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구내서점에 갔다가 뜻밖에 손에 든 책은 '주어캄프의 세계인물총서 01'로 나온 <발터 벤야민>(인물과사상사, 2007)이다. 저자는 '몸메 브로더젠'. 물론 이름도 생소한 저자의 지명도 때문에 책은 집어든 건 아니고 순전히 '주어캄프'라는 지명도(프랑스로 치면 '갈리마르'쯤 되나?)에다 문고본 판형에 끌린 것이다.

 

벤야민의 전기가 처음 소개되는 것도 아니고 또 대략적인 전기라면 생소하지도 않은 형편이어서 책에 대해서 특별한 기대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요즘 우리도 이만한 포켓북 형태의 책들이 많이 기획되고 있는 듯해서 어떻게 씌어지고 편집되는가를 살펴볼 필요성은 있겠다. 체게바라가 2권으로 같이 출간됐지만 일단은 내가 더 잘 아는 벤야민을 읽어볼 계획이다. 그런 생각으로 '벤야민'을 검색했다가 예기치 않게 읽은 기사는 작년말에 게재된 이재현의 가상인터뷰 최종회이다. 2004년 겨울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비평가/작가 수전 손택을 다루고 있는데, 우연찮게도 어제오늘 '문제'로 불거진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코멘트가 포함돼 있다. 적절한 '타이밍'이다 싶어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12. 26) [가상 인터뷰] <42·끝> 수전 손택

미국의 에세이스트, 소설가, 액티비스트, 문화비평가. 에세이집으로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 <사진에 관하여>(1977) 등이 있고, 소설로는 <미국에서>(1999) 등이 있다. 친아버지는 중국에서 모피상을 했었는데 손택이 다섯 살 때 죽었다. 손택의 원래 성은 로젠블라트(Rosenblatt)였고, 손택이란 이름은 법적으로 자신을 입양하지는 않은 의붓아버지의 성을 딴 것이다. 대학 생활의 출발은 버클리대학이었고,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가서 문학비평가 케네스 버크와 보수주의 정치학자 레오 쉬트라우스 등에게서 배우며 석사를 마친 뒤, 하바드대학, 옥스퍼드대학, 소르본느대학 등에서 문학과 철학 등을 공부했다.

17살 때, 열 살 연상의 대학 선생과 만난 지 열 며칠 만에 결혼을 해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며, 8년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편과 이혼하고 그 때부터 아들을 홀로 키웠다. 1963년부터 서평 등을 쓰기 시작한 손택이 최초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게이 감수성에 관한 에세이인 <캠프(camp)에 관하여>(1964)였다. 나중에 이 글은 정치적 관점을 강조하는 동성애 진영, 즉 ‘퀴어(queer) 정치학’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지만, 당시에는 대중문화와 관련해서 대안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선구적이고 충격적인 글이었다.



손택은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과 이오네스크, 아르토, 브레송, 고다르 등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1960년대의 뉴욕 지식인 사회 및 문화예술계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국에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1967년 <파르티잔 리뷰>에 쓴 글에서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고 나중에 가서 자신의 발언이 암 환자들의 고통을 무시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사과를 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베트남전 반대 행동을 위해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했고 1993년에는 내전 중에 포위된 사라예보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바 있다. 2001년 9ㆍ11 사태가 터진 직후 발표한 글에서 손택은 당시 미국 주류의 정치적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그렇지만, 미국은 강하다” “모든 게 잘 되어 가고 있다”고 허풍을 떨던 부시를 ‘로봇과 같은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며 대놓고 반박함으로써 또 다시 충격을 준 바 있다.



손택의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는데 이 백혈병은 30대 중반에 생긴 유방암과 60대에 생긴 자궁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2003)는 바로 자신의 병 체험에 바탕을 두고 저술된 것들이다. 죽기 몇 년 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손택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는데, 평생 “실제로 아홉 번, 다섯 명의 여자와 네 명의 남자”와 사랑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손택의 좌우명은 “늙은이처럼 행동하지 마라, 바로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 “우정이란 다른 사람들 안에서 기뻐하기 위한 욕망이다”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을 당신 안에 가두지 마라” “변화는 나의 장기이다” 등이다.



이재현(이하 현) 선생님, 무덤 안은 어떠세요? 죽으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나요?

수전 손택(이하 수전) 그냥, 수전이라고 불러, 동업자끼린데 뭘. 죽어서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야.

선생님은 평소에 “난 시골에서 살지 못한다, 도시가 좋다”고 말씀하신 전형적인 뉴요커인데다 워낙 명망가이셨으니까 다른 뉴요커들이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선생님의 사생활을 가십 거리로 삼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궁금한 건데요, 성을 왜 스스로 바꾸셨지요?

