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데리다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적어내려간 모스크바 통신을 예전에 정리해놓은 줄 알았더니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글의 일부였는데,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만 따로 정리해놓았던 듯하다. 로일의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이 출간된 걸 계기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책은 어제 구했다). 내용을 발췌하면서 일부 문구를 교정하고 이미지들을 첨가해둔다. 잠시 3년전 가을 모스크바로 되돌아가본다.
주말부터 모스크바에는 눈이 올 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눈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오늘도 눈 싸라기가 잠시 흩뿌리다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첫눈을 기다리고 있지만, 또 기다리니까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에 일단 오전까지 쓴 걸 PC방에 갖고 가서 인터넷에 띄우고, 지난 2월에 데리다가 가진 인터뷰 기사 '도래할 정의를 위하여(For A Justice To Come)'를 다운받아 와서 읽었다(http://www.indymedia.be/news/2004/04/83123.php). 그리고는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서 산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쓴다.
어제는 막심에게서 마음먹고 후설/데리다의 <기하학의 기원>을 샀다(나는 이 책의 영역본을 갖고 있다). 1996년에 나온 책이라 고서로 분류되어 250루블(10,000원)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전부터 봐두었던 책이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방치’하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데리다의 책을 한 권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서 어제 사러 간 것. 한데, 서가에 꽂혀 있지도 않았다. “데리다 있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없다면서 옆의 ‘그노지스’ 서점에 가서 문의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창고의 서가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든 것이 <기하학의 기원>이었는데, 보여주기만 하고 너무 비싸다면서 도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해서, 간신히 (비싸도) 괜찮다고 하며 그에게 잔돈으로 받은 250루블을 주고 그 책을 샀다.
막심네 가게를 나와서는 데리다의 또 다른 책 <목소리와 현상>을 살까 해서 ‘이데아’서점에 들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지만) 영역본을 다시 옮긴 이 책에 특별히 ‘해설’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손에서 놓고, 대신에 두툼한 러시아 상징주의 연구서와 함께 부르디외의 <실천적 의미>를 손에 들었다. 책을 둘러보는 틈에 서점 점원과 한 할머니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걸 엿들을 수 있었는데, 화제는 (강의 교재로 쓰이는지) 책상머리 잔뜩 쌓인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데리다의 죽음에 대한 시라크 대통령의 메시지, ‘우리 시대는 해체의 시대’라는 주장에 대한 논평을 거쳐서, “요즘은 너무 많은 책들이 있다”는 불평과 함께, 서로가 아는 어느 학자/교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교수는 ‘대화가 된다’는 게 반가워서인지 아예 ‘장기전’을 벌일 판이었다. 나는 계산을 치르고 자리를 떴지만, 하여간에 서점 점원과 대학교수와의 대화, 그런 게 (웬만큼은 책을 읽어줘야 가능한)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다.
내 생각에 다소간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관료 시스템과 엄청난 빈부격차와 민족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란 나라를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그 문화의 힘으로 보인다(물론 러시아에도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러면서 일탈적인 하위문화가 있으며 최근에 젊은층의 이 ‘하위문화’를 분석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로 수준 높은 중등 문학교육을 들 수 있다. 초/중/고가 분리돼 있는 우리의 학교 편제와는 달리 러시아는 전체가 통합되어 11학년까지 있다(대신에 대학이 5년이다). 그리고 매 학년 문학교육을 받지만,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되는 10-11학년에는 우리의 대학 1-2학년 교양 수준 이상의 문학교육을 받는다.
러시아문학 교과의 경우, 10학년 때는 19세기 문학을, 그리고 11학년 때에는 20세기 문학을 공부하는데 교재가 각각 500쪽쯤 되는 책 2권씩이다(그러니까 2년간 작품은 제외하고 러시아문학 ‘교과서’만 하더라도 2,000쪽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중요 작가와 작품들이 다 망라돼 있고, 매 단원/작가마다 작문과제들이 제시돼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배우는 것이 문학일반론과 세계문학(여기서는 ‘국외문학’이라고 부른다)이다. 대학입시에서 이러한 문학과목에 대한 ‘작문시험’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이다(프랑스의 철학시험에 대응하는 것이 러시아의 문학시험이다).
