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연재 때문에 수요일엔 한국일보를 사보게 된다. 하지만 오전 강의도 준비해야 하는 터여서 연재기사 '도시의 기억'은 가방에 넣어두기만 하고, 미처 챙겨읽지 못했다. 대신에 훑어본 기사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이과수 폭포 보며 혁신 배우겠다는 감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이었다. 공직자들의 '세미나 관광'(사실 국회나 지자체 의원들에겐 남 얘기가 아니겠다)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아직도 이런 일이!'라고 놀라기엔 좀 식상하고 멋쩍다. 다만 이 '평범한 사회악'이 이렇듯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거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란 생각도 든다(그렇다면 '모럴 해저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구아수(이과수)'를 검색해보니 시원한 폭포수 대신에 뜨는 게 몽땅 이 '세미나' 관련기사들이다. 미디어오늘의 '아침신문 솎아보기'에서 관련 대목만 옮겨놓는다.  

미디어오늘(07. 05. 16) 공기업 감사는 공공의 적?

16일자 아침신문의 사설들은 일제히 남미로 '외유 세미나'를 떠난 공공기관·공기업 감사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힐난했다. <공기업 감사들, 이과수 폭포 옆에서 '혁신 세미나'>(조선일보), <이구아수폭포 '혁신 세미나'와 미주리 골프 연수>(동아일보), <단체 외유에 나선 공공기관 감사들>(경향신문), <이과수 폭포로 '혁신' 세미나 간 혁신정부>(중앙일보), <이과수 폭포 보며 혁신 배우겠다는 감사들>(한국일보), <이구아수 폭포에서 공기업 혁신 논하나>(서울신문), <공기업 감사 '외유 세미나' 이래도 되나>(세계일보) 등 사설 제목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공기업 감사들이 '혁신을 배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남미의 유명한 관광지인 '이과수 폭포'에 굳이 간 걸로 봐서 놀러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A2면 머리기사 <외유논란 공기업 감사들 중도 귀국할 듯>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석유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21곳 공공기관, 공기업 감사들은 '공공기관 혁신포럼'을 연다는 명분으로 남미의 유명 관광지인 칠레 산티아고, 브라질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을 들르는 10박11일 출장을 떠나 외유 논란을 빚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특히 이번 여행에 참여한 감사들 상당수가 청와대 비서진, 과거 여당인 열린우리당 당직자, 노 대통령 후보 당시의 특보 출신들이라 '낙하산 인사'들이 해외관광을 떠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1인당 800만원 정도 드는 여행경비는 이들이 속한 공기업, 공공기관이 전액 댔다"고 덧붙였다. 한편 출장을 준비한 여행사 관계자를 인용해 "이들은 향후 일정을 중단하고 중도 귀국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전했다.

▲ 중앙일보 5월16일자 6면.
중앙일보는 어제에 이어 이틀째 1면에 공기업·공공기관 감사의 '이과수 폭포 세미나'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정부 차원에서 기획예산처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예산처는 공기업·공공기관에 대한 1차 감독부서다. "감사들의 남미 출장 보도가 나가면서 거센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는 지적은 조선과 마찬가지다. 방만 운영, 낙하산 인사 등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감사 21명은 예정대로 출장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부분은 조선과 정반대 얘기다. 왜 사실관계가 다른지 알 수 없다.

조선 "중도 귀국" vs 중앙 "예정대로 일정 진행"

중앙은 6면에서도 <"혁신포럼 빙자한 관광 문책하라">는 제목으로 정치권의 비판을 기사화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진상 파악과 관련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기획예산처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파악해서 문제점이 있다면 (기획예산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중앙은 △공공기관 감사 21인의 출장 일정 △공기업 낙하산 인사 관련 노 대통령, 청와대 인사수석 발언 등도 관련 그래픽으로 만들어 기사와 함께 배치했다.

중앙은 같은 면에서 <신이 내린 직장, 신이 내린 자리>라는 제목의 '취재일기'를 통해서도 외국으로 세미나를 하러 간 공기업 감사들을 비판했다. 이 기사를 쓴 윤창희 기자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뭔가 근사한 곳에 가야 산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모양일까"라고 비꼬는 한편 "그들이 귀국 보따리에 획기적인 감사혁신 방안을 담아 온다면 사실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러나 우리보다 공기업 경영이 별로 나아보이지 않는 남미에서 기막힌 공기업 혁신방안을 배워올 수 있을까"라고 기막혀 했다. 윤 기자는 이어 "공기업 27개 중 80%가 넘는 22개사 사장이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이다. 공기업 감사들이 줄지어 남미로 단체 출장을 떠난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공기업 감사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짚었다.

한겨레는 6면에서 <공기업 감사 '집단 외유성 출장'>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기사를 실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감사 20여명이 외국 공기업의 감사 업무를 벤치마킹하고 세미나를 연다며 남미로 출장을 떠나자 '낭비성 외유'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기사는 "무엇보다 이들이 출장에 나선 남미 나라의 공공기관 경영방식에서 우리가 배울 게 많지 않고, 관광지 등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고 사안을 정리했다.

 한편 "이들은 모두 '공공기관 감사포럼' 회원들이며,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거나 열린우리당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고 이 기사는 지적하며 "출장 일정 등을 보면 '감사 업무 혁신 방안 마련'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도 보도했다. 공공기관 감사포럼 의장인 곽진업 한국전력 감사의 "남미의 공공기관을 방문해 한국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도 공부에 해당하는 만큼 외유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사안에 대한 언론들의 판단이 일관적인 만큼 다소 궁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 경향신문 5월16일자 1면.
경향신문은 이 사안을 1면에서 <1인 800만원짜리 남미 '관광 세미나' 물의/"신도 탐내는 공공기관 감사">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경향은 "공공기관들이 '신이 내린 직장'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남미로 외유성 세미나를 떠난 것도 이런 역학적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라고 기사는 풀이했다. '남미로 출장간 공공기관 감사 경력 및 연봉'과 '정치권·관료 출신 공공기관 감사'를 표로 만들어 정리하기도 했다.(권경선 기자)

07. 05. 16.

P.S. '구조적인 문제'란 것은 어제 읽은 김훈과 홍세화의 대담에서 나온 김훈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얄궂게도 이번 외유성 세미나에 나선 이들은 모두 청와대 비서진을 비롯한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적'은, '구조적인 악'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닌 것(그러니까 그는 도전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이 아닐까). 이 '평범한 악'이 '혁신'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게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오늘이 5.16 쿠데타가 일어났던 날이란 것까지 고려하면 비장하게 코믹하고, 이과수 폭포가 나오는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의 첫장면을 떠올리면 애잔하기까지 하다(감사들끼리의 '해피 투게더' 아닌가?). 신이여, 제발 우리를 구원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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