큼 멀리 갈 수 있으리라.”


"누군지 원하는 만큼 멀리 갈 수 있으리라"고 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이 연습의 저작권은 크노에게 있기 때문에. 이와 견줄 만한 작품으론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도 떠올려본다. 그런 주석-소설을 따로 누가 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크노의 '문체 연습'도 누군가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내 생각엔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다(그런 면으로는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렇게 쓸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문학 강의는 내년에 앙드레 말로를 지나 20세기 중반으로 나아갈지 모르는데, 보부아르의 초기작들과 함께 크노의 작품도 다루게 될지 모르겠다(누보 로망 작품 몇 편과 함께). 

















시비평과 함께 번역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조재룡 교수는 번역론의 소개와 실제 번역에 있어서 놀라운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르주 페렉과 장 주네에 이어서 레몽 크노까지. 덕분에 읽을 수 있게 된 작가와 작품이 여럿이다. 프랑스문학이 한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된다...
















P.S. 크노는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정신현상학> 강의록을 엮어서 편찬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검색해보니 영어로 번역된 책이 몇 권 더 있다. 조만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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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0-11-1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갈나무...

로쟈 2020-11-15 17:51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