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부라보이라는 미국의 거물급 사회학자가 방한했다고 한다. '공공사회학'을 주창한 학자라는데, 요즘 사회학 책들을 별로 안 읽은 탓인지 '공공사회학'이란 말 자체가 생소하다(저자는 <생산의 정치>(박종철출판사, 1999)로 이미 오래전에 소개됐다). 설명에는 '전문(professional) 사회학’과 대비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단사회학의 두 조류가 되는 것인가?(뒤집어 생각해보면, 공공사회학은 가장 실제적/실천적인 학문이어야 할 '사회학'이 그간에 얼마나 폐쇄적으로 전문화되었던가에 대한 반증이자 반성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공공사회학보다는 그가 러시아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데 두어진다. 그 방면의 책들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계의 책'으로 분류해놓는다.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건 차베스에 대한 평가이다. 말발만 앞세운 사회학자들과는 좀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한겨레(07. 05. 12) 사회학자여, 강단을 넘어 대중과 만나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마이클 부라보이는 ‘공공사회학(public sociology)의 전도사’로 불린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사회학자인 그는 사회학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는다. 사회학이 지향하는 가치가 강단을 넘어 대중과 직접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학자는 강단에서 학문적 엄밀성만 추구할 게 아니라 그들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직접 대중과 만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우리 학계에 널리 퍼졌던 실천적 경향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사회학회 회장(2003~2004년) 시절 공공사회학을 주제로 미국사회학회 연례회의를 주재했으며, 지금도 각국을 돌며 공공사회학의 이념 전파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전 헝가리 철강 공장에 직접 취업해 노동과정을 연구하는 등 현장 체험에 바탕을 둔 실증적인 노동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 3일 중앙대·연세대 두뇌한국(BK)21 사업단 초청으로 한국을 첫 방문한 부라보이 교수를 4일 연세대 사회학과 원재연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사회학자들이 왜 대중과 직접 만나야 하나.

=시민들이 그들의 존립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학자들이 봉급을 받고 있다. 학자들은 시민사회에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 사회를 위한 의무다. 사회 역시 사회학자들의 가치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한다. 자본과 국가로부터 시민사회를 지켜내는 데 학자들이 적극 기여해야 한다.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공공사회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공공사회학은 사회 문제에 직접 관여해 이슈들을 토론하는 것을 강조한다. 지향해야 하는 가치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없다. 다양한 정의가 가능할 것이다. 공공사회학계에서는 사회정의와 평등의 가치가 점차 중요성을 얻고 있다. 내게는 ‘사회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가치를 어떻게 대중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궁금하다.

=제도권 언론들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모두 단일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미디어 안에서도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혼재한다. 예컨대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유력지에서도 진보적 칼럼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선 ‘공공 라디오’들이 훨씬 개방적이다. 사회학계 주최의 여러 행사에 언론인들을 초청해 교육시키는 데도 비중을 두고 있다. 중간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대중과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노조와 각종 시민·지역 단체 회원들과 수시로 만나 토론한다.

-한국 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강단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사회학은 과도한 전문주의 경향을 띠고 있다. 아울러 시민사회의 조직화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학문적 지배권을 가진 미국의 이런 경향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중심의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가 갈수록 강단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이유다.

-일각에선 세계화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어디를 가도 세계화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본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전기·수도 등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고 있고, 중국과 인도 농민들은 각종 토목 공사 때문에 땅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시장화는 그 반대세력을 키우고 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브라질 우루과이 등 남미에서 이런 기류가 확연하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나.

=그가 세계에서 미국 지배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석유다. 그는 너무나 많은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대토지 소유자로부터 땅을 사버린다. 그들을 추방하지 않는다. 금융과 은행 제도와도 타협하고 있다. 너무 돈이 많아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게 가능하다. 나는 그를 ‘민족적 대중주의자(national populist)’로 본다. 그가 도시 변두리 주민들의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 일종의 재분배를 한 것은 인정한다.

-세계화 흐름 이후 양극화 경향이 거세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의 사회운동은 일종의 수세적인 방어 운동이다. 공공영역의 민영화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미래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하지만 남미를 비롯해 세계화에 저항하는 많은 대안 찾기가 시도되고 있다. 시장화에 반대하는 조직화가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안은 이런 사회운동에 있다고 본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행로에 대해 어떻게 보나.

=1991년 이후 러시아 경제는 하강했으나 중국은 반대로 상승하고 있다. 러시아는 조직적으로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 혁명적인 방식으로 시장자본주의로 이행했다. 충격요법을 썼지만 치유책은 내놓지 못했다. 중국은 국가의 후원 아래 시장경제가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국가가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가치로서 언제든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다층적이고 비동질적인 사유체계이다. 자본주의에 대항한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실을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체감하는지.

=내가 재직 중인 대학의 사회학과는 지금까지 계속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학문의 인기는 일자리의 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물질적 매력에 기반한 지배력이 학문의 세계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한 영향이다. 미국의 힘은 자신들의 교육 체계나 지식·이데올로기에 권위를 부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남미가 저항 아이디어로 맞서듯, 유럽 등 다른 대륙도 미국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공공사회학 = 학문이 강단을 넘어 대중과 만나 지향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학의 한 분야. 1988년 미국에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동료 전문 학자들과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강단사회학인 ‘전문(professional) 사회학’과 대비되는 개념이다.(강성만 기자) 

07. 05. 13.

P.S. 부라보이 교수의 홈피(http://sociology.berkeley.edu/faculty/burawoy/workingpapers.htm)에는 그의 '워킹 페이퍼'들이 링크돼 있다. 러시아의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논문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론 편저인 <세계화와 새로운 정체성들>(2007)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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