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눈에 띈 기사 하나를 옮겨둔다.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연재하는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의 첫 꼭지 시인 이성복 편이다. 기자가 적은 연재의 취지는 이렇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철갑영웅이 된 지그프리드나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던 헤라클레스도 마음의 상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입는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이면서, 또 극약이다. 상처에 굴복하느냐, 상처를 딛고 이겨내느냐가 문제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상처를 문학과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다. 상처를 인생의 전기로, 또 삶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룬 문학·예술인들. 그들의 삶과 예술 속의 상처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한다."  

매일신문(07. 01. 19)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① 시인 이성복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시 ‘그날’ 중에서).

시인 이성복은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상처를 얘기하면서 시인 이성복(56)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쓴 절절한 시편의 성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하 ‘뒹구는 돌’)는 벌겋게 곪아 벌어진 상처를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시어로 가득 차 있다. ‘내 구두발에 짓이겨',‘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 생산력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 그의 시집은 현실의 폭력성과 일그러진 가족사를 칼 끝 같은 분노로 헤집으며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이 지독한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평 반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시인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작은 전기히터만 힘겹게 찬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그는 “시는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첫 시집 ‘뒹구는 돌’과 두 번째 ‘남해 금산’은 그 제사상의 헌주고 헌사이다. 그는 초기 시집의 상처 이미지는 “집단적 상처가 내면화된 것”일뿐, 나의 개인적 상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누이와 형에 대한 훼손된 감정은 뭐란 말인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떼를 써 서울로 유학을 갔다. 가난해도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고, 부모님도 사려 깊고 온화했다. 시 속에 보이는 폭력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실제 아버지는 시 속의 인물처럼 증오의 대상이거나, 상처를 준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폭력이 가족사로 구조화된 것”이라며 자신은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공명통일 뿐”이었다고 했다. 가족사로 사회의 폭력성을 은유했던 카프카적인 해석인 셈이다.

그의 시 때문에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 아버지···X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극단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뱉는 욕설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중간에 끊어 줘야 되는데... 아버지한테 굉장히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야 많지. 겨울날 살얼음 낀 웅덩이의 물도, 추운 날 수족관 속 도다리도 상처라면 상처지”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불가피성, 원죄에 대한 상처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잉크 삼아 시 한 줄 쓰는 시인의 결벽증이 엿보이는 해석이다. 우리가 갓 핀 미나리를 보면 저걸 솎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상처, “결국 생명을 해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상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는 “육식과 초식은 오십보백보”라며 “나는 광합성이 제일 좋아”라며 웃었다. 그가 본 상처의 근원은 보들레르가 말하듯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도 있지만, 스스로 미성숙해 일어나는 상처, 자기 상처보다 남에게 저지른 상처를 기억하는 자기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그의 시 세계는 원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뒹구는 돌’)->어머니(‘남해 금산’)->당신(‘그 여름의 끝’)->가족(‘호랑가시나무의 기억’)->사물(‘아, 입이 없는 것들’)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초기의 격동은 가라앉고, 성찰적 그리고 영성적 태도로 사물을 쓰다듬는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선 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마저 연민의 대상이 된다.(‘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그럼에도 근원적 고통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다. 문학적 창작의 고통이다. 문학은 시체공시실의 시체를 덮은 시트를 벗겨 보는 것이다.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러나 벗겨 볼 수밖에 없어. 내 눈알이 휙 돌아가더라도...”라고 했다. 상처는 감각의 깊이지, 상처의 중량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탐낼 수 없던 예수의 상처처럼, 그 상처를 기억하고, 껴안고, 곱씹는 것이 오히려 상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받는다. ‘뒹구는 돌’에서 그는 “상처는 ‘살아 있음’의 동의어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후기를 적었다.

논어 등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시인이 최근 종교적인 성찰에 기대는 것도 상처를 껴안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과정은 아닐까. 아직 미발표된 시를 기자에게 음송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퍽 편안해 보였다. 손바닥만 하던 히터의 열기가 그제야 온 방을 가득 채웠다.(김중기 기자)        

07. 01. 22.

P.S.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던 듯하다. 한 독서대학에서 강의도 한 적이 있다(한데, 강의자료를 읽을 만한 글로 만든다는 계획은 몇 년째 창고에서 자고 있다). 개인적인 안면은 없지만, 언젠가 문학강연을 들은 적은 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읽어둔 탓에 기사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체공시실'에 대한 비유는 다행히 처음 본다. 시가 씌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을 토로하던 시인에겐 '잔혹한' 주문이 되겠지만, 그의 새 시집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상처와 물집 이후의 '시적 존재론'은 어디까지 이르게 되는지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참고로 시인의 '어머니론'을 덧붙여둔다. '어머니'는 이성복 시의 비밀 중 하나이다.  

