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한겨레에 실리는 북리뷰들을 훑어보다가 뜻밖의 책이 나온 걸 알게 됐다. <인간론>으로 잘 알려진 에른스트 카시러의 <문화과학의 논리>(길, 2007)가 그것이다. 흔히 '문화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카시러의 저작에 '문화과학'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도 이채롭다(찾아보니 독어본 원제는 'Zur Logik der Kulturwissenschaften'이며 영어로는 <인문학의 논리(The Logic of the Humanities)>라고 옮겨진 책이다. 그러니까 카시러의 '문화과학'은 '인문학'과 유사한 개념이며 영어권의 '문화연구'와는 계보가 다른 것이겠다. 더 찾아보니 영역본은 <문화과학의 논리>라고 새로 번역돼 나왔다) . 김상봉 교수의 서평을 옮겨놓으며 몇 자 보탠다.

한겨레(07. 02. 23) ‘문화’라는 학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아는 것은 세계를 아는 것보다 어렵다. 세계는 눈앞에 펼쳐져 있어 바로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내게 가장 익숙하지만 가장 낯설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리 있는 존재이다. 이런 사정은 개인으로서의 자기인식만이 아니라 유적 존재로서 인간 전체의 삶을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삶의 객관적 현실태를 가리켜 우리는 문화라 부를 수 있다. 문화는 인간성의 객관적 표현이자 실현인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를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유적 존재로서 인간이 자기를 안다는 것을 뜻한다 하겠는데, 이른바 문화과학이란 문화에 대한 학술적인 인식의 체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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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러의 책 <문화과학의 논리>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문화를 인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새로운 학문의 근본적인 곤경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문화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기 전까지 학문과 인식의 모범은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자연에 대한 학문적 인식은 주어진 사실을 두 가지 방법론적 원리에 근거해서 해명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왔는데, 그 하나는 주어진 사실을 그 사실이 아닌 다른 원인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런 인과관계를 보편적 법칙을 통해 해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문적 인식은 주어진 사실이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증명하려 한다.

따라서 자연과학이 추구하는 인식의 이상은 세상만사를 외적 필연성에 따라 인식하는 것이다. 대상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외적 필연성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은 타율성과 수동성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자연인식의 방법을 통해 우리들 자신의 삶의 현실태인 문화를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문화과학의 논리>를 관통하는 근본 물음이다.

생각하면 자연과학의 방법은 죽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나 합당한 것으로서 문화는 고사하고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조차 쓸모가 없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생명현상이란 외적 필연성에 의해 떠밀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적 필연성에 의해 스스로 생겨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아무리 생명현상을 외적 필연성과 합법칙성에 따라 분석하고 해명한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생명체의 발생과정일 뿐, 그 발생과정을 이끌어가는 근원적 힘과 원리인 생명 그 자체는 아니다.

생명이 그러한데, 인간의 일은 또 어떠하겠는가? 칸트가 말했듯이 자연은 법칙에 따라 운동할 뿐이지만 인간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한다. 그렇게 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 까닭에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타율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기계가 아니다. 그리하여 모든 대상을 타자적 원인과 타율적 법칙을 통해 해명하려는 시도는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물론 인간은 타자의 작용과 객관적 법칙 밖에 거주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를 지배하는 법칙 그 자체를 대상화하고 타자로부터의 작용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줄 아는 존재인 까닭에 언제나 법칙 속에서도 법칙을 넘어서고, 타자성 속에서도 자기를 발견하고 형성하는 존재이다. 문화란 그런 인간성의 객관적 현실태이니, 그것을 학문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한 외적 필연성의 논리가 아닌 다른 학문 방법과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카시러는 이 책에서 그 새로운 학문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박식한 철학자는 문화과학의 어려움이 어디에 있는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또 다른 학문 방법이 필요한지, 그 가장 기본적인 문제 상황을 다양한 시대와 학문분야들을 넘나들면서 명석한 필치로 소상히 설명한다. 어떤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은 다른 것에 앞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성의 객관적 현실태인 문화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인간성의 신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을 위한 이상적인 길잡이이다.(김상봉/전남대 교수·철학)

07. 02. 22.

 

 

 

 

P.S. 카시러(캇시러) 입문서로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책세상, 2002)이다. 역자의 해설과 관련문헌 해제가 유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고본이어서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다. 역자인 오향미 박사는 카시러 전공자인데(국내에서는 최명관, 신응철, 박완규 교수 등이 카시러 전문가로 분류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카시러는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에 비하면 독일에서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철학자의 속한다."(7쪽) 독일어 주저인 <상징형식 철학>(전3권)의 핵심을 압축/축약해서 출간한 것으로 알려진 영어판 <인간론(An Essay on Man)>(1957)의 출간 이후에는 오히려 미국에서 더 많이 연구되고 있다 한다(저자 스스로 축약해준다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론>은 국내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서광사, 1988)로 번역된 바 있지만 현재는 절판됐다(<인간과 문화>라는 발췌역본  있었다). 최초 번역본은 <인간론>(민중서관, 1960)이었다. 이어서 나온 것이 <국가의 신화>(서광사, 1988)이며 모두 최명관 교수의 번역이다(<국가의 신화>는 아직 절판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좀 터울을 두고 나온 책들이 <계몽주의 철학>(서광사, 1995),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서광사, 1996), <루소, 칸트, 괴테>(서광사, 1996) 등이다. 완독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다. 카시러 연구서로는 신응철 교수의 <캇시러의 문화철학>(한울, 2000), <문화철학과 문화비평>(철학과현실사, 2003), <카시러의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철학과현실사, 2004)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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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3 00:30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벌써 또 금요일이군요. 내일 한겨레를 사야겠습니다.

로쟈 2007-02-23 00:32   좋아요 0 | URL
'오늘'입니다.^^

2007-02-23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