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책세상)을 잠시 읽다가 몇 군데 검색을 해봤다(내가 왜 러시아어본을 구하지 않았을까란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이 책의 러시아어판은 3년전이나 지금이나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그러다 눈에 띈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과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필립 카우프만의 <프라하의 봄>을 비교해본 것인데(기사란이 '동상이몽'이다), 자세한 비교는 아니지만 동의할 만하다. 해서 드는 생각은 <오래된 정원>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것.

강원일보(07. 01. 19) 오래된 정원 vs 프라하의 봄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했던 시대. 동지들이 하나둘 경찰에 붙들려 가는 것을 괴로워하던 현우(지진희)는 윤희(염정아)의 곁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프란츠(다이엘 데이 루이스)는 자유연애를 통해 역사의 무게를 견뎌낸다. `오래된 정원'과 `프라하의 봄'. 이 두편의 영화는 연인들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슬픈 현대사를 보여준다.



1980년 5월, 현우는 광주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무슨일을 했는지를 윤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현우를 윤희는 말 없이 숨겨준다. 윤희는 첫눈에 봐도 당차고 씩씩한 여자. 현우는 그녀와 함께 보낸 6개월의 시간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곳에 숨어있을 수 만은 없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동지들의 소식에 괴로워하던 현우는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지금 보내면 아주 오랫동안 못 볼 것을 알면서도 윤희는 현우를 보내준다. 그로부터 17년 후, 감옥에서 나온 현우는 윤희가 암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윤희와 함께 지냈던 17년 전의 그 오래된 정원을 찾아간다.

임상수 감독의 현대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오래된 정원'은 감독의 전작과 달리 진중한 어조로, 그러나 역시 감독 특유의 `쿨'한 태도로 80년대를 바라본다. `오래된 정원'은 현우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방식을 택하지만 화자가 현우는 아니다. 민주화에 투신한 그 `청년' 대신 그(그들)를 바라보며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간 여성의 시선을 통해 80년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감옥에 들어가고 난 이후 감옥 바깥의 세상은,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후배들은 어떻게 90년대를 맞이했는가. 이성복의 싯귀처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래된 정원'은 개인의 신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신념을 지켜낸 사람들의 사랑과 고통을 위로하며,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갈 오늘을 긍정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프라하의 봄'은 196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오랜 공산주의 사회였던 체코에 불어닥친 자유의 물결 속에서, 토마스와 테레사(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사비나(레나 올린)가 엮어내는 사랑과 배신, 집착의 서사를 매혹적인 영상으로 그려낸다. 필립 카우프만 감독은 격변의 시기에 인간을 둘러싼 외부의 부조리를 묘사함으로써, 그 안에서 방황하는 토마스의 고뇌를 부각시킨다. 그가 왜 한 여성과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의사직을 박탈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지를 말이다.(허남훈 기자) 

07. 01. 26.

P.S. 나대로의 '오래된 정원 vs 프라하의 봄'은 숙제로 남겨놓는다. 먼저, 영화 <오래된 정원>을 봐야 하고 <프라하의 봄>을 다시 봐야 하며, 소설 <오래된 정원>을 읽어야 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야 한다. 누가 대신 다 보고 읽고 써주면 더욱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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