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교보에 갔다가 예술코너에서 본 신간은 래리 쉬너의 <예술의 탄생>(들녘, 2007)이다.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싶었지만 요즘 여유가 없는지라 구입은 미루었는데, 일단은 관련리뷰를 챙겨두도록 한다.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순수예술의 근대적 개념과 제도들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보여주는 책. 시각예술만 논하던 기존의 좁은 스펙트럼에서 벗어나, 좀더 넓고 깊은 역사적 맥락에서 예술에 대해 논했다. 현상학과 시각예술의 권위자인 래리 쉬너 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물론 '예술'이라고 옮겨진 'Art'는 예술 일반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순수미술'을 가리킨다. 그 근대적 개념의 탄생과 예술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경향신문(07. 05. 25) 왜 예술이 어려워졌을까

요즘처럼 미술이 일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박수근의 작품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열기 속에서 미술에 관심을 갖고 전시장을 찾는 일반 관람객들의 발길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전시장에서 만나는 많은 관람객들은 여전히, 미술은 너무 난해하여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한다. 캔버스에 점 하나 찍은 작품이 왜 예술인지, 옷가지며 쓰레기들을 쌓아놓은 것이 왜 작품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미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난해한 현대음악이나 현대무용에 대해서도 관람자들은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예술인 것일까. 예술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혹시 어려워진 것일까. ‘예술의 탄생’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저자는 예술이 어려워진 결정적 계기를 예술가와 장인이 분리된 시점으로 봤다. 이때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개념이 창안된 시점이기도 하다. 즉, 과거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생활 속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던 미술품들이 18세기 이후, 제도적인 변화 속에서 기능적인 작품들과 그렇지 않은 작품들로 분리되면서 예술과 공예가 나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등 걸출한 예술가들이 순수한 작가정신의 표상으로써 작품을 창작했던 것이 아니라, 후원자나 주문자의 요구에 맞게 작품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예술이 과거에는 뚜렷한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이들의 예술품들이 ‘주문제작품’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일반적인 ‘예술’의 개념 속에서 생각했을 때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지금은 분리된 ‘장인’과 ‘예술가’가 원래는 한 뿌리였으며, 순수미술과 공예 역시 하나였다는 사실을 강변한다.

장인과 예술가가 결정적으로 분리되는 18세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기다. 예술관광객이 등장하고, 미술시장과 개인 콜렉션 문화가 자리잡았다. 미술경매, 미술전시회, 미술관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예술과 예술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형성되었던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품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기술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진 장인은 폄하되고, 영감, 상상력, 자유, 천재성 등의 ‘시적’ 속성을 발휘한다고 믿어지는 ‘순수예술’은 칭송받기에 이르렀다.

번뜩이는 영감과 독창적 천재성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세계를 담는 예술은 더 이상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서 함께 숨쉬는 ‘생활’이 아니었다.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예술을 교양있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음악과 미술을 통해 품위 있는 사회로 입성할 수 있다는 믿음도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이것이 바로 예술이 어려워진 이유인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예술은 예술과 공예의 구분 논쟁뿐 아니라, 상위 문화와 하위 문화로까지 구별되면서 점점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용성과는 멀어져간다. 뿐만 아니라 실용성이라는 것은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모두가 그대로 수용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이나 바우하우스 등의 예를 통해, 끊임없이 세분화되어 가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 또한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공예가 분리되어 가는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펼쳐보이면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정의에 불과하고, 그렇기에 언제라도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내가 무비판적으로 믿고 수용하는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도록 유도한다. 결국, 오늘날 ‘예술’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는 18세기에 태어난 예술의 개념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점 진보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김지연|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

07. 05. 26.

P.S. <예술의 탄생>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떠오르는 것은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연구, 2006개정판)이다(나는 책의 초판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미술'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라고 책은 시작하는데,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준거점 역할을 해줄 것이다...

덧붙여, 지난주에 나온 예술분야 신간들 가운데 돈이 좀더 있다면 소장해두고 싶은 건 <앤디 워홀의 철학>(미메시스, 2007). 1970년대 중반에 출간된 그의 자전 에세이이다. 구할 엄두조차 못낼 그의 '예술'들에 비하면 '철학'은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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