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전쟁(기사에서는 '6.25전쟁'이라고 표현)을 보는 시각은 전쟁의 발발원인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느냐, 외부에 있었느냐에 대한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정통주의: 대리전(국제전), (2)수정주의: 내전 (3)절충주의: 복합전. 이 중 세번째 입장의 시각을 강화시켜주는 논문/책이 출간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 놓는다.

문화일보(07. 02. 20) "스탈린 동의 안했다면 6·25 없었다”

6·25전쟁은 내전인가, 아니면 국제전인가. 한국전쟁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전쟁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6·25전쟁은 복합전’이라는 내용의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명인문화)에서 수록문 ‘6·25전쟁은 복합전으로 시작되었다-내전설과 남침유도설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이 1950년 1월30일 김일성의 남침에 대해 동의했으므로 전쟁이 일어났다”면서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경충돌에 그쳤을 뿐 대량살상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내전적 상황은 전면전 발발에 있어 ‘종속 변수’에 불과했으며, 전쟁의 직접적 발발 원인은 소련·중국·북한 등 3국 국제공산주의자들의 공모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쟁의 근본적 책임은 미·소에 있다”며 “6·25전쟁은 ‘국제전적 내전’이 아니라 ‘내전적 상황을 이용한 국제전’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둘러싼 논쟁 =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캄보디아 방문 도중 가진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왔는데 대통령이 돼서 보니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음날 국내 언론에서 문제가 됐다. 바로 ‘6·25전쟁은 내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문화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좌파적 역사관을 비판했다.



1980년대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이른바 수정주의사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속속 제기됐다. 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또한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른바 ‘남침유도설’이다.

수정주의사관이 등장하기 전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이라는 게 6·25전쟁에 대한 정통 견해였다. 이는 곧 한국전을 미·소간 양대 진영이 맞붙은 국제전으로 파악하는 시각이었다. 한때 수정주의사관에 밀리던 이 같은 견해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1990년 중반 무렵 구 소련 문서가 대거 비밀해제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소련과 북한 정권 사이에 오고간 문서자료들은 수정주의사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지만, 러시아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가 여러 권 나와 있다. 번역/소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6·25전쟁은 복합전’ = 이 교수는 수록문을 통해 “처음에는 내전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분단이 그 근본적 배경이었고 스탈린의 승인이라는 외인이 (전쟁) 발발의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복합적인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내전과 국제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복합전쟁이었고,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적인 성격이 강화됐으므로 국제전적 요소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논지다. 따라서 종합적으로는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전’이라고 이 교수는 결론내렸다.

그는 또 전쟁 발발 이전 분단 과정에 대해서도 “민족 내부의 좌우대립(내인)과 외적 규정력(외인)은 분단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며 “외인이 없었다면 무조건 통일됐을 것이며, 내인이 없었다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외인이 내인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약 내인이 없었고, 미·소가 우리를 강압적으로 분단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분단의 성격에 대해서도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형 분단’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내전적 배경과 국제전적 요인은 6·25전쟁 발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며 “따라서 이 전쟁은 복합전이었으며, 내전이라거나 국제전이라거나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이 두 요인이 결합된 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번기자)

07. 02. 20.

 

 

  


 

P.S. 작년 여름에 출간된 정병준 교수의 노작 <한국전쟁>(돌베개, 2006)에서도 저자는 "전쟁은 특정 시점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창조·결정된 산물이 아니라, 미소·남북·좌우의 대립과 길항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물이었다. 즉 전쟁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햇던 미소라는 세계 패권국가의 대립, 남북한 간의 지역적 분립, 좌우익 간의 이념적 대결 등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한국의 국내적·국제적 갈등 투쟁을 반영한 작은 우주의 빅뱅이었다."라고 적었다. 이완범 교수는 과연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연구서/연구자들의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영어권의 새로운 연구서로는 윌리엄 스튝의 <한국전쟁 재고>(프린스턴대학출판부, 2002)가 눈에 띈다(태극기는 왜 엉뚱하게 그려져 있나?). 제목에 'Rethinking'이 들어간 것은 저자가 이미 <한국전쟁>(1995)이란 노작을 쓴 바 있기 때문. 커밍스의 시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최근에 나온 국내 저자들의 <한국전쟁>에도 인용돼 있을 듯하다). 

참고로 스튝의 <한국전쟁>은 러시아판(2002)으로도 나와 있다. 생각난 김에 러시아책들을 인터넷서점에서 둘러봤는데 눈에 띄는 책 서너 권에 대해 몇 자 적어둔다. 먼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의 경험을 토대로 이고르 세이도프 등이 쓴 <'세이버'의 재난: 한국전쟁의 에이스>(2006). 576쪽 분량이고 같이 나온 책 <미그 대 세이버>(2006)와 함께 한국전쟁 관련서로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다(제목의 '에이스'는 적기를 많이 격추한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미그'는 소련/러시아가 자랑하는 전투기 '미그기'를 가리키지만 '세이버'는 무엇인가?

Гроза "Сейбров". Лучший ас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Миги" против "Сейбров"

동아일보(06. 11. 08) 기사에 따르면,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세이버'란 그 미군의 '쌕쌕이' F-80(나중엔 F-86?)을 가리킨다.

한국전쟁은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간 교전이 이루어진 전쟁으로도 기록될 터인데, 결과는 어떠했을까?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에 대한 (평균적인)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주로 미군의 세이버기와 교전한 미그기와 그 소련군 조종사들에 가 있다는 걸 알겠다.

Загадочная война: Корейский конфликт 1950-1953 гг.Корейская война (1950-1953) и ООН

보다 '정통적인' 연구서는 토르쿠노프의 <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의 충돌 1950-1953>(2001)이 있다(왼쪽). 표지만 봐도 어떤 성격의 책일지 짐작된다. 오른쪽은 새로운 경향의 책인데, 바닌이 쓴 <한국전쟁과 유엔>(2006)이다.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두루 참조할 만한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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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가 본 한국전쟁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22 09:25 
    이달에 구한 한국전쟁 관련서 가운데하나는 아나톨리 토르쿠노프의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에디터, 2003)이다. 저자는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으로 재직중인 실력자.러시아 학술원(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며, 작년 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토르쿠노프의 '주저'가 바로<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전쟁, 1950-1953>(2000)이다(그밖에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공저들도 갖고 있다
 
 
기인 2007-02-21 07:3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로쟈 2007-02-21 12:34   좋아요 0 | URL
쌕쌕이 기종에 오타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