수전 ‘장미꽃잎(Rosenblatt)’이란 말이 간지러워서 그랬어. 손택이란 이름이 더 단순한 게 맘에 들었지. 내 의붓아버지는 장교 출신의 참전 영웅이었지만 사춘기의 내가 보기에 지적으로는 정말 바보 같았거든.

독일어의 일요일(Sonntag)은 n이 두 개인데요. 손택이란 이름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수전 그런 데 관심 없어. 이번 기회에 분명히 말하건대, 한국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둘 다 붙여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건 머저리같은 짓이야. 정확히 따지자면, 어머니 성이 아니라 외할아버지 성이잖아.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의식이 없어서 뭐가 되겠니? 차라리 성,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없애자고 해야지.

역시, 선생님은 거침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답니다. 한국의 지적, 문화적 분위기는 미국으로 치자면, 소설가 잭 케루액이라든가 시인 윌리엄 버로우즈 등과 같은 비트 제너레이션이 활약하던 때인 1950년대 수준도 될까말까지요. 아직, 정치적, 문화적 검열에 관한 문제라든가 드럭(drugㆍ마약) 문제에 관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인식이 아직 형편없어요. 다들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지요.

수전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야. 다만 나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류 사회가 속으로 ‘저 년은 원래 저런 년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봐준 정도일 뿐이지. 또 내가 뉴욕 토박이가 아니었더라면, 9ㆍ11 이후 미국의 파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대외 군사정책에 대한 나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실제 내가 당했던 것보다도 아주 더 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을 거야.

선생님에 대한 평가 중에 일찍부터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전 나는 그게 일종의 욕이라고 생각해. ‘아마도’란 말도 그렇고 ‘여성’이란 말도 그렇고 말이야. 그 말에는 여성이란 본디 지적이지 못하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고, ‘아마도’란 여성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잖아?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사회적,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 쭈욱 계속해서 나름대로 직접 행동을 취해 오셨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에는 일본어 한자말에서 빌어온 ‘활동가’란 말이 쓰이곤 했습니다. 지금 그 활동가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먹고살면서 애 키우느라 바쁘고, 일부는 국회의원이 되고, 또 일부는 아직도 사회운동 및 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액티비스트’로서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엑스(ex)-활동가들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수전 야, 그런 걸 왜 내게 묻냐? 너희 일은 너희가 가장 잘 아는 거지. 세상이 바뀌면 바뀌는 만큼 변화를 해나가되, 최초의 그 곧고 아름다운 마음가짐과 ‘합리적 핵심’에 해당하는 관점을 지켜나가면 되는 거잖아.

물론이지요. 하지만, 자기 일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또 한 해가 저무는데 세상이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런 거지요.

수전 그렇다면 한 수 가르쳐 주지. 가령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해결에 나서는거야.

앗. 선생님, 어떻게 그 문제를 알고 계신가요?

수전 바로 위에서 네가 날 소개하면서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사장이 사전에 편집국 구성원들과 아무런 얘기나 논의 없이 기자가 쓴 글을 윤전기에서 인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빼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잡지를 만들어 온 기자들이 참 대견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네. 문제는 다른 일간지들이 이 중대한 사태에 관해 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지 않아서 국민 대다수가 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이번에야 보도가 되었다. 그리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일종의 굳건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게지요. 사태는 정말 심각합니다. 소위 ‘편집권 독립’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경영주가 제멋대로 기자의 글을 삭제하는 것은 일제 시대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수전 말로 안 되는 경우에 쓰라고 화염병이 있는 거야.

켁. 선생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수전 그러니까, 내 말은 연말에 망년회 대신 ‘몰로토프 칵테일’파티를 하라는 얘기야. 너희 한국에 활동가가 그렇게 많았다면서.



네에~(푸훗). 아무튼 선생님, 한국과 한국의 언론 상황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창피한 일입니다만, 사람들 만날 때마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대충 50년쯤 뒤에 선생님 계시는 나라로 저도 살러 가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그때까지….(문화비평가 이재현)

07.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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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08 21:13   좋아요 0 | URL
수잔 손택이 레오스트라우스의 제자라니... 좀 의외네요 ^^

로쟈 2007-02-08 22:59   좋아요 0 | URL
같은 과 교수들이라도 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한 것 아닐까요? 손택은 학생이었을 따름이고. 혹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서 한 멘트가 있는지는 찾아봐야겠네요...

sommer 2007-02-09 00:14   좋아요 0 | URL
스트라우스와의 재해석이 곧 손택일 수도 있겠네요. 마치 슈미트와 여러 급진적 사상가들의 연결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