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오타가 아니다. ‘읽기 위하여‘가 아니리 ‘읽히기 위하여‘다. 백화점 겨울학기 강의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라캉의 <에크리>가 화제가 되었는데(일차적으로는 두께와 가격 때문에), 한 분이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고 하셨다. 이 경우 ‘읽기 위하여‘와 ‘모셔 두려고‘와는 구매 동기가 다른데, 특히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란다. 가령 싫어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다 읽고 나면 보자!˝라고 인사하는 것(굉장히 제한적일 테지만 시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려도 좋은 책이 <에크리>다).

조금 응용하자면 <에크리> 외에 두 권의 <세미나>도 그런 용도에 값하겠다. 내가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읽히려는 책. 싫어하는 사람에게 읽힌다고 했으니 적들에게 읽힌다고 해도 되겠다. 관점을 바꾸면 책의 의의도 달라진다. 읽으려고 하면 암담하지만 적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라면 이만한 책이 있을까. 이 경우 어줍잖은 해설서들은 적을 이롭게 하기에 필히 피해야 한다(적들이 모르게 하라!). 원저인 불어본이나 영역본을 추천하는 것까지는 괜찮다(어차피 프랑스인들도 못 읽는다는 불어본이니까).

오늘 한겨레의 기사를 읽으니 <에크리>는 초판 1000부를 찍었다고 한다. 유효독자를 감안한 것이면서 번역의 수정을 대비한 것이리라. 명절 선물용 소갈비 한짝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준하는 선물로 몇 권 구입해놓아도 좋겠다.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해서 한권만 구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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