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이 암투병 중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인데 그‘지적 여정‘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첫 권 <너 어디에서 왔니>(파람북)다. 시리즈인 만큼 계속 이어지는데 최소 세권 정도는 이미 제목도 나와있다.
이어령을 대표하는 저작은 무엇일까. <너 어디에서 왔니> 뒷표지에는 그의 이력을 간략히 요약하고 있는데 세권의 책이 언급된다.
20대 <저항의 문학>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30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한국을 놀라게 했다.
40대 <축소 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을 놀라게 했다
(...)
이러한 요약은 통념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내가 아는 이어령과도 일치한다. 다만 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지 않았기에(20대 시절엔 일본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 두 권이 내가 읽은 이어령이자 내가 아는 이어령이다(이후에는 문학기호학에 관한 책들을 읽은 것 정도). 그리고 내게 각인된 이어령이다.
20대 시절에 <저항의 문학>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었고 그때 받은 인상에 비하면 이후의 책들은 놀랍지 않다. 산업화시대를 넘어서 정보화시대, 생명화시대에까지도 그에 호응하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통찰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 탁월한 재능이고 역량이다. 다만 나로선 <저항의 문학>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이미 완성형 이어령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어령 담론이란 게 있다면 짧게는 전전과 전후, 길게는 전통사회(전근대)에서 근대사회(현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과거가 오늘의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해야 할 것인지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한적인 독서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이지만 그의 책을 더 읽는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적어둔다. 전에 한번 쓴 적이 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