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대담(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209332.html)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이미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지면으로 읽기 전에 온라인에서 대담을 훑어보았고 소설을 읽는 일도 더는 미루기가 어려웠다(그의 다른 장편들을 정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남한산성>은 기대보다 재미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칸이 조선 임금에게 보낸 국서는 명문(?)이다. 설마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인지?). 한겨레가 창간 기념호에 두 사람을 불러모은 건 한때 두 사람이 한 솥밥을 먹은 '입사 동기'라는 이유에서이다(이 또한 '한국인 코드'이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그냥 '자전거 레이서와 택시 운전사의 대담'이 더 어울릴 만한 타이틀이다('자전거 레이서가 택시운전사를 만날 때'라고 제목을 잡았다가 다시 돌려놓았다). 광고나 소제목들이 눈에 거슬려서 기사는 나대로 재편집했다.  

한겨레(07. 05. 15) 입사 동기 김훈-홍세화 6시간 대담

<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훈씨의 근작 소설 <남한산성>을 막 읽고 난 홍 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홍: “<남한산성>을 잘 읽었습니다. 그 소설 속 상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거기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쉬운 이야기부터 하죠. 김 선생의 경우에는 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김: “글이요? 글쎄요. 저는 사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아주 잔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글에서,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자유 같은 건 저에게 일체 없는 거예요. 이것이 저에겐 노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뭐, 저에게도 글쓰기가 비슷한 밥벌이의 수단인 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죠. 역시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김: 저도 홍 선생께서 쓰신 책을 많이 봤는데, 역시 지금 말씀하신 소통의 문제,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근데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가 어렵고 위태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인데, 무기는 세계를 개조하잖아요?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죠.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네들의 이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죠. 근데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참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홍:지금까지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이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 이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성찰적 이성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 것의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 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이들. 그러나 개인적인 글쓰기의 동기, 그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탐색전을 생략한 채 득달같이 일합을 겨룬 느낌이었다. 과열된(?) 분위기도 식힐 겸 두 사람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았다. 홍 위원이 1947년 12월생이고, 김훈씨는 1948년 5월생이어서 두 사람은 5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훈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두 사람은 같은 학번이 되었는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도록 한 번도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김: “제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억압뿐이었어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좀 자라서 왔어요. 거기서 미군이 철조망 너머로 던져주는 껌과 초콜렛을 얻어먹었죠. 대학 들어갈 무렵 나와 내 친구들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밥을 먹는 것. 밥. 밥을 좀 먹는 나라를 만들어서, 도대체 밥 세 끼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간절한 소망이었죠. 우리는 고조선때부터 그 시대까지 밥을 못 먹었어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해마다 굶어죽은 놈이 수만명씩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도 해마다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죽었어요. 우리 정부의 행정구호가 ‘기아퇴치’였다고, 기아퇴치.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려는 게 우리들의 비통한 소망이었지. 근데 우리는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어요. 마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짓밟히면서 일해가지고 밥 먹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홍:전후의 상황이라는 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저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빨리 출세를 하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영어보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바로 대학 들어간 해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내 가족이 6.25 당시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통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기아퇴치’라고 하셨는데 전 그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신 학교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반공방첩’이라는 구호가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구호를 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가치관이 붕괴되고, 그래서 공대고 뭐고 다 재미없어지고 방황하게 된 시기가 바로 20대 초반이었어요.”

김:전 대학 졸업을 못했어요.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를 해버렸는데, 그리고 다시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등록금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밥 얘기를 더 하자면,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과 억압과 비리를 저질러 가지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에요. 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무서운 대가가 바로 그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노 대통령 같은 낭만주의나 대중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그것은 부술 수가 없는 훨씬 더 뿌리깊고 강한 구조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어요. 이만큼 생각한 것도 나로서는 상당히 사고가 진보된 것이죠. 그 전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웃음)

: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배세력들이 민중이나 이런 걸 표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분과 실리를 같이 취하려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죠. 그것이 물론 지금까지 말슴하신 대로 축적된 모순과 60년 가까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적 토대, 각 부문별로 결합되어 있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세웠던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과반수의 국회의석도 주었고. 근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결국 자기를 뽑은 민중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죠.”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은 예상 가능한 차이와 뜻밖의(?) 공감대를 보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바탕에 <한겨레> 입사동기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쯤 해서 2002년,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것일까.

