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문학사이'의 아홉번째 타자는 소설가 김중혁이다. '소설 이천년대'를 꾸려나가는 작가군의 한 사람. 자신을 '레고 블록'의 덩어리로 규정하면서 소설 쓰기 또한 그러한 '블록쌓기'적인 유희로 간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이 작가에 대해서 심진경 평론가가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이름도 그렇지만 외모 또한 '중량'이 좀 나갈 것 같은 작가에게서 그런 블록 얘기와 '무용지물의 박물학'을 듣는다는 게 좀 낯설 때도 있다. 그런 것이 또한 '소설 이천년대'의 특징인지도.

경향신문(07. 03. 10) [작가와 문학사이](9)김중혁-낯섦으로 문학을 완성해가다
‘펭귄뉴스’라는 낯선 제목의 단편집 말미에 김중혁은 자신을 하나의 ‘레고 블록’ 혹은 수많은 레고 블록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라고 말한다. 이때 ‘레고 블록’과 ‘덩어리’는 다른 말이 아니다. ‘레고 블록’은 ‘덩어리’다. 수많은 ‘레고 블록’이 조립과 해체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이 ‘덩어리’는 다른 누군가의 ‘레고 블록’ 한 조각이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레고 블록’ 한 조각이자, 다양한 레고 블록들의 조합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라는 오래된 자기동일적 명제는 부정된다. ‘나’는 ‘나 이외의 것’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부정의 산물인 셈이다.

김중혁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자기 인식의 메커니즘은 그대로 문학에도 적용된다. 그에 따르면 소설이란 “세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해야만 겨우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1925년산 축음기 크리덴저’)과도 같은 것이다. 사용가치와 도구성을 상실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하는 일, 김중혁에게 소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소설은 엄청난 자기 연마와 수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문학은 무가치한 것이다. 즉 문학은 ‘무엇을 위하여’라는 실용적·도구적 목적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 김현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실용적, 관습적 가치를 반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가치와 의미를 꿈꾸게 한다. 그러니 문학이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김현 선생의 입론은 <한국문학의 위상>에서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도구는 그 도구성을 상실한 뒤에야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장난 타자기는 유용한 도구로서의 실용성을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49개의 이빨을 가진 ‘회색괴물’로 다시 태어난다.(‘회색괴물’) 타자기만이 아니다. 페달도 안장도 없는 자전거(‘바나나 주식회사’)나 촉각과 상상력으로만 읽을 수 있는 나무지도(‘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모두 원래의 용도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관습적 시스템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그래서 제품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낯섦을 통해서만 무용하지만 의미있는 사물이 된다. 그러한 사물은 자명하고 투명한 제품이나 상품과는 달리,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불투명하고 낯선 것으로, 상품의 세계를 교란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김중혁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무용지물’을 문학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뜻 몸 가벼워보이는 김중혁의 문학적 행보를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현대문학’에 다소 엉뚱하고 쓸모없는 발명품을 소개하는 카툰(‘인간개발 프로젝트’)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디오 기기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다양한 장르의 LP판을 수집하기도 하며, 새로 출시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사물-소설은 이러한 마니아적 취향과 감수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소설을 단순히 취향의 세계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러한 문학 아닌 것들의 뒤죽박죽 잡동사니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가치함의 가치라는 문학적 역설은 그렇게 ‘문학은 문학’이라는 자기동일적 순환논법을 거부하고 문학 아닌 쓸데없는 짓거리와 결합하고 교환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은 생산, 유통, 소비되는 상품으로써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결코 그러한 사실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보통의 상품과는 다른 사용법과 가치를 갖는 ‘사물’이라는 점, 그러한 사물이야말로 상품으로써의 문학이 갖는 부정의 존재방식이라는 점. 김중혁의 사물-소설은 그렇게 문학과 사물, 문학과 상품 사이를 넘나들면서 지금 우리 시대 문학의 존재의미에 대해 질문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07. 03. 10.
