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작가들의 책과 그에 관한 논문들을 읽다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한겨레출판)을 찾으니 또 눈에 띄지 않는다. 행방을 찾아 여러 곳을 탐문했으나 결국 ‘개똥‘으로 잠정 분류하게 생겼다. 책을 본 게 한달쯤 전인 것 같지만 사실 한달 전이면 내게는 백년 전과 같다. 과장을 덜면 반년쯤 전에 본 것이나 다름없다. 이 곳의 지형지세가 그 모양이다. 책들이 숨어 있기에 딱 좋은.
허탕을 치고 퇴각하다가 월트 휘트먼 시선 <오 캡틴! 마이 캡틴!>(아티초크)을 쌓여 있는 책들 가운데서 빼왔다. 20세기 미국시에 대해서 과문한 편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시인은 휘트먼이다. <풀잎> 같은 필생의 시집이자 기념비적인 작품 때문인데 물론 압권에 해당하는 것은 ‘나 자신의 노래‘다. 휘트먼의 <풀잎>은 소로의 <월든>, 그리고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19세기 중반 미국문학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미국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기다. 이들은 모두 초절주의의 주창자 랄프 에머슨의 직간접적인 자장안에 있다. 미국문학 바깥에서는 니체가 그러하다).
‘나 자신의 노래‘를 읽자면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게 되는데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 짓게 되는 미소와 견줄 만하다. 안 그래도 침대에는 최근에 나온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창비)와 시 해설집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민음사)가 놓여 있다. 김수영에 대해서는 각각 시선집을 낸 바 있는 두 출판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시 해설집은 총 116편에 짧은 해설을 붙이고 있는데 대표시들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하지만 역시 분량이 너무 짧다. 다른 선택지는 더 적은 시에 대해서 더 자세한 분석과 해석을 붙이는 것이리라. 그런 해설집도 나옴직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더 유익한 읽을거리는 헌 정 산문집이다. 백낙청, 염무웅 선생의 특별대담을 필두로 하여 19명의 문인들(주로 평론가와 시인들)이 김수영과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직접적인 인연에서 책으로 만난 인연까지. 화보 사진에는 김수영이 외국잡지와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보여주는 사진도 수록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도 숙독했지만 나는 휘트먼의 시도 열심히 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정신의 상통함을 느낄 수 있어서다.
여하튼 김수영의 책들 위에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올러놓으니 흡족한 마음이 생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진 시이지만(휘트먼의 시는 링컨의 암살을 애도하는 시다) 오늘밤에는 죽어도 살아있는 시인들에 대한 예찬으로 들린다...
여기까지 적으니 또 딱국질이 시작되었다. 오전부터였으니 오늘은 최장시간 딱국질을 한 날로 개인 기네스북에 올려야겠다. 이 무슨 패러디란 말인가. 오 딸꾹! 마이 딸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