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일정이 1/10로 줄어들었는데 몸은 더 피곤한 걸 보면, 그간에 빡빡한 일정 때문에 피곤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양면성이 있어서 강의가 많아 피곤했지만 또 강의로 인하여 기운을 얻기도 했던 것. 뒤늦게야 대체수단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수년만이다) 거실에 있는 실내자전거를 탔다. 무리하지 않고 20분만. 시간을 늘려나가서 아침저녁으로 30분씩, 하루 1시간 운동시간을 갖기로. 한달 뒤에 피로감이 달라질지 봐야겠다(이달의 강의도 대거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피로감의 일반적인 원인도 있지만 묵은 원인도 있다. 서평가의 애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데, 너무 많은 책에 시달린 탓이다. 너무 많은 책을 읽어서 피로한 게 아니라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려서 피곤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많은 책이 있다는 사실의 인지도 오래 누적되면 피로감을 낳는다(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부대끼다보면 피로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평집을 내면서 '책에 빠져 죽지 않기'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몇년 전부터 다른 제목을 생각할 수 없었다). 서재활동 20년에 휴지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그래서 더욱 굳히게 된다.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소명출판)가 다시 나왔다는 얘기를 꺼내려다 넋두리가 먼저 나왔다. 8년 전에는 두 권짜리로 분권돼 있었는데, 이번에는 통권이다(1124쪽 분량). 책의 무게감에 어울리는 부피와 중량을 갖추게 되었다.

14세기 이슬람 학자 이븐 칼둔은 처음에 '이븐 할둔'으로 소개되었는데, Khaldun의 'kh' 발음이 아랍어에서는 'ㅋ'에 가깝다고 해서 어느 때부턴가 '이븐 칼둔'으로 표기가 변경되었다. <무깟디마>도 원저의 제목을 발음대로 읽어준 것인데, 처음에 <역사서설>로 소개되었던 책이다. '서설'이라고 한정하는 것은 전체가 전7권의 방대한 작품의 첫 권으로 서문에 해당하는 책이기 때문이다(이 전체가 번역돼 있는 나라가 몇 군데나 있는지 궁금하다).
<무깟디마>가 유명해진 데는 아놀드 토인비의 평가가 일조했다. "이븐 칼둔은 <무깟디마>에서 독자적인 역사철학을 형상화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어느 곳, 어느 때, 어느 누가 논의한 것 보다 위대한 작업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서구에서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흔히 헤로도토스를 꼽지만(그때 '역사'는 사실 '이야기'와 구분되지 않는다. 여러 유럽언어에서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역사학을 학문으로 정립시키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이븐 칼둔이다. 역사가와 역사학자의 차이?
겸사겸사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도 손에 들면 좋겠지만, 이 모든 책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이제는 기운이 빠져나간다. 독서력에는 독서체력도 포함된다는 새삼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