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주변의 책들을 정리하다가(‘헤집다가‘가 더 정확하겠다) 현대시 강의 때 훑어본 책 몇 권에 다시 손이 갔다. 그중 하나는 <한계전의 명시 읽기>(문학동네)인데 현장 비평에는 관여하지 않고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시를 강의한 저자의 ‘역저‘라는 추천사가 무색하게도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한 책이다.
사실 일부만 읽고도 제쳐놓게 된 건 미당의 초기시 ‘화사‘를 해설한 대목을 보고서다. 이 시가 ˝첫 시집 <화사집>(1938)에 수록되어˝ 있다고 적혀 있어서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했다. 해방 이전 근대시사의 간판시집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그래서 나도 기억한다) <화사집>(1941)의 출간연도도 오기하다니! 그런 마당에야 해설이 대수롭게 읽힐 리 없다. 저자의 불찰일 테지만 놀랍게도 내가 구입한 판본은 2002년에 나온 책의 15쇄로 2016년에 나온 것이다. 14년간 오류가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랄 밖에. 저자를 포함해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추정만 가능하다.
아무려나 동료교수들의 주례사 비평에도 불구하고 나로선 함량미달의 책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이는 양장본도 못 마땅한 마음에는 트집거리가 된다. 기본적인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책의 운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