김: “당시 저는 혼자 구석방에 들어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유령 같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위기를 느꼈어요. 어디론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괴멸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종구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에게 찾아가서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신문사에 들어갔더니 월드컵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어서 대통령 선거까지 대중들의 힘의 폭발이 이어졌어요. 월드컵은 놀라웠죠. 난 그런 대중의 힘을 처음 봤어요.

대중의 힘은 매우 맹목적인 것 같기도 했는데,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이어 대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난 다시 집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 밀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한겨레>를 떠났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것은 범죄는 아니었죠. 사고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범죄로 몰아가고 결국 반미주의로까지 끌고 나가는 일련의 흐름에서 <한겨레>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죠.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나와 <한겨레>의 큰 갈등이었어요.”

홍: “저는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겨레> 입사였어요. <한겨레>에 입사하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죠.”

김: “심하다, 심해.” (웃음)

홍: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말씀하신 대로 사고인 게 분명하죠. 그런데 만약 미군쪽에서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점령군이 아닌 평등 차원에서의 선언이나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의 구조적인 문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한겨레>가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부분을 동원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미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김: “그것은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서 고통스러운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미국측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이성이 매우 교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죠. 우리처럼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이성은 벌써 오랫동안 마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거든요. 거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게 무척 어려운 지점이죠.”

김: “아까 소통에 관해 말씀하셨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말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많아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언어의 소통기능은 점점 마비되고 언어는 무장하게 되는 것이죠. 무장된 언어가 사회를 막 교란하고 뒤집어엎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시대 언어의 풍경인 것이죠.”

홍: “동의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마치 인터넷이 쌍방향간의 소통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토론이란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의 견해도 들으면서 자기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배설해버리는 식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집단의 외피를 쓴 이기적인 개인들의 뻔뻔한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의 뒤에 숨어 있는 개인들이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게 다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 때문인데,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토론과 교육,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요.”

김: “민주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 “그와 관련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조금 말해 보죠.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촌의 피폐화가 걱정이에요.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그야말로 무서운 변화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김:저는 한 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득을 추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이익을 이행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이나 부도덕을 말할 수가 없는,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참 따지기 어려운 것이죠. 나는 우리 정부가 그것이 결국 이득이 되게끔 앞으로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 이득이 제발 국민 각계각층에 골고루 미치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난 자유무역협정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한겨레>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의 일관성을 집요하게 시비한 적이 있었어요.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진보의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런 기사가 나올 때 <한겨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한 계층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이걸 추진한다는 것은 참 무리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측면이 조금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와서 다시 부딪쳤다. 얘기가 다시 격렬해지려는 참에 마침 찻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대신 적포도주가 곁들여지면서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두고 다시 배 고팠던 지난 시절을 회고한 다음,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한 청년기를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같다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김훈씨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김: “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말 약자의 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전 노 대통령 치하에서 세금 많이 냈습니다. 세금 낼 때 기분이 좋았어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어요. 저는 의료보험도 많이 냈어요. 우리 시대의 분배에 기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신문 보니깐 아니더라고.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소득세 50만원 올렸다고 시위하고 말이죠.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거기서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홍: “그렇게 당연히 사회에 내놔야 되는 사람들이 정작 내놓지 않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분노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저 분노하고 있어요.”

홍: “분노의 방식이 문제인데요.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김: “그건 권력이 해야죠. 정치권력이.”

홍: “한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그런 일을 순조롭게 하리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저는 <한겨레>가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는 악이고 빈이 선이다, 라는 이분법을 버려야죠. 노동은 선이고 자본은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 정서가 있는 거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금 한국 노동의 문제는 노동세력 타락의 문제예요. 노동귀족들의 타락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죠.”

홍: “그걸 과연 노동귀족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구요. 또 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타락할 권리가 있는 사람과 타락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자리에 서면 다 타락합니다.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김:홍 선생의 전공이 ‘똘레랑스’입니다만, 똘레랑스라는 건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이었어요. 우리가 빼앗긴 거죠. 보수주의의 관용 안에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걸 놓친 거예요. 보수주의자가 타락해서 자기 기득권만 방어하면 된다, 이런 식이 되면서 망하게 된 거죠.”

홍: “‘똘레랑스’의 어원 자체가 참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장 정확한 것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수구세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이었습니다.”