물론 러시아란 나라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으로서의 공통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위해서 언어와 문학 교육이 유독 강조되는 바가 없지 않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교육의 결과로 ‘책을 읽는 국민’들이 양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시절에 고전을 읽은 경험은 이후의 모든 독서와 사유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자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이 점은 중요하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국민 개개인의 교양 수준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갈라진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나는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이 나라의 문학교육 수준만큼은 부러워한다(물론 사회주의 시절엔 문학교육도 이념적으로 다소 편향돼 있었다)...
데리다가 세상을 떠난 지난 토요일, 가을비만 추적추적 약간 내리던 날에 나는 시내의 서점에 갔다가 <현대문학이론>이란 앤솔로지가 신간으로 나와 있길래 구입했고, 거기서 다시 데리다란 이름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일요일 오후에 빨래 더미를 들고 빨래방으로 내려가면서 그 책을 집어 들고 가서는 데리다의 약력을 훑어보면서 그가 “인문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를 발표한 게 새삼스럽게도 지금의 내 나이 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들른 인터넷카페에서 메일을 확인하다가 데리다의 죽음을 알리는 후배의 메일을 읽게 된 것. 이어서 자주 들르는 카페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차례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나는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된 그의 삶/죽음에 대해서 몇 마디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고, 멍한 상태에서였지만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제목의 글을 구상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글을 쓰는 대신에 모스크바에 들고 온 데리다 관련서들을 들추며 몇 쪽을 읽었다. 내가 이곳에까지 들고 온 건 얇은 책 3권인데, 데리다 자신의 책은 영역본 <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시카고대학출판부, 1995) 한 권이고(이 책을 챙겨 들고 온 건 순전히 그의 죽음에 대비해서였다!), 나머지는 리처드 비워즈워스(R. Beardsworth)의 <데리다와 정치적인 것(Derrida & the Political)>(루틀리지, 1996)과 니콜라스 로일(N. Royle)의 입문서 <자크 데리다>(루틀리지, 2003)이다(이 3권을 연말까지 다 읽는 것도 데리다의 죽음이 내게 남긴 숙제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해명하고 있는 비워즈워스의 책은 이미 필독서의 한 권이지만(그의 책으론 <니체 읽기>(동문선)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나온 로일의 책도 최적의 입문서에 값한다. ‘루틀리지판 비판적 사상가들(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것인데(나는 이 시리즈의 몇 권을 갖고 있는데, 모두 입문서로서 유력하다), 클레어 콜브룩(C. Colebrook)이 쓴 이 시리즈의 <질 들뢰즈>는 이미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알다시피 도서출판 앨피에서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미 <데리다 이후/데리다를 따라서(After Derrida)>(1995)란 저서를 갖고 있는 로일은 얇은 분량 속에서도 데리다에 관해 입문적으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재치 있는 필치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데리다 자신의 평은 이렇다. “(논변이) 아주 우수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점이) 분명하고 독창적이다.”(Excellent, strong, clear and original.) 나는 이 두 권의 책 또한 조만간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그 기대는 이번에 실현됐다).
내가 갖고 있는 철학서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데리다의 책들과 그와 관련한 책들이다(100권이 조금 안된다). 나는 (독해력이 충분하지 못한) 불어본을 제외하고 내가 구할 수 있는 데리다의 모든 책들을 그간에 사들이거나 복사/제본해 왔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 92년인가 93년쯤에 프랑스에 유학을 가 있던 한 선배가 가야트리 스피박이 옮긴 영역본 <그라마톨로지>를 우편으로 보내왔는데, 그것이 내가 접한 최초의 데리다 ‘원서’였다(“봉주르, 데리다!”). 물론 <문학이론입문> 등의 책을 통해서 데리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었던 나로선 당장에 그 책을 읽어 내려갈 능력이 없었다(내가 그 당시에 지금의 독해력을 갖고 있었다면 진로를 바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가 아닌 파리로!).
