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트래블러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인스피레이션' 꼭지로 쓴 더블린 문학기행 얘기다. 지난해 가을의 영국문학기행이 어느새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2020년 7월호)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문학의 도시로 만든 작가는 단연 제임스 조이스(1882-1941)다. 조이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여럿 배출한 문학 강국이지만(버나드 쇼와 예이츠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조이스의 작품들을 빼놓고 더블린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 조이스의 문학이 더블린에 빚지고 있는 것인지 더블린이 조이스 덕분에 후광을 입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 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걸작들을 남겼지만 동시에 조이스에게 아일랜드와 더블린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그려지듯 그는 악착같이 더블린을 떠나고자 했고 결국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아닌 스위스 취리히에 묻혔다.


지난해 가을 조이스의 더블린을 찾았다.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난 지 100년도 더 지난 뒤였지만 더블린의 거리를 거닐며 조이스의 작품 속 공간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여 더블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정에 들어갔다. 보통은 오후나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일정에 돌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고자 일부러 빡빡하게 잡은 것이었다. 더블린의 첫 일정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었고(<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무덤이 있기도 한데 스위프트는 이 성당의 주교였다) 이어서 도심에 있는 피닉스공원을 둘러보았다. 도심 공원으로는 세계최대 공원으로 더블린의 자랑거리인데 피닉스란 말은 성수(성스러운 물)를 뜻한다고 했다. 점심은 현지식으로 감자구이와 돼지갈비(립)를 먹었는데 예상 밖으로 맛이 좋았다. 비슷한 메뉴를 독일에서 먹은 것과 비교해서 그랬다.


오후 일정은 본격적인 문학기행으로 더블린 작가박물관을 둘러보고 조이스기념센터를 방문했다. 작가박물관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예상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조이스센터는 독일 뤼벡의 토마스 만 하우스(정확히는 토마스 만과 하인리히 만 형제의 기념관)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래도 이름값은 하는 기념관이었다. 뤼벡의 상류층 곡물상 집안 출신이었던 토마스 만과 비슷하게 조이스 역시 넉넉한 중산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에는 가정교사가 있었고 여섯 살에는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던 클롱고우즈우드 학교에 입학했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던 학교로 규율이 엄격했지만 당시로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아일랜드에서 성장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가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고 유럽 대륙으로 떠나기까지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인데, 첫 장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 바로 조이스 자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1891년 불행이 닥치게 된다. 당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지도자 찰스 파넬이 부관의 아내 캐서린 오세이와 동거중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카톨릭 신자가 많은 아일랜드의 여론이 양분되었고 결국 파넬은 실각하고 말았다. 파넬은 아내와 별거중이었고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캐서린의 남편 오세이의 묵인하 동거하면서 자녀까지 둔 상태였다. 두 사람의 내연관계가 폭로된 배후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영국의 음모가 있었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폭로 작전은 성공적이어서 파넬은 정치적 실각 이후 죽음을 맞게 되고 아일랜드 독립은 수십 년 늦춰진다.


파넬의 파문이 불거졌을 때 조이스는 아홉살에 불과했지만 격분하여 '힐리, 너마저!'라는 시를 쓴다. 카이사르가 자신을 배신한 브루투스를 보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탄식하며 내뱉었다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파넬의 실각과 때를 같이하여 조이스의 아버지 역시 직장을 잃었고 가세는 급격히 기운다. 조이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갑작스런 추락을 파넬의 추락과 동일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동일시는 아들 조이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힐리, 너마저!'에 감동한 아버지는 아들의 시를 출간까지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만약 남아있다면 조이스의 첫 작품에 해당한다.


파넬의 실각과 아버지의 몰락은 조이스의 삶과 문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시 토마스만과 비교하자면, 만 집안의 가업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정리된다. 그렇지만 토마스 만이 이미 성년이 된 이후였다. 그는 뮌헨으로 이주해 자기 몫의 유산을 바탕으로 생활하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조이스 집안의 몰락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음주와 폭력으로 시간을 죽였고 조이스는 학비 때문에 다니던 클롱고우즈우드를 자퇴하고 기독교 형제학교로 옮겼다가 장학금 혜택을 통해 겨우 벨비디어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조이스는 작문대회에서 받은 상금의 일부로 더블린의 사창가를 찾고 처음으로 성경험을 한다. 1896년의 일이고 이때의 경험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도 자세히 묘사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조이스는 처음엔 파리로 건너가 의학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하던 차에 1903년 봄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서 귀국한다. 그해 8월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론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스티븐 디덜러스처럼 무력감에 빠져 있다가 1904년 6월 노라 바너클이란 여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노라는 아일랜드 서부의 골웨이 출신으로 한 호텔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6월 16일에 첫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 날짜가 나중에 대작 <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6월 16일은 '블룸스데이'로 불리며 더블린에서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펼쳐진다.


더블린이 조이스의 도시로 기억되는 것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국 아일랜드를 “제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에 비유하면서 더블린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스티븐 디덜러스를 떠올리자면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스티븐은 “살고, 실수하고, 타락하고, 승리하고, 삶으로부터 삶을 재창조하는" 과제를 떠안고 더블린을 떠났었다. 그렇지만 조이스의 삶을 참고하면 이 떠남은 두 번 반복되어야 했다. 조이스는 노라와 함께 1904년 10월, 다시 한번 더블린을 떠나며 이후 많은 시련을 겪게 되지만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이 목표를 성취하게 된다.



조이스 기념센터에서 조이스의 삶과 문학에 대해 회고해본 뒤에 우리는 아일랜드 독립 추모공원을 들러 오코넬 거리의 유명한 조이스 동상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쪽 다리는 꼬고 서 있는 도도한 예술가 조이스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첫날의 일정이 종료되었고, 더블린에서의 둘째날이자 마지막날 일정은 호텔 가까이 메리언 스퀘어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 동상(바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을 찾아보고 국립도서관에 들렀다가 트리니티 대학 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 트리니티 대학은 오스카 와일드와 사뮈엘 베케트의 모교이지만 조이스와는 관련이 없다. 대신 국립도서관은 <율리시스>에서 스티븐 디덜러스가 햄릿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다른 인물들과 논쟁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점심식사는 <율리시스>에도 등장하는 식당 오닐의 펍에서 먹었다. 나는 <율리시스>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서점 호지스피기스를 둘러보았는데 4층짜리 대형서점이었다. 오랫동안 책구경을 하다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나온 <율리시스 컴패니언>을 구입하는 것으로 더블린 방문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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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9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30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1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ingles 2020-07-3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기행 가실때마다 직장때매 시간을 못 냈어요. 샘이 하신 문학기행들이 책으로 나온다면 나중에 시간내서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어요.

로쟈 2020-07-31 22:06   좋아요 0 | URL
후년쯤에는 다시 문학기행이 가능할지..^^;

해오라비 2023-09-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조이스 문학기행 계획은 다시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