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경주 캠퍼스)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코로나 시대의 독서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쓴 것이다...















동대신문(20. 07. 06) 코로나 시대의 독서, 그리고 개인


팬데믹 시대의 독서는 무엇이 다른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나로 독서의 현황을 가늠한다면, 전염병이나 코로나19와 관련된 책들을 공공장소나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읽는다는 게 눈에 띄는 차이겠다.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 이용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불가불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일는 일이 늘어났다. 마스크 독서의 생활화라고 말할 수준은 아직 아니고, 상상해보면 방독면 독서와 비교할 것도 아니지만 마스크 독서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경험이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팬데믹 시대의 독서는 마스크 독서다. 그렇지만 단순히 소나기를 피해가는 미봉책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한창 개발중인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인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스크를 벗을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현재의 사태를 초래한 문제의 원인을 되짚고 총체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스크 대신에 방독면을 쓰게 될 것이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인위생과 거리두기가 생활의 기본수칙이 되었다. 이 거리두기는 연인이나 가족 간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각자가 의무적으로 서로에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개개인이 생존의 기본 단위가 되면서 우리는 '개인'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역사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개인이 탄생했다거나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역사적 개인은 전면적이지 않았고 전지구적이지도 않았다. 세계는 근대화 이후에도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후근대(혹은 탈근대)가 병존해왔다. 그에 따라 개인성에 대한 의식에도 많은 편차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팬데믹 효과로 개인이라는 존재 양태가 강제적 표준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좀더 많은 시간을 혼자서 지내야 하고 비대면 관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새로운 경험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경험이다. 독서의 역사에서 처음 묵독을 시작한 한 수도사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어서다. 묵독은 개인성의 기본 표지다. 마스크를 쓴 것과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눈으로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각자가 된다. 코로나 시대의 생활수칙은 이러한 묵독의 일반화다. 식사 때 떠들지 않고 음식을 각자의 개인 접시에 덜어먹기, 술잔을 돌리지 않기 등. 몇몇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이러한 수칙을 준수할 때 비로소 우리는 팬데믹에서 해방될 것이다. 각자로 살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모두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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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0-07-0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팬데믹을 읽었는데, 그 사유의
깊이를 맛(?)본 것 같아 신선했어요 ~
그가 추천한 아이슬란드 범죄물 시리즈
< 트랩트 >는 저도 열광적으로 봐서
친밀감을 느꼈습니다 ^^*
위의 책 3권은
어떤 의도로 올리신건지요?@@

로쟈 2020-07-09 22:11   좋아요 0 | URL
그냥 코로나 관련서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