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은 단편과 중편, 장편소설, 그리고 에세이 등 전 산문장르에 걸쳐서 작품을 썼는데, 아무래도 대표작은 중편과 장편 들이다. <마의 산>(1924)을 강의에서 다시 읽으려고 하니(이번 3월 스위스문학기행 때 그 무대가 되는 다보스에 가려고 한다) 오래 묵은 숙제 하나가 떠오른다. 작가 초년기의 대표작이자 기념비적인 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1)과 <마의 산>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는 점.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 착수하게 되는 게 1912년의 일이므로 정확히는 <부덴브로크>를 완성한 이후 12년간 정도가 되겠다. 단순 견적으로 <부덴브로크>에서 <마의 산>으로 가는 경로는 없다.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방향전환의 계기가 있는지 여부다(단편과 달리 장편소설의 방향은 변덕보다는 더 무거운 동기를 필요로 한다. 특히나 만처럼 묵직한 작가에게라면). 추정이 없는 건 아니다.

1905년에 만은 카타리나 프링스하임과 결혼하면서 ‘길잃은 시민‘의 방황을 뒤로 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습속으로 복귀한다. 자신의 결혼생활을 소재로 하여 쓴 장편이 <대공전하>(1909)인데 토마스 만의 장편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한 차례도 번역되지 않았다. <부덴브로크>와 <마의 산> 사이에 끼여있는 ‘약한‘ 작품이어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로선 가장 궁금한 소설이기도 하다. 두 대작의 연결이나 단절을 파악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 시기에 만이 쓴 대표작이 <토니오 크뢰거>(1903)나 <베니스에서의 죽음>(1912)과 같은 중편들이고 이 작품들에 동성애 코드가 직간접적으로 들어가 있다. 원래 ‘죽음‘을 주제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속편격으로 쓰게 되는 게 <마의 산>이고 이 장편에는 죽음뿐 아니라 동성애가 강하게, 하지만 은밀하게 그려져 있다. 추정이란 건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인력이 되어 <부덴브로크>의 만을 <마의 산>의 만으로 끌어당기지 않았을까라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추정일 뿐이고 더 자세한 것은 평전과 함께 <대공전하> 같은 작품을 꼼꼼히 검토해봐야 알 수 있다. 희망은 그렇다.

<마의 산>은 주로 을유문화사판으로 강의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번역판도 참고하려 한다(열린책들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번역본은 <마법의 산>으로 나온 것까지 포함하면 다섯 종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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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4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20-01-2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공전하 는 1976년에 출판된 바 있답니다. 삼성판 세계문학전집으로요. 세로쓰기라 읽기가 좀 힘들긴 해요.

로쟈 2020-01-29 09:45   좋아요 0 | URL
아. 알려주셔서 감사. 삼성판이 이후에 가로판으로도 나왔을텐데 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