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진행중인 민주화20년 ‘상상변주곡’ 대토론회 중 네번째 꼭지로 임상수 영화감독의 발제 ‘6월항쟁 이후 한국사회 내면풍경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지난주인가 두번째 꼭지인 진중권의 '신체의 지질학'을 옮겨놓은 바 있다). 출처는 컬처뉴스이다.

컬처뉴스(07. 05. 15) "고백 통한 자기복원이 필요하다"
1986년 군대를 갔다 온 후 복한한 한 대학생은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의 시신을 지키는 사수조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무시했다. 또 신촌에서 시청까지 인파로 뒤덮인 이한열의 장례식 날에도 개미 한 마리 없는 도서관에 혼자 있었다. 하지만 매일 낮 12시에 울리는 택시들의 경적소리와 그에 호응하는 넥타이족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울분과 떨림을 느꼈다. 그 복학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감독이 된다. <눈물>, <바람난 가족>, <오래된 정원> 등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격변과 내면 풍경의 변화를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모험적인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 임상수 감독이다. ‘상상변주곡’ 네 번째 시간(14일)의 발제를 맡은 임 감독은 ‘고백을 통한 자기 복원 없이 그저 달려 나가가만 하는 사회’라는 주제로 “과연 민주화 진영이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 감독은 “<그때 그사람들>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이 없었더라면 찍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물론 박정희 시대였던 그 18년을 다 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먼저 명령과 복종만 있었던, 해서 명령에 대해 회의하거나 사고하는 사람은 존재가 불가능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주목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감독은 우리가, 한국 사회가, 민주화 운동세력이 극복하지 못한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는데 바로 ‘골목대장 문화’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그것이다. 먼저 ‘골목대장 문화’에 대해 임 감독은 “유치한 위계질서가 지금 얼마나 극복됐을까”라고 반문하면서 “한화 김승현 회장 사건만 보더라도 촌스럽기 그지없는 위계질서를 여전히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치졸하고 쓰레기 같은 짓을 하면서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살고 있다는, 살아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하늘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거짓말이 통용되는 것은 그러한 뻔뻔스러움이 전염되어 내면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구와 보수세력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렇게 치열하게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민주진영 세력들이 도대체 이루어 낸 것이 시스템적인 민주주의 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비판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누구도 세련된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임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의주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굴절된 풍토를 청산하고자 했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5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정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바로 그 때의 6월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자기 고백을 통해 과거를 복원하고 그 복원을 통해 그 피의 값은 충분히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소위 6월항쟁이란 허위의식에 가득 찬 난리굿이라 할 2002년 월드컵 열기와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강유정 영화평론가와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가 참여했다. 먼저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모든 사람들은 우연하게 만나고 우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그러한 우연한 시기에 박종철이 죽었고, 이한열이 죽었고, 그들의 죽음을 우연히 같은 시기에 목격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6월항쟁이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이어 그는 “막스(*맑스)가 사람을 통해 ‘학’을 구성했듯 이제야 우리들도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들을 통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이며 “좀 더 지독한 타자의 윤리가 임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지독하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였던 임상수 감독의 위치와 영화 속에서 고백이라는 제의를 재현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임상수 감독은 “80년대 나는 물론 현장에 있었고 모든 것을 관찰하려는 노력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바깥에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며 “<오래된 정원>을 보고 1980년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차 있었다, 이야기한 한 평론가의 평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의 자기복원이 어려운 이유는 앞으로 빠르게 나가야 하는 현재의 상황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인데 나는 <바람난 가족>에서 정말 나의 내밀한 고백을 시도했고, 그렇기에 나는 거리낄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봉석 평론가는 “창작자들이 그 때의 이야기를, 6월민주항쟁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라며, “임상수 감독이 <오래된 정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타자’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민주화 운동세력이 철저한 자기고백을 하지 않았다는 임상수 감독의 발언에 동의하며 “386세대들은 분명 특수한 세대이고 그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결국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구권 또한 무너지면서 이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며, “그러한 열등감에 무용담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강유정 평론가는 “386세대라는 호명 자체가 386세대의 호명에 대한 욕망”이라면서 “자기윤리를 세속적인 기준으로 맞추는 세대론 자체는 어쩜 유효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태윤미 기자)
07. 05. 15.

P.S. 마침 6월에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에 대해서 몇 마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임감독의 발제문은 참고자료가 될 만하겠다(감독과 변성찬 평론가의 대담을 링크해놓으려고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할 얘기는 6월로 미뤄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