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강의 부담이 줄어서 지난 주말에 손에 든 책은 그레그 스타인메츠의 <자본가의 탄생>(부키)이다. 원제는 ‘야코프 푸거의 삶과 그의 시대‘. 제목이 ‘자본가의 탄생‘으로 바뀐 데서 알 수 있지만 푸거는 자본가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인물임에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영어권에도 사정은 비슷해서 2015년에 나온 이 책이 가장 좋은 소개서라고 한다. 16세기 야코프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푸거 가의 근거지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다. 푸거는 어떤 시대를 살았던가.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통의 강자인 프랑스를 밀어내고 스페인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가톨릭교회는 대금업 금지를 철폐했으며,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복식 부기가 확산되고 무역로가 바뀌면서 한자동맹이 붕괴하고 경제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서유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와 영주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야코프 푸거가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야코프 푸거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책의 부제는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말 그대로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잘 재현하고 있는 책이다. 덕분에 비슷한 주제의 책들도 책장에서 빼왔는데,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의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원더박스)와 제이컵 솔의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메멘토) 등이다. 자본주의 형성과 발달에 관한 책은 적지 않지만 ‘상인‘과 ‘회계‘로 주제를 한정해서 읽어보려 한다.

내년봄 이탈리아 문학기행을 앞두고 베니스에 관한 책들도 여러 권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야코프 푸거 당대에 베니스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상업도시였고 야코프가 상인으로서 도제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제와 교황까지도 채무자로 만들며 거래를 한 ‘재계의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면서 북부 독일의 한자동맹과 남유럽 베니스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자본을 배경으로 유럽의 패자로 등극하게 된다. <자본가의 탄생>은 근대 유럽의 탄생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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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씨(BookC) 2019-01-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이 ˝권력은 이제 자본에게 넘어갔다˝고 말하기 600년 전에 이미 넘어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