비로소 그의 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몇 년 뒤 철학과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데리다 세미나를 청강하면서부터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열심히’ 읽지는 않았지만, 그걸 계기로 해서 데리다 읽기의 가닥은 잡을 수 있었고, 한때는 <기하학의 기원>(1962)부터 차례대로 데리다의 모든 책을 읽어보자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었다. 내가 세운 대부분의 계획들처럼 그 또한 중도에 틀어지긴 했지만(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책읽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데리다의 모든 책을 긁어 모으는 일만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데리다인가? 그건 데리다를 직접 읽어보면/읽어봐야 알 수 있다(당신은 왜 그/녀를 사랑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데리다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범례적 사례들이다. 해서, 데리다를 읽는 일은 그의 ‘읽어내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다. 데리다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텍스트를 가장 치밀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읽어내는 사람이다. 이젠 구호처럼 돼 버린 ‘해체(deconstruction)’란 그러한 정밀한 읽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정밀한 읽기가 ‘해체’로 귀결되는가? 그것은 그의 읽기가 텍스트의 의미가 구성되고 축조되는 중심, 혹은 이항대립적인 위계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수사적인가(혹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냄으로써 의미의 아포리아, 의미의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을 전면화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읽은 그의 인터뷰('도래할 정의를 위하여')의 한 대목: “[I]n this aggression against Iraq, American responsibility was naturally decisive but it didn’t come about without complex complicities from many other quarters. We are dealing with a knot of nearly inextricable co-responsibilities. I would hope that this would be clearly taken into account and that it wouldn’t be the accusation of one man only. Even if he is an ideologue, someone who has given the hegemony project a particularly readable form, he has not done it on his own, he cannot have imposed it on non-consenting people. So the contours of the accused, of the suspect or the suspects, are very hard to determine.”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서, 미국의 책임은 당연히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란 건 다른 많은 진영들과 복잡하게 연루돼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는 ‘공동-책임’이라는 매듭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나는 이 점이 분명히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어떤 특정인만을 기소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설사 그가 핵심 이데올로그인 데다가 그 헤게모니 전략에 특정한 형태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일을 자기 혼자서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해서, 누구를 기소할 것인가, 누가 혐의자인가, 혹은 혐의자들인가를 구획짓는 건 매우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이하의 번역은 모두 내가 이해한 바를 좀더 쉽게 옮긴 것이다.)
이런 인터뷰 대목에서도 데리다의 전형적인 논변이 반복되고 있다. “-이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복잡하며 결정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그래서 지젝이 아주 답답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그런 지젝보다도 더 명쾌하다. 데리다-지젝-고진은 그렇게 계열체를 형성한다).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어떤 긴급한 결정/결단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결단은 이루어져야 하고 단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그러한 결정/결단이 불가피하게 간과하게 될 사태의 복잡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서는 불가피한 폭력의 폭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보다 나은 결정/결단을 모색하는 지혜가 된다.
로일이 책의 서두에서 들고 있는 예이지만, 가령 ‘데리다’를 “1930년에 태어난 (그리고 이제 2004년에 사망한) 알제리출신의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이자 한 남성의 이름”(‘Derrida’ is the name of a man, a Jewish Algerian-French philosopher, born in 1930)이라고 규정할 때, 자명한 것, 자명하게 결정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남성’이란 무엇인가? ‘유태인’이란 무엇인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란 무엇인가? ‘1930년에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것 하나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규정이란 언제나 어떤 배제를 함축하기 마련이며, 그런 배제는 또한 폭력(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가령, 그는 ‘철학자’인가, 혹은 ‘작가’인가?(그는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였다고 한다.) 한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전적으로 한 명의 ‘작가’라거나 한 명의 ‘철학자’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나는 작가도 아니며 철학자도 아닙니다.” 그가 작가인가 철학자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는 관행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철학자라고 불릴 따름이며(한편에선 ‘철학자’ 데리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하지만), 그러한 직함으로 소통될 따름이다(즉 그러한 관행/제도는 임의적인 것이다. 최근에 일부일처제에 대해서 그가 제기했던 비판은 그러한 ‘임의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서, 그것은 ‘논리적인’ 결정이 아니며, 다만 편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일 따름이다.
다시 인터뷰에서 예를 들자면, 그는 ‘주권(sovereignty)’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 “Personally, when I have to take a position on this vast issue of sovereignty, of what I call its necessary deconstruction, I am very cautious. I believe it is necessary, by way of a philosophical, historical analysis, to deconstruct the political theology of sovereignty. It’s an enormous philosophical task, requiring the re-reading of everything, from Kant to Bodin, from Hobbes to Schmitt. But at the same time you shouldn’t think that you must fight for the dissolution pure and simple of all sovereignty: that is neither realistic nor desirable. There are effects of sovereignty which in my view are still politically useful in the fight against certain forces or international concentrations of forces that sneer at sovereignty.”