주간동아(05. 02. 08) "한평생 자기희생의 삶 나에겐 언제나 완벽한 분”

시인 이성복 교수(계명대 문예창작과)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집 전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치밀한 계획 하에 잘 계산되고 제어된 풍경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해 여름의 끝’ 등 지금도 꾸준하게 읽히는 그의 시집들은 장인이 빚은 작품처럼 완결성을 갖췄다. 이성복은 스스로를 ‘1등을 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완벽한 글이 아니라면 내 이름표를 달아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선두에 서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제가 그래요. 근데 다행인 건 밖으로 드러내며 딴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음성치질처럼 안으로 끙끙대는 편이란 거죠.(웃음) 이건 제게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벽이기도 했어요. 이런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학교는 문턱조차 넘어본 적 없는 어머니는 열여덟 살 나이에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시집왔다. 그러나 2남3녀를 낳아 기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교수가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병을 앓아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으나 어머니는 꿋꿋하게 외풍을 막아내며 자식들을 챙겼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다섯 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에 서울 유학을 가겠다며 울며 보채는 이 교수를 말없이 지원해준 이도 어머니였다.

“5학년 때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했어요. 서울 아이들의 새하얀 교복 칼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에서 삯바느질하며 고생하는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장원 못 하면 고향에 못 내려간다’는 ‘앵벌이’식 산문을 써서 억지로 장원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표정 변화 없이 ‘잘했다’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올해 여든아홉이 된 그의 어머니는 거동은 불편해도 기억력은 이 교수보다 정확할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하다. 어머니는 대학에 간 손녀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연애 안 해보면 시집도 못 간다”는 말로 손녀딸을 꾹꾹 찔러 결국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한 여든일곱의 아버지를 홀로 수발하는 어머니 소원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 떠나지 않는 것. 이 교수는 “아버지는 어머니 기억 위에 사시는 분”이라 말한다.

이 교수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30대의 젊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언젠가 닥칠 어머니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젊은 아들은 그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쉰을 넘긴 아들은 어머니를 생로병사의 인생 과정에 선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루고 머물다 파괴되고 텅 비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 앞에 어머니가 있고 그 뒤를 아들이 걷는다. 그래서 더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다.

“지금도 제사 때마다 조상에게 ‘우리 아들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제게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희생으로 아들을 위하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원경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어머니도 풍화해가고 있음을 사진 찍듯 시를 통해 이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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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대해서 첫 리필을 다는 것이 너무 기쁜 수유네요. 그 마음을 아시지요?
베레모를 쓴 시인이 늙어보여서 아쉽습니다. 리플 달고 읽겠습니다.^^
매일신문도 사서 읽어야 되는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하신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아를 오늘에사 사들고 들왔습니다.

수유 2007-01-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요것도 제가 옮겨가겠습니다.

로쟈 2007-01-2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알지요.^^ 일리어드, 오딧세이아는 저도 아직 구입하지 못한 책들입니다(--;). 한데, 역자께서 계속 업그레드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좀 미뤄도 손해는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기인 2007-01-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만 페이퍼에 올려놓으셨네요. ㅎ

로쟈 2007-01-2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히는 기사에서 언급된 시집들만 올려놓았습니다...

나비80 2007-01-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에 대한 온갖 편견도 이성복이라는 지점에 이르면 누그러지는 부분이 있듯이 그만큼 큰 시인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간혹 시인을 볼 때면 나와 같은 인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전지현과 김태희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인 것 아시죠?^^) 이성복의 힘은 기댈 수 있는 넉넉함의 깊이가 다르달까요. 내려다 보는 게 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보고 깊게 파고드는 그의 시를 신뢰합니다.

로쟈 2007-01-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이성복의 시는 세상과의 불화, 혹은 치욕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시들입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는 그런 시들을 더 쓸 수가 없겠죠. 그게 이성복 시 변모의 궤적이기도 한데, 저로선 '어머니'가 삶의 모천이면서 그의 시의 아킬레스건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유 2007-01-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전히 늘 세상과 불화하지만, 끝까지 치욕을 밀고 나가지도 못하는 저로선, 그의 소위 '연애시'들을 좋아합니다만, (그 시들을 연애시라고 규정하는 것엔 반감이 들지요만,) 나는 내가 그의 시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저 위의 글 한 꼭지를 보고서 무릎을 칩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어머니와 연결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수유 2007-01-2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이성복론을 한꼭지 정도는 읽었습니다만, 정리해서 보여주세요, 기형도론도 함께.

로쟈 2007-01-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정리는 하겠지만 시간은 좀 걸릴 거 같습니다.^^; 다른 글빚들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