P.S. 연초에 게재되었던 '문화계 이 사람을 보라' 시리즈의 기사도 이 참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1. 04) [2007 문화계 이사람을 보라] 3. 소설가 김중혁씨
그 ‘유명한’ 김중혁(36)을 만났다. 패서너블한 안경테와 언밸런스한 헤어스타일, 왼쪽 귀고리가 먼저 눈에 띈다. 추운 날씨에도 안에는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겉에는 카키색 점퍼에다 숄더백을 걸친 것이 소설가라기보다 팝아티스트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면서 잡지사 기자로, 프리랜서로 다양한 글을 써왔던 경력 덕분에 자세는 낮고 행동은 민첩하다. 문단의 어떤 모임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작가로서 멋진 인사말을 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은 새삼 주목을 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한 존재다. 지난해 3월 첫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를 낸 뒤 모든 게 달라졌다. 그의 작품은 ‘마니아적 취향으로 사물의 세계에 천착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인간중심주의를 깬 존재’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감각을 바꾼 가운데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조명’ 등의 찬사를 받았다.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의 최종 후보로 오르내렸다. 한 중견작가는 “신인들의 작품은 새롭기는 하지만 좋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펭귄뉴스’는 새로우면서도 좋았다”고 칭찬했다.
“등단 6년 만에 책을 냈는데 재미있는 한해였어요. 계간지에 한 편씩 발표할 때는 얻지 못했던 독자들의 관심과 반응이 실감으로 다가왔고요. 책이라는 물질이 자기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중혁 소설에는 자전거, 라디오, 타자기, 전화 등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것들이 등장한다. 지나간 추억이 올드 팝송이나 빛바랜 사물 속에서 반추되는 것처럼 작은 실마리로부터 농축된 이야기를 끌어낸다. 대중문화적 감성과 깊은 인생철학, 쿨한 서사와 예리한 감수성의 포착, 폭넓은 관심사와 집중력이 조화되면서 독특한 개성을 발휘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창시절부터 빌보드차트 100곡을 외우고 다녔던 음악광이자 요리, 여행, 영화,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박학다식과 취미를 자랑한다. 첨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컴퓨터 라디오 등 기계에도 관심이 많다. 일러스트도 직접 그린다.
“못해도 재미있다 싶으면 해요. 그림을 잘 못그렸는데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왜 학교 다닐 때 책에다 낙서하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력과 글, 그림이 모두 들어간 낙서야말로 종합예술인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영화를 봐야 하고 그럼 만화가 밀려 있고 좋은 전시도 많고…. 그는 놀 때가 가장 바쁘다. 그래도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소설쓰기다. 모든 경험이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소설쓰기라는 한 꼭지점으로 수렴된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의 70%만 한다는 것이 그의 삶의 원칙이다. 그래야 남은 힘으로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시로 문학에 입문했다. 경북 김천 중앙초등학교 4학년때 만난 가장 친한 친구 김연수(소설가)와 중·고교 문예반에서 시공부를 했다. 그후 계명대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4학년때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여러차례 낙방했으며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펭귄뉴스’를 내면서 등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온 뒤 ‘페이퍼’ 등 잡지에 음악칼럼, 인터뷰를 썼으며 ‘리브로’ ‘베스트 레스토랑’ ‘트레블러’라는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소설에만 매달리지 않은 이유는 억지로 쓰기보다는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 걸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청탁이 쇄도하면서 6개 단편을 쏟아냈다. 다음 소설집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섬세한 감정을 건드리는지, 왜 소리를 들으면 상상하게 되는지 등이 관심사다. 1~2편만 더하면 소설집을 묶어낼 수 있지만 거기서 멈췄다. 그 대신 지난 연말에 한 일간지 주말판 기자로 취직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꾸준히 장편을 쓰자는 생각이다. “소설집을 또 내는 것은 왠지 기만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는 “내 단편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장편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가로 각광 받으면서 더욱 소설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취직한다니까 주변에서 우려하는 분도 많았고요. 그러나 소설을 쓰자고 강박관념을 가지면 소설이 안써질 것 같고, 소설만 쓰기에는 바깥에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아요. 전업작가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요즘 재미있는 책으로 자기 또래 작가들의 소설을 권한다. 이기호 박형서 편혜영 김애란 한유주 등에게 입사동기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평생 같이 직장 다니면서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는 생각인데 그들이 커가는 걸 보면 샘도 좀 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힙합에서 피처링(다른 뮤지션이 한 소절을 연주해주는 것)처럼 ‘내 소설에서 잔인한 부분은 편혜영에게 맡겨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다. 그러기 위해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그의 새해 목표다.(한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