우리말로 옮기면: “개인적으로, 내가 주권이라는 방대한 주제, 내가 주권의 필수적인 해체라고 부르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때, 나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철학적,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주권에 대한 철학적 신학을 해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칸트에서 보댕까지, 홉스에서 슈미트까지, 모든 걸 다시 읽어야 하는 아주 방대한 규모의 철학적 작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모든 주권을,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게도 소멸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주권을 비웃는 어떤 세력들 혹은 그러한 세력의 국제적 조직들에 대항해 싸울 때 여전히 정치적으로 유용한 주권의 효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데리다가 요구하는 것은 주권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유용한 효과들을 전략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주권이란 건 국민-국가의 주권을 말한다.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한 국가의 주권은 차츰 보다 확장된 공동체의 주권에 양도될 것이다. 그것은 방향성이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아직도 다국적 자본 등의 반주권적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권의 실제적 효과가 요구되는 지점들이 있다. 러시아 정부의 (석유재벌) 유코스에 대한 ‘탄압’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억압적’ 주권은 한편으론 돈이 말하는(Money talks!)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Shut up!) 웅변하는 효과를 갖는다. 데리다가 취하는 건 언제나 결정불가능한 더블-스탠스이다. 그가 보기엔 그러한 자세가 현실적이며 바람직하다(realistic and desirable).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문제삼는 것은 (내 식으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의 환상, 커뮤니케이션의 형이상학(혹은 신학)이다(기호학에 대한 데리다의 핵심적인 비판은 기호학이 형이상학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제나 결정가능한, 계산가능한 것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백에 다름 아니다. 그에 대응하여 데리다가 끌어오고자 하는 것은 모든 종류의 결정불가능성, 계산불가능성으로서의 아포리아이다. 시간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미래가 아닌) ‘도래’(그리고 ‘죽음’)이며, 윤리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타인이 아닌) ‘타자’이다.
바로 이러한 ‘도래’와 ‘타자’, 그리고 ‘죽음’이 해체 이후에, 해체와 함께 오는 것이다(그는 ‘해체의 철학자’이면서 ‘도래의 철학자’이다). 해서, 해체는 테러리즘이나 가치론적 상대주의(혹은 무정부주의)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근원적인 아포리아, 혹은 근원적인 미스터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포리아/미스터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존 카푸토의 데리다 연구서 제목은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이다. 데리다의 종교론은 그에게 영감을 얻고 있는 카푸토(J. D. Caputo)의 <종교에 대하여>(동문선)에 잘 정리돼 있다. 믿을 수 없는 역자의 번역이라 보증할 수는 없지만). 데리다의 윤리-정치학은 거기에 근거한다.
흔히 그의 종교론은 ‘종교 없는 종교’,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으로 요약되는데,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을 보자: “I call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is a call, a promise of an independent future for what is to come, and which comes like every messiah in the shape of peace and justice, a promise independent of religion, that is to say universal.” 우리말로 옮기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건 도래할 어떤 것으로서의 자유로운(=계산불가능한) 미래, 마치 모든 메시아가 그러했듯이 평화와 정의의 형태로 세상에 도래할 어떤 것에 대한 요청이며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약속입니다.”
조금 더 읽어보자: “My intent here is not anti-religious, it is not a matter of waging war on the religious messianisms properly speaking, that is to say Judaic, Christian, Islamic. But it is a matter of marking a place where these messianisms are exceeded by messianicity, that is to say by that waiting without waiting, without horizon for the event to come, the democracy to come with all its contradictions.” “여기서 나의 의도는 반-종교적인 게 아닙니다. 즉, 종교적 메시아주의라고 합당하게 말할 만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해서 싸움을 걸자는 게 아닙니다. 대신에, 메시아성이 ‘기다림 없는 기다림’, 도래할 사건에 대한, 그 자체의 모든 모순들과 함께 도래할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기대지평도 갖고 있지 않은 기다림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아주의들을 초과하는 지점을 표시(언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that is: independence in respect of religion in general. A faith without religion in some sort.”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란, 종교 일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가리킵니다. 종교 없는 신앙 같은 것이죠.”(우리 종교적 인간은 종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데리다는 (배타적) 종교들을 공격하지만, 한편으론 ‘종교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신앙’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은 옹호한다(마치 진지하게 ‘고도를 기다리며’ 같지 않은가? 사실 한 대담에서 데리다는 자신이 베케트론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 ‘견적이 많이 나와서’란 이유를 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고진의 용어를 갖다 쓰자면, 데리다가 공격한 것은 ‘공동체의 종교’이고, 그가 옹호한 것은 보편종교로서의 ‘세계종교’이다. 쓰고 있는 용어들은 서로 달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통한다.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언제나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고유한 것(the proper)이었다(고유성은 언제나 배타적이다). 그가 마르크스와 공유하는 것은 확정적인 소유/재산(property)에 대한 의문(혹은 적대감)이다. 소유/재산은 ‘내 것인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이미 제기한바 ‘도래’와 ‘타자’, ‘죽음’, 그리고 (악명 높은 ‘차연’의 효과로서의) ‘의미’는 모두가 ‘내 것이 아닌 것들’이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 앞에서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것, 자신의 고집과 관성과 편견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Deconstruction, 즉 해체-구축이다.
