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대선 이슈 중 하나는 '3불 정책' 존폐 문제가 될 거라는 전망이 있다. 대학마다 소리 높여서 '3불' 폐지를 외치고 있는데(프레시안의 관련기사들은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section_sub.asp?s_menu=사회&s_sub_menu=교육), 그와는 반대되는 목소리도 한편에는 엄존한다(그리고 내가 보기엔 더 설득력이 있다). 서로 다른 입장들을 대조해놓고 판단할 문제이지만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가 '모자란 학생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부실한 대학'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는 두 개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4. 02) 잘난 대학이 못난 애들 탓?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 대낮부터 소주 한잔 했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어른이 쪼그리고 앉아 애들을 불러 세운다. “너희들, 누가 싸움 잘 해?” 애들은 서로 눈만 멀뚱거린다. 어른은 계속 경쟁심을 북돋운다. “너, 이 친구한테 이길 수 있어?” 결국 몇 명의 애들이 아무 소득도 없는 싸움을 하고, 어른은 이를 보고 즐긴다.

최근 한국의 어른 몇 분이 애들 싸움판을 ‘본격적’으로 키우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놀랍다. 할일 없는 어른이 골목길에서 심심풀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맨정신’으로 하는 말이다. 교육부의 ‘3불(不) 정책’을 폐지하라고 말이다. 삼불정책이란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금지를 말하는 것이니, 상아탑의 선비들이 점잖은 말로 “똑똑한 애, 돈 많은 애들 못 뽑아 대학이 발전 못하니, 금지를 풀어 달라”는 것이다. 결국 전국의 애들 모아 놓고 “너희들 중 누가 공부 젤 잘해?” “부모님 돈 많은 사람 손들어봐!”라고 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

한번 따져보자. 한국 대학 신입생의 학력 수준은 세계의 어느 명문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한국 초등학생의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고,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학력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모두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 급별로 볼 때 가장 ‘부끄러운 성적’을 내는 곳은 대학 아니던가? 대학 들어갈 때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었는데, 나올 때는 세계는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별 쓸모가 없는 부실한 인간이 되어 나온다는 것이 한국의 골칫 거리 아닌가? 그런 대학이 입학생 실력 탓하고 있으니, 정말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리고 큰 돈보따리를 들고 들어오는 학생을 못 뽑기에 대학이 발전 못한다고? 신입생의 학력문제보다는 돈문제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에는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과연 선진국 대학의 재정적 측면의 경쟁력이 입학생이 들고 들어오는 돈에서 나오는 것일까? 교수들이 따오는 연구비, 그 연구결과로 취득한 지적재산권이 벌어들이는 돈, 성공한 졸업생들이 모교에 내는 기금, 총장들이 발로 뛰어 기업으로부터 끌어들인 기금 등이 모여 남다른 차이를 만드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결국 돈 버는 어른들이 대학 발전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어른들은 왜 자꾸 ‘애들’ 싸움에 집착하는가? 경쟁이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이기는 일이 중요하다면, 어른들이 잘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면 고등학생들보다 대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들보다 교사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 ‘시합’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벌려야 정상이다. 그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일터에서도 어른들이 열심히 경쟁하고, 자주 평가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여 실력을 쌓아 나가도, 먼저 자리잡은 어른들이 철밥통 차지하고 앉아, “나는 열외로 하고, 너희들끼리 싸워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미 세계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겐 여행을 하고, 명작도 읽고, 남을 돕는 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앞날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한다. 정말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해야 할 사람은 한국의 애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류재명/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한국일보(07. 03. 31) 서울대가 하버드가 못되는 이유

가끔 어디 어디 선정 세계 대학 순위라는 게 언론에 보도된다. 예를 들어 요전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한 '세계 100대 글로벌 대학'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하고,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도 한다. 그 때마다 베이징대도 순위에 들었는데 한국 대학은 하나도 못 들었네, 200위권 밖으로 밀렸네 하는 개탄이 나온다. 유달리 등수에 집착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대학 순위를 새삼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서울대를 시작으로 각계에서 "정부의 3불(不) 정책이 대학 경쟁력 확보에 암초다"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을 뽑을 때 본고사도 보이지 못하고, 지망생의 출신 고교를 등급화해서 차별대우하지도 하지 못하고, 기여입학제도 못하는 바람에 대학의 경쟁력이 가차없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대학 자율을 저해하는 규제 조치이니 누가 봐도 바람직할 것은 아니다.

● 경쟁력 약한 게 삼불 탓?

