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주저 <방법에 반대한다>(그린비)가 재출간되었다. 오래전에 <방법에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인데 오랫동안 절판된 상태였다. 역자가 같은 것으로 보아 개역판까지는 아닌 듯싶다. 그 사이에 자서전 <킬링 타임>도 나왔다가 절판된 상태. 기억에 두 책이 동시에 ‘살아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방법에 반대한다> 원서가 4판까지 찍으며 건재한 것으로 보아 파이어아벤트는, 적어도 책으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과학적 진보와 지식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을 다룬 책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이 책을 통해 과학적 진보란 단일주의적인 방법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과 이론 간의 충돌, 즉 역사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형이상학, 과학과 예술, 과학과 신화, 이성과 비이성이 함께 작용할 때, 또 과학자들이 신화, 종교, 형이상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때, 오히려 과학이 과학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현대 과학의 지나친 이데올로기화를 비판하며 자유롭고 다원화된 사회를 부르짖고 있다.˝
기억에 과학철학계의 이단으로 불린 파이어아벤트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Anything goes)˝는 유명한 구호대로 과학의 독자성과 객관성을 의심한 과학철학자였다. 포퍼나 라카토시(라카토스, 라카토슈)가 인식론적 객관주의, 토머스 쿤이 상대주의를 대변했다면 파이어아벤트는 무정부주의자였다. 이들의 논쟁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철학 논쟁>을 비롯하여 과학철학 관련서들에서 다루고 있다. <방법에 반대한다>는 그 논쟁의 핵심 출처 내지 원전으로서 의미가 있다.
과학철학 책들을 읽은 지 오래 되었는데 ‘재방문‘할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구입만 하고 읽지 않았던 (그리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킬링 타임>도 이참에 다시 나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