김: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똘레랑스’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깨자고 들면 곤란하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능력이나 경제적 처지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다만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홍:김 선생과 저는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데에서는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갈라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기본적으로 그 힘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법조차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부와 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한겨레> 논조가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그런 것은 아니죠.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죄악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사물이라고 봅니다.”

김:가난은 탈피할 대상이지 장려 대상은 아닙니다. 옹호할 가치는 아니죠. 가난에 선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에요.”

홍: “우리가 공화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이라 할 애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한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위함을 받았다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끝없이 관리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자발성이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무상교육 얘기를 해 보죠.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사회가 대준다는 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계층간 연대와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비용 대주는 것이 계층간의 횡적연대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가령 국민연금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것은 세대간의 종적연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윗세대가 은퇴할 때 그들에게 지금의 경제활동 인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식당 역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보는 세상과 <한겨레>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초반과 같은 팽팽한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주로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김훈씨가 대담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김: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여정이 매우 달랐잖아요. 그런 만큼 서로를 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 천진성이라는 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거잖아요?”(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김훈-홍세화 특별한 만남

김훈씨는 <한국일보> 기자와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일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최근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를 계기로 귀국했다.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의 시평집을 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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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15 20:32   좋아요 0 | URL
가져갑니다.

jouissance 2007-05-15 22:19   좋아요 0 | URL
여하튼 홍선생이 말하는 방향이 맞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왜 자꾸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이 귀에 들어 오는지 모르겠네요. 홍선생이 말들이 너무 뻔하게 들려서 그런가? 간만에 흥미로운 대담이군요('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에서 잠시 긴장했습니다. 아마 쎄게 부딪친 부분은 거의 편집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라는 마지막 멘트는 무엇보다 저에게 아주 쎄게 부딪쳐 오네요;;;) 득달같이 퍼갑니다^^

로쟈 2007-05-15 23: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회창이 아닌) 노무현을 찍었었지만,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에 더 공감합니다(홍선생의 말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습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저 역시 안 믿기 때문이고, '좌파적 말빨'들을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부실한 친구'보다는 '깐깐한 적'으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합니다...

biosculp 2007-05-16 10:36   좋아요 0 | URL
홍선생의 말대로 경험이 없고 자발성이 없는데.
그럼 이것을 외국은 이러니하고 가르키고, 세금걷어 행하면 다 끝나는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당위때문에 현실은 웃기는 꼴을 만들고요.
거제도나 울사같은 대규모 공단은 현지 한국평균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지만 그곳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학벌이나 기득권층을 대체할 아니 뭔가 다른 연대의 시도라고 있는지. 신문만 보고 살아 그곳사정을 모르는것도 있지만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yoonta 2007-05-16 14:28   좋아요 0 | URL
김훈씨의 현실분석은 저도 그럭저럭 수긍할만하고 홍세화씨도 의견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김훈씨 스스로도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 무슨 대안이 이야기 될수있느냐는 겁니다. 홍선생은 비록 이상적으로나마 앞서 말한 현실분석에 기초하여 어떤 대안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죠. 반면 김선생은? 그냥 딴지 거는 것으로 밖에는 안보입니다.
홍선생은 속으로 이럴껍니다. "그래서 뭐 어쩌자구? -_- "

"법치주의의 완성" 이런 나이브한 이야기정도 밖에 하지 못하는게 김훈식의 현실론이자 대안이죠. 헌법공부 한번이라도 해보면 저런 이야기 못합니다. 제가보기에 김훈은 정치에 무지한 사람입니다.

pax 2007-05-16 16:27   좋아요 0 | URL
소통을 안믿으시는 분이 법치주의는 믿으시는군요...