그런데, 대학의 경쟁력이란 게 무엇일까? 그게 뭐길래 3불 정책이 그토록 방해가 될까?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기관들의 기준을 보는 것이 좋겠다. 요약하면 해당 학교 교수나 연구원의 논문이 권위 있는 전문지에 인용된 횟수, 외국인 교수ㆍ학생의 비율, 교수 1인당 논문인용지수, 교수 1인당 학생 비율, 도서관 장서 규모 같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신입생의 우수성이라는 항목은 없다.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정도의 우수성은 기본이므로 특별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낫다는 서울대조차 이런 순위에 별로 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심하게 말해서 신입생이 우수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국가가 3불이라는 이름으로 우수한 신입생을 뽑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버드대 총장이나 옥스퍼드대 총장에게 해 주면 뭐라고 할까? 아마 What are you talking about?(무슨 소리요?)이라고 할 것이다.

연구비를 키우고, 우수 교수를 어떻게든 영입하고, 무능 교수와 불량 학생은 쫓아내고, 특화할 분야에 집중하고, 석ㆍ박사 과정 학생의 연구를 독려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극대화하고, 특허를 많이 내고 하는 노력에 전력투구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이제 갓 들어와서 4년 동안 키워야 겨우 써먹을까 말까 한 애기들한테 대학의 경쟁력 책임을 몽땅 갖다 씌우는 것이다. 비유가 약간 부적절하지만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격이다. 도편수나 소목장쯤 되면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법이다. 하버드대생을 만드는 것은 하버드대인데 우리는 서울대생이 서울대를 만든다.

하기야 미국의 경쟁력 높은 대학들도 우수학생을 뽑는 일을 중시해서 많은 인력과 노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 대학에서 입학 전형 일을 했던 재미동포 안젤라 엄씨의 분석에 따르면 대개 하버드대에 응시한 고교 수석 졸업생의 80%가 낙방한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SAT 만점자가 아이비 리그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숱하다. 본고사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왜 그럴까? 평범한 우수생이 아니라 특출한 학생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 하버드와 다른 점 알아야

100점 만점 시험에서 100점과 90 몇 점은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 학생의 특출한 자질, 열정, 헌신, 성실성, 인간적 성숙도 같은 덕목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하버드대처럼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교육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제 못난 것이 3불 때문이라니…. (이광일 논설위원) 

07. 04. 02.

P.S. 최근의 '3불 페지'론과 본고사 논란을 '서울대 엘리뜨들의 퇴행성 본고사주의'로, 보다 구체적으론 '70년대 서울대 출신의 노스탤지어'로 분석하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사회학자인 김종엽 한신대 교수의 '창비논평'이다( http://www.changbi.com/weeklyreview/content.asp?pID=106&pPageID=&pPageCnt=&pBlockID=&pBlockCnt=&pDir=&pSearch=&pSearchS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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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02 13:36   좋아요 0 | URL
백번 맞는 말이여요.

biosculp 2007-04-03 00:44   좋아요 0 | URL
읽다보니 생각나는게 원동연, 5차원 독서법과 학문의 9단계라는 책의 말미에 나오는 애기인데요. 한국 교육의 약점으로 성적과 실력의 괴리를 애기하더군요.
영어 성적은 높은데 실제로 영어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역사 성적은 높은데 역사의식이 없다. 윤리 성적은 높은데 윤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체육성적은 높으나 건강하지 않고 과학성적은 높은데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지 못한 실력없는 사람들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다 정말 웃음이 나오면 고개가 끄덕여 지던데, 요즘 초딩들 공부가 가관이거든요. 수학교육전공하시는 분이 같은 문제라도 초딩, 중딩, 고딩때 반복되지만 개념이해에 따라 풀이 방법이 다르기에 섣부른 선행은 기계적인 문제풀이만 암기할 뿐이지 창조력을 말살시켜버린다고 경고하는데 초딩들이 중딩고딩들 풀이 방법으로 문제풀이에 전력하고, 이런 애들이 어딜가나 성적은 좋게 나오고 우리나라 명문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되는데, 서울대 어느교수는 0.001%가 차이나도 구별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성적은 참 좋은데 실력은?
이런 웃지못할 상황이 계속 벌어질것 같군요.

로쟈 2007-04-03 15:14   좋아요 0 | URL
0.001% 차이를 식별해내는 게 교육공학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은 아닌 것이죠. 입시전형만 바꾸면 대학마다 숨겨진 '천재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것인지. '공학'이란 게 워낙에 놀라운 걸 만들어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