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트 러셀의 <결혼과 도덕>(1929)을 서평 강의에서 읽었다. 그러고 보니 러셀을 강의에서 다룬 건 처음이지 싶다.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여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강의 때 다룰 수도 있었지만(윈스턴 처칠과 함께) 기획했던 강의가 폐강되어 무산됐었다. 그때도 읽으려고 한 것이 <결혼과 도덕>인데 몆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고 나는 대부분 갖고 있었다(과거형으로 쓴 건 현재 행방을 찾을 수 없어서다).

하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원제와는 다른 제목들이 붙어 있어서 강의에서는 사회평론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읽은 건 박영문고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상에 남는 대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읽다가 만 듯싶은데 이번에 읽으면서 꽤 유익한 책이어서 놀랐다. 낡은 구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러셀은 인구의 증가가 제한적일 거라고 보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20세기에 세계인구는 두 배 이상 폭증했다), 결혼에 대한 새로운 도덕의 제안과 요청은 지금 시점에서도 충분히 음미해볼 만하다.

게다가 부수적으로는 낭만적 사랑의 탄생과 그 역사에 대한 잘 정리된 설명을 제공하고 있어서 좋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명쾌하게 정리해주면 반가운 것. 특히 낭만적 사랑에 대한 정의. ˝낭만적 사랑의 핵심은 상대를 손에 넣기 어려운 귀한 존재로 여기는 데 있다.˝ ˝상대방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그 여성을 손에 넣기 어려운 데서 오는 심리적 효과다... 그 사랑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 도덕과 인습이라는 드높은 장벽 너머에 있는 여성이 대상이었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구애의 노래가 바로 연애시다. 때문에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을 쉽게 손에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여성을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고 어려운 경우다.˝ 정리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손에 넣기 어려운 대상이 사랑의 대상이고 이 대상을 향한 정념의 운동이 사랑이라고 불린다. 사랑에 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적당한 크기의 가장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된다. 더불어서 사랑이 왜 중세 유럽(궁정사회)에서 탄생했는지도 이해하게 해준다.

사회평론판은 원서의 장제목들을 편의적으로 수정했는데 장수도 원저와는 차이가 있어서 완역본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확인해보기 위해서 원서도 오늘 주문했다(나는 갖고 있는 줄 알았다). 온라인에서 다운받아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종이책이 편해서 주문했고, 배송된 이후에야 살펴보려 한다. 러셀에 대해선 그때 다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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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6-0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자식에 관한 언급이 좀 의외다 했는데
강의에서 궁금증 해소~
그래도 러셀의 두가지 차원의 결혼관에 자식이 변수라는건
여전히 의외~~
러셀의 성장과정이 어땠는지가 새로운 궁금증.

로쟈 2019-06-03 23:34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저도 조사해본 거였어요. 자녀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러셀은 자서전이 번역돼 있어서 참고하실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