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구내서점에서 본 신간은 데이비드 베레비의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코리브르, 2007)이다. '우리와 그들'의 구별방식에 대한 인류학적, 심리학적 고찰쯤으로 보였는데,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부피가 좀 있는 책이라는 생각 정도. 한데, 언론에 뜬 리뷰들을 훑어보다가 뭔가 흥미로운 글감이 되겠다 싶어서 구입을 결정했다. 키워드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부족적 감각'이다('민족주의'라는 말보다는 근본적이지 않은가?). '부족의식' 혹은 '끼리끼리의식'. 국역본의 제목엔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원서는 부제는 '당신의 부족 심리를 이해하기(Understang your  tribal mind)'라고 돼 있다. 원서의 서평을 잠깐 읽어보니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나 베레비의 책은 다양하고도 풍부한 사례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아마존을 검색해봐도 이 책은 그의 처녀작처럼 보이는데,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를 갖게 한다.

뉴스메이커(07. 02. 13)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무리를 짓고 집단 혹은 부류에 속하며 산다. 혼자 동떨어져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리는 결코 어느 하나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종, 종교, 민족, 계급에 따라 한 인간이 여러 개의 부류에 속한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 ‘무리’는 나이, 직위, 정치이념에 따라 더욱 세분화된다. 가정을 갖고 있는 40대 남성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지역사회에서, 직장에서, 학부모 모임에서, 동호회에서, 정치이념에서 여러 무리에 속할 수 있다. 우리도 각자 서는 위치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무리에 속할 수 있다. 무리 속에서 개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아주 쉽게 쓰며 ‘우리’와 다른 사람들은 ‘그들’ 또는 ‘적’이 된다.

이러한 무리·부류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본질적으로 뜻이 맞기 때문에 자연스레 형성된다.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다. 하지만 코드보다 더 중요한 것요소가 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의 저자 데이비드 베레비는 사람들이 한 무리·부류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가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무리·부류는 나의 위치에 따라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거나 본의 아니게 무리에서 이탈해버릴 수도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새로운 무리·부류에 합류할 수도 있다. 

 

베레비는 이 책에서 인류학부터 신경과학까지 여러 분야를 접목해가며 인간의 ‘부족적 감각’을 설명한다. 어디든 부류에 속하고자 하는 ‘부족적 감각’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부족적 감각’은 당연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디든 속하고 싶어하는 ‘부족적 감각’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부족적 감각’의 가장 큰 폐해는 뻔히 잘못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부류에 섞여 자기의 뜻을 접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정치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따금 자기가 동의하지도 않는 무리에 속해 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무리짓기는 인간의 주관에 좌우되는 것보다는 놓인 상황에 따른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수긍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또한 ‘한 부류는 외부에서 말하고 평가하는 것처럼 되어간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근면하다’ ‘B형 남자는 이러이러하다’는 등 외부의 평가에 따라 원래 그렇지 않은 부류도 점점 그렇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무리의 생각이 옳다고 느끼고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여전히 그때 옳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때 달리 할걸’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제일 경계해야 할 일로 드는 것은 동지와 적으로 분류하는 ‘무리짓기’이다. 오늘날 ‘코드’는 영원히 맞을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드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무리는 언제든지 해체되고 새롭게 조직될 수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상황만 봐도 이는 명백해진다. 불과 몇 년 전 창당 당시의 뜨거웠던 정신은 식은 지 오래고 무리별로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 아닌가. 끼리끼리 무리를 형성하고 다른 무리를 적으로 분류하는 행동은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적은 바로 우리’라는 점, 이것이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이다.(임형도 기자)

07. 02. 10.


 

 

 

P.S. <우리와 그들>의 내용을 좀 읽어봐야겠지만, 내가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얼른 떠올린 것은 '부족적 감각'이 문명의 수준으로 확대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김영사, 1997)과 타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룬 리처드 커니의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 2004),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동문선, 2004), 그리고 그 기원에 있어서 주체의 불완전성이란 객체의 불완전성의 반영/반복이라는 걸 보여주는 <라캉과 정치>(은행나무, 2006)까지이다. 각각 정치학, 철학, 정신분석학으로 대별될 수 있겠다. 거기에 <우리와 그들>의 심리학/인류학을 보태 읽고자 하는 것. '계획'은 언제나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계획마저 없다면 나의 책읽기는 한 뼘 이상 더 게을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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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0 21:52   좋아요 0 | URL
"문명의 충돌"을 그렇게 엮어 읽는 것 꽤나 신선하네요..^^
근데 문명의 충돌은 '정치학'이라기 보다는 헌팅턴 스스로 부족적 감각을 문명의 수준으로 체현한 것에 가깝지 않을지... ㅎㅎ
곧 새학기 시작인데 계획한 바 최대한 이루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7-02-10 22:03   좋아요 0 | URL
제 짐작도 그런 것인데, 자세한 건 들춰봐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곧 새학기'라서 거의 '플랜 임파서블'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sommer 2007-02-11 00:31   좋아요 0 | URL
'무리짓기'를 근본적 적대의 '강팍한' 차원으로 이해하려는 무리들과 문화 인류학적 혹은 하위 문화의 '유연함'으로 파악하려는 무리들로 대립구도를 만들어 볼 수 있겠네요. 여기에 칼 슈미트의 '적과 친구'의 관계는 두 곳 모두로 통하는 입구가 될 수 있겠네요.

로쟈 2007-02-11 00:35   좋아요 0 | URL
suture님도 이 참에 흥미로운 플랜을 한번 세워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