로쟈 2007-05-16 17:05   좋아요 0 | URL
법치주의를 믿는다는 게 현행법의 완벽성을 믿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법이란 개선돼 가는 것이니까요). 의회란 입법기관인데, 법에 대한 부정이라면 좌파 의회주의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법 바깥'에 국가를 세우는 건가요? 그 경우에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적인 포지션만 가능하겠죠. 그런 포지션에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yoonta 2007-05-16 18:23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김훈씨는 위 본문에서 분명 "현행법"의 완성을 "법치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7-05-16 19:0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 김훈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저는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현행법은 기본적으론 '헌법'을 말하는 것이죠. 그건 상식적으로 얘기되는 것 아닌가요? 헌법이 정한 가치의 수호니 정의의 구현이니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건 김훈만의 독불장군식 견해가 아닙니다. yoonta님이 원하는 건 '다른 법'인가요(그러니까 다른 '법치주의'), 아니면 '법의 바깥'(소위 지도자 통치? 아니면 자율?)인가요?..

virtuepeak 2007-05-16 20:30   좋아요 0 | URL
현행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바로 법실증주의나 결단주의로 연결짓기는 어려워 보이는 문맥 같습니다. 법률이 정한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그 법이 '완성'될 여지도 없겠지요.

yoonta 2007-05-17 00:54   좋아요 0 | URL
로쟈님/네..그러니깐 적어도 위의 구절에 대해서는 "일치"하지는 않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저는 "다른 법"을 이야기한다라기보다는 "법도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헌법을 포함한 "현행법"자체도 필요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수정하거나 폐기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김훈씨가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배경에는 아마도 대중들의 몰지각함을 강조하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을 대안으로 삼는 그의 "정치"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영혁님/ 물론 그가 "법실증주의"랄지 "결단주의" 혹은 "동화적 통합이론"등을 배경에 깔고 "현행법"이나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죠.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상식적 관점 내에서의 법치주의의 실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같은데요. 문제는 그럼 법자체가 잘못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때 그가 무슨 답변을 할수있느냐인데..그때에도 아마 김훈씨는 "남한산성에 갖혀서 청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절망하며 고뇌하는 최명길의 현실적 선택"을 할꺼라는 생각이 든단 거죠.

로쟈 2007-05-17 01:04   좋아요 0 | URL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이란 게 법치주의의 함의인가요? 그건 새로운 법치주의의 발명 같은데요. 더불어, 법이 변한다는 것 역시 그냥 상식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이라는 게 불변의 법을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그 법의 수정/개정/개선 또한 법에 명시된 절차를 따른다면 법치주의에 위배되거나 모순되는 게 아니죠. 법 개정에 '다른 방법'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게 아니라면...

yoonta 2007-05-17 01:25   좋아요 0 | URL
윗 구절은 사실 너무 짭은 구절이어서 자세히 그가 말한 "현행법" 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힘드네요. 앞에서 홍세화씨와 효순이와 미선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대중들의 교란가능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그런 혼란을 막을수있는 것은 "법"으로 표현되는 "권위"와 같은 법치주의적 질서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행법"만 잘 작동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닌가 라는 정도로 그의 생각을 이해했는데요. 저는 "현행법"의 사전적 혹은 법률적 의미보다는 그 행간을 보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현행법"강조를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한번 연결시켜 보았던 겁니다. ^^

그리고 사실 보통 "현행법"이라고 말하면 그것의 "개정이나 수정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 않나요?

로쟈 2007-05-17 01:30   좋아요 0 | URL
행간 읽기라고 하신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yoonta님의 상상력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현행법에 대해서 만약 김훈이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면 법물신주의라 할 만하고 저와는 다른 견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yoonta님이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신 거구요...

virtuepeak 2007-05-17 02:54   좋아요 0 | URL
yoota님께서 읽으신 행간을 염두에 두고 법치주의가 언급된 부분을 읽으니 그렇게 보여지기도 합니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치주의를 말한 것이라고 여기는 게 더 적합해 보입니다. 김훈은 절대적인 권력 앞에 굴복하는 일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권력을 추종하거나 그런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아마 김훈은 잘못된 법도 개정되기 전까지는 따라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두고 한 인터뷰에서 김훈씨가 만약 편집국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생각을 좀 하다가 그래도 결호를 낼 수는 없다는 대답을 했었지요. 그러나 그 잘못된 법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yoonta 2007-05-17 10:43   좋아요 0 | URL
뭐 어쨋든 2002년당시 "법대로"를 외치시는 이회창을 찍은 그이므로 저는 "현행법"의 김훈씨도 이회창과 그닥 다르지 않은 법감정을 가진것으로 자꾸 생각되네요. 위의 카리스마 이야기는 분명 저의 상상력이긴 합니다만 "현행법"처럼 오해의 소지가 많은 용어를 저렇게 쉽게 발설할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의 "법감정" 내지는 "정치"에는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