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칼? 왠지 들어본 듯도 한 이름이지만, 프랑스의 이 '저명한' 사진작가의 이름을 어디서 접했는지는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난주에 그녀의 책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는 서평기사를 읽고 서점에서 두 권의 실물을 확인했을 따름. <뉴욕이야기>는 폴 오스터와의 공저인데, 소개를 읽어 보니 사연이 없지 않다. 오스터는 "자신의 소설 <거대한 괴물>에서 프랑스의 사진작가 소피 칼의 삶과 작품을 모델로 한 '마리아 터너'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 속 허구의 인물로 등장한 것에 매력을 느낀 소피 칼은 자신의 방식대로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폴 오스터의 소설과 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이 작업은 총 7권으로 이루어진 <이중 게임>이라는 전집으로 소개되었는데, <뉴욕 이야기>는 그중에서 마지막 7권에 해당한다"고 한다. 과문한 건 내가 오스터를 별로 읽지 않은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일단은 어떤 책인가 확인해두도록 한다.

문화일보(07. 02. 02) 타인 시선 통해 나를 까발리다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진실일까.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소피 칼의 ‘진실된 이야기’를 읽으면 책 제목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번뜩 스친다. TV 인기 프로그램명이긴 하지만,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타이틀이 적당해 보인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진실된 이야기’는 소피 칼의 자전적 사진과 글로 구성돼 있다. 그녀는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한장 한장에 담겨 있는 사연들을 옆 페이지에 적어 놓았다. 아홉 살 때부터 마흔아홉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추억들을 적나라하게 펼쳐보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비롯해 가족과 친구, 결혼생활과 이혼에 얽힌 ‘진실된’ 이야기는 너무나 내밀한 것들이어서 오히려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목욕 가운’이라는 제목 아래 적혀 있는 글(왼쪽 페이지엔 하얀 목욕 가운이 벽에 걸려 있다)을 보자.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가 내 방 문을 열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의 것과 같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흰색 타월로 된 긴 가운이었다. 그는 나의 첫 연인이 되었다. 내 앞에서 성기를 보이지 말라는 부탁을 그는 일 년 내내 들어주었다. 등은 괜찮았다.…나를 떠나면서, 그는 내게 그 가운을 남겨 놓았다.’

‘면도칼날’에선 자신의 누드 데생을 보여주면서 ‘나는 매일 오전 9시에서 정오 사이에 나체로 서 있었다. 그리고 매일 한 남자가 맨 앞줄 왼쪽 끝자리에 앉아 세 시간 동안 나를 데생했다. 그러다가 정확하게 정오가 되면 그는 호주머니에서 면도칼날 하나를 꺼내어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세심하게 찢었다.… 이러한 광경은 열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열세 번째 날 나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전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자신의 내면 한 구석을 날카롭게 드러내 보인다.

그녀는 왜 이처럼 자신을 까발릴까. 그녀가 사진과 글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문학평론가 심은진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소피 칼에게는 자신의 몸, 자신의 삶 전체가 허구를 만들어내는 작품의 대상이 된다.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는 행위, 고의로 연출해내는 그 행위가 바로 자신이 만든 하나의 작품이다.… 자신의 삶과 육체를 타인의 시선에 드러내는 작업은 그녀에게 자기 존재를 주체에서 객체로 만들어, 내 자신이 마치 타인처럼 다가오게 한다.’ 자신을 객체화해 낯설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같은 허구의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소피 칼의 속셈이라는 말이다.
사진과 글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다. 사진이 현장성과 확실성을 담보한다면, 글은 한 컷의 평범한 사진이 들려줄 수 없는 내용을 풀어헤친다. 당초 프랑스에서 책에 담긴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었을 때, 관람객들은 여느 사진 전시회와 달리 한 작품마다 눈길을 돌려가며 오랫동안 쳐다보았다고 한다. 사진 옆에 붙어 있는 글을 읽고, 다시 사진을 보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실된 이야기’에 수록된 사진 작품 중 네 컷의 사진에서 신체 특정 부위가 박스처리돼 있다. 번역자의 부탁을 받은 소피 칼이 한국의 19세 미만 독자를 위해 직접 작업했다고 한다. 아직도 작품에 손대야 하는 한국의 ‘특수 사정’은 언제 ‘일반적 상황’으로 바뀔까.
또다른 책 ‘뉴욕 이야기’는 그야말로 실험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세계적인 작가 폴 오스터가 소피 칼에게 ‘뉴욕에서 아름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적은 시나리오를 보낸다. 그가 권하는 네 가지 방법은 ▲미소 짓기 ▲대화하기 ▲걸인과 노숙자에게 배려하기 ▲한 장소를 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가꾸기 등이다. 소피 칼은 그의 조언대로 일상을 꾸려 나간다. 매일 거리로 나가 낯선 이들에게 미소와 말을 건네고, 샌드위치와 담배를 권한다. 또 길가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하나 선택, 꽃과 각종 물건들로 아름답게 가꾸고 관리한다. 이같은 작업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익명의 도시에서 타인과 자신의 삶을 긴밀히 연결시키는 것, 타인의 존재로 자신을 채워나가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를 책은 증명하고 있다.(김영번기자)

07. 02.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