때문에, 디컨스트럭션은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독법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흔한 오해처럼 데리다가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고 말할 때 그가 모종의 ‘텍스트주의’를 제창한 것은 아니다. ‘바깥이 없는 텍스트’란, 스피노자에게서 ‘세계’가 그러하듯이,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이다.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세계) 바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윤리적, 정치적 결단을 함축한다. 이 결단은 계산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레닌-지젝의 ‘광기’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결단의 사례로 떠올리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즉 ‘리컨스트럭션(Reconstruction)’이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그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파국에 직면하여 좌초하고 말았다. 그것이 1991년의 일이다. 데리다는 그 직전인 1990년, 그러니까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바 있다. 그해 2-3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여행의 결과로 발표한 것이 이다(모스크바 어딘가에 가면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책에서 이 영문 텍스트를 복사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전문인지 발췌본인지 알지 못하며(기억하지 못하며) 불어로 발표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다(*러시아어본이 가장 먼저 출간된 이후에 불어본이 나왔고 이후에 영역 텍스트가 출간됐다). 그것의 러시아어본은 <모스크바의 데리다: 여행의 해체>(1993)인데, 아직 책을 직접 구경하지는 못했다(*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복사본을 갖고 있다. 아래의 책이다).
이제 곧 이 철학자에 대한 ‘전기’도 나오겠지만(*작년에 제이슨 파월이 쓴 최초의 전기가 출간됐다), 나로선 데리다의 모스크바 여행이 90년대에 이루어질 그의 작업의 신호탄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1986년에 넬슨 만델라에 대한 텍스트를 발표한 바 있지만, 그의 관심이 소위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죽음의 선물>은 1990년 12월, ‘선물의 윤리학(The Ethics of Gift)’을 주제로 개최된 학술회의를 계기로 작성되며,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77 인권 헌장>을 공표한 혐의로 체포되어 심문(고문?)을 받던 중 뇌출혈로 사망한(1977. 3. 13) 체코의 철학자 얀 파토치카의 한 에세이를 분석하는 걸로 시작한다(그리고 키에르케고르 읽기로 넘어간다). 이어서 이듬해인 1991년에 발표하는 것이 <다른 곶: 오늘날의 유럽에 대한 성찰>이며(동문선에서 국역본이 나와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 <우정의 정치학>(1994) 등을 연이어 출간한다(그러니 <모스크바의 데리다>를 찾아 읽어야겠다).
이러한 해체론의 정치학과 더불어 말년의 그의 저작목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아듀’에 대한 책들이다(조사(弔辭)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이 묶일 정도이다. 한데, 그의 조사는 누가 읽었는지/읽을 것인지?). 한편으로, 그는 ‘도래’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착실하게 준비해온 셈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건 오히려 우리쪽인 듯하다(내가 이런 식의 글밖에 쓰지 못하는 이유이다). ‘포스트-데리다’, ‘데리다 없는 철학의 시대’를 우리는 당분간 그렇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데리다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의 시대).
데리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누도록 하자. “데리다여, 안녕!” 아듀! A Dieu!(그는 진정 나의 우상이고 신이었다!) 그와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이제 그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덜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데리다 없는 데리다’가 대신 언제까지라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짐작하건대, 행복하게도 나는 그의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데리다의 텍스트들을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텍스트들은 텍스트-무한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텍스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해서, ‘텍스트 바깥은 없다’. 그리고 거기엔 나대로 덧붙이자면, ‘자연사의 바깥은 없다’는 니체적 메시지가 반영돼 있다. 한 대담에서 얘기한 것이지만, 데리다는 내세(來世) 따위를 믿지 않았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숙고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해서, 사르트르의 죽음에 대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쳐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제거 불가능한) ‘거리’를 나는 사랑한다(니체라면 ‘운명애’라고 불렀을 것이다. 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은 그 ‘운명애’이다). 어떠한 종교로도 위안 받을 수 없는 그 차이(差移)를!..
04. 10. 12./ 07. 0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