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참을 먹고 몇 자 적는다. 주로 라면을 먹다가 요즘은 (칼로리를 고려해) 잔치국수로 메뉴를 바꾸었다. 메뉴는 바뀌었을지라도 변함없는 건 식후엔 일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게으른 자의 최소조건이다(내가 가끔 놀란 건 나보다 게으른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지만).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나 훑어보다가(다행히도 이번 주엔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책들이 별로 없다. 두껍고 비싸지만 꼭 갖고/읽고 싶은 책들 말이다). 해서 그냥 하던대로 경향신문의 연재 '작가와 문학 사이'나 옮겨놓는다. 필자가 심진경씨인 것으로 보아 어쩌면 이 란은 2인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경향신문(07. 01. 20) [작가와 문학 사이](3)박민규-우주에서 ‘지구의 일상’을 보다

박민규에게 소설가란 이를테면 ‘딴따라’에 가깝다. 진지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좋아하는 포르노스타와 프로레슬러의 이름 열 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순살까지만 소설을 쓰다가 그 다음부터는 전직 소설가 기타리스트로 살고 싶어 하는 소설가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향해 “조까라마이싱”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그는 포르노스타처럼 대범하지도 프로레슬러처럼 폭력적이지도 않다. 그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온순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는 성실하다. “술, 마시지 않는다. 담배, 피우지 않는다. 인간, 가까이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잘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무규칙 이종 소설가’가 된 것일까. 어쩌자고.



그는 “멸망한 인류의 문명을 발견한 한 마리의 침팬지가 된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침팬지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침팬지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박민규가 애호하는 영화 ‘혹성탈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류와 지구의 멸망 이후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때 인간은 더 이상 사유의, 행위의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유독 인간 아닌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목록을 열거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냉장고(‘카스테라’), 대왕오징어(‘대왕오징어의 습격’), 개복치(‘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너구리(‘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기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핑퐁(‘핑퐁’). 심지어 화성인, 금성인도 등장한다. 박민규는 이렇게 무생물계, 동물계, 탁구계, 그리고 우주계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인간계를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방법론을 우리는 통칭 우주론적 전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지구는 단지 희미한 빛을 내는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인다. 우주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지구는 그저 하찮은, 없어져도 그만인, 선도 아니고 면도 아닌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핑퐁’의 결말처럼 이 지구가 언인스톨되거나 소멸된다 한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주인이 보기에 말이다.

이러한 우주론적 시각은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 지구인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약화시킨다. 악다구니 같은 일상을 뛰어넘는 무한광대한, 그래서 순결한 우주적인 것을 일상적, 속물적 삶과 견줌으로써 지금, 현실은 순간적이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박민규의 인간혐오증(그는 ‘핑퐁’에서 “인간은 싫다. 차라리 양이라면 나는 즐거이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은 크게 보면 세계전복의 망상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작게 보면 비참하고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자기위안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반전은 지구내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민규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하찮게 다루어지거나 반대로 하찮은 것들은 오타쿠적 탐구를 통해 우주에 맞먹는 의미를 부여 받는다. 흔한 사물인 냉장고는 오사리잡탕의 세계를 쓸어 담는 거대한 그릇으로 팽창하거나 반대로 그렇게 뒤섞인 세계는 카스테라로 압축되기도 한다.(‘카스테라’) 냉장고와 카스테라라니. 초현실주의자들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에 비견될 만한 이 기이한 조우를 통해 우리가 자못 거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는 작은 중고 냉장고의 세계 속에서 카스테라로 포맷된다.

그러니 낡아빠지고 물빠진 스웨터를 입었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냉장고와 카스테라만 있으면 될지니. 아니면 탁구대와 라켓, 공만 있으면 될지도. 그것도 아니면 쿨 앤 더 갱의 셀러브레이션을 들으면 될까. 그러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될까. 어쨌든 박민규는 고시원과 아르바이트와 왕따와 꼴찌들에게 행복이란 ‘놀랍게도 따뜻한’ 카스테라 맛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민규는 카스테라를 좋아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07. 01. 19.

P.S. 나도 카스테라로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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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1-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제..발 그것만은...

로쟈 2007-01-2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아니겠죠? 호박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