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2.0'에서 지난주에 읽었던 칼럼, 보다 정확하게는 편집장 직무대행이 쓴 '편집장의 말'을 옮겨놓는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달에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았던 케빈 스미스의 <순결한 할리우드>(Media2.0, 2006)에 대한 코멘트가 포함돼 있어서이다. 나로선 연휴나 지나서야 들춰볼 수 있을 듯한 책이지만 책의 성격을 미루어짐작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더불어, 칼럼 자체도 읽어봄 직하다.

필름2.0(07. 02. 13) 가볍고 싶은 무거운 마음

지난 주말 TV를 보는데 쇼 프로그램에 ‘컨츄리 꼬꼬’가 나왔다. 온갖 버라이어티 쇼를 잠식하고 있는 엔터테이너 탁재훈과 신정환이 아니라 둘이 짝을 이룬 그룹 컨츄리 꼬꼬다. 검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그들이 “헬로우~ 콩가~ 달나라 꿈꾸는 나의 허니~” 하며 그들의 마지막 히트곡 ‘콩가’를 신나게 부르는 순간, 내 몸이 일종의 무중력 상태에 들어간 듯 함께 들썩인다.

나는 그들의 그 가벼움을 사랑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엄숙한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컨츄리 꼬꼬는 새벽잠 깨우는 수탉 마냥 사람들을 부산하게 깨워놓고는 한바탕 놀아보자고 유혹한다. 그런데 그들의 유혹에는, 이른바 ‘그루브’라는 게 있다. 노래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동방신기’처럼 아크로바틱한 몸놀림을 선보이는 것도 아닌데, 대신 그들은 놀고 싶어 안달이 나 옆 사람까지도 꼬드기고 마는 날라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들의 퍼포먼스에서 그 어떤 음악적 성취나 대중문화적 맥락을 따지는 것만큼 무용한 짓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피로감을 가벼움의 미학으로 돌파한다는 측면에서만큼 컨츄리 꼬꼬는, 싸이나 DJ DOC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뮤지션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가끔 이렇게 가벼움을 체현하거나 몸소 실천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읽은 <순결한 할리우드>라는 책의 저자 케빈 스미스는, 가벼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인적 경지를 보여준다. <점원들>이나 <제이 앤 사일런트 밥> 같은 엉뚱하고도 생기 있는 영화를 찍어온 미국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이자 만화작가인 케빈 스미스는, 근엄한 척하는 주류사회에 ‘퍽큐’를 날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인물인 것 같다.

책 속에서 그는 리즈 위더스푼을 거침없이 '왕재수'라 부르며 독설을 퍼붓는가 하면, 인터넷 칼럼에 대한 독자들의 빈정거림을 더 강도 높은 빈정거림으로 응수한다. 과장과 거짓이 난무한 칼럼을 통해 만화광은 프리섹스를 즐기는 변태들이라는 근엄 세계의 편견에 한방 먹인다. 물론 절친한 친구 벤 애플렉을 묘사할 때는 지나치리만큼 개인적 애정에 경도돼 있긴 하지만, 육중한 몸무게의 이 괴짜는 층위를 가리지 않는 온갖 텍스트들의 숲에서 스카이 콩콩을 탄 것처럼 풀썩풀썩 뛰어 다닌다.

19세기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숙명에 대한 경건한 수용만은 아닐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시니컬하게 충고한 대로 삶을 견디는 무기로 ‘지성과 의지’를 발동하고 싶지만 그것도 말만 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가벼움에 몰입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가해한 삶과 모순투성이의 세계를 견디는 가장 유효하고도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직관 때문일 것이다.



설 연휴에 맞춰 개봉하는 두 편의 영화 <1번가의 기적>과 <복면달호>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먼코미디를 표방한 두 영화는 누추한 삶의 조건에 내몰린 사람들, 혹은 꿈과는 거리가 먼 현실의 질퍽함을 보여주고는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 뒤 그 현실에 낙관의 베일을 덮어씌우며 막을 내린다. <1번가의 기적>에서 필제는 철거 현장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게 하고는 깡패들한테 맞아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한다. <복면달호>의 달호는 트로트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으므로 복면을 벗어 던지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선택을 맡긴다. 우리는 그것이 거짓 낙관이며 거짓 희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두 대중 영화는 현실의 무게를 이 앙다물고 가슴에 새기는 다짐이 아닌, 그냥 가볍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 가벼움의 힘으로 돌파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욕망에 흔쾌히 부응한다.

아직 영화를 못 봤지만 지난 호에 실린 장문일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니 <바람피기 좋은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장 감독은 가볍고 자유롭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제도의 굴레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는 풍경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불륜’이라는 수사로 가둘 수 없는 그 아수라장의 미학이 사뭇 기대되지만, 혹시라도 이데올로기의 폐허 위에서 깊이 팬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본 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들판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허허로운 가벼움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살포시 고개를 든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렇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나도 한때 ‘촐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가벼운 녀석이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웃길 수 있을까, 유행하는 온갖 유머를 수첩에 적어놓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 매일 ‘에헴’ 하느라 후배들과의 소통장애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꼰대’가 됐다. 아, 가볍고 싶은 무거운 마음이여.(최광희 편집장 직무대행) 

07. 02. 15.

P.S. 고백컨대, 나는 한번도 '촐랑이'라 불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알라딘의 이 서재 덕분에 간혹 상당히 수다스러운 '아줌마'란 평도 뒤에서 듣는다. 내게는 아마도 이 서재가 '가볍고 싶은 무거운 마음'을 풀어놓는 공간인가 보다(순결한 로쟈?).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편, 편집장 대행 체제가 오래 가는 걸 보면 이지훈 편집장의 건강이 아직 호전되지 않은 모양이다. 직무대행 또한 만만찮은 '말발'을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빈자리는 느껴진다. '필름2.0'을 손에 들면 언제나 가장 먼저 읽었던 게 맨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편집장의 말'이곤 했다는 걸 빌미로 그의 쾌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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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5 22:5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수다'는 수다치고는 너무 어렵죠. 로쟈님의 레이더망은 한계가 어디입니까. 필름 2.0은 한번도 안봤는데. 전 아주 가끄음씩 씨네21만 봐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가 좋아서 봤더랬는데 막상 본문은 별로 안보게 되더라구요.

로쟈 2007-02-16 00:14   좋아요 0 | URL
'수다'도 여러 종류가 있을 뿐이겠지요. 글고, 필름2.0은 저렴해서 자주 사봅니다(신문 2부 값이니). 씨네21을 가끔 보고요. 물론 한주만 기다리면 다 온라인으로 서비스가 되지만...

2007-02-16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80 2007-02-16 10:45   좋아요 0 | URL
'순결한 로쟈?'에서 마시던 녹차가 사레걸렸어요. ^^

로쟈 2007-02-16 12:52   좋아요 0 | URL
**님/ 그 '수다'는 다른 곳에서도 듣는 얘깁니다.^^
소이부답님/ 저는 책임 안 지겠습니다.^^

노부후사 2007-02-16 15:39   좋아요 0 | URL
'로쟈의 순결한 19' 진행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ㅎㅎ

로쟈 2007-02-16 15:57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19+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곧잘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