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과 따님이 '주몽'에 빠져 있는 동안 혼자 서재에서 내주부터의 독서 계획에 잠시 빠져본다. 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을 구하러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하이데거(1889-1976)를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6)와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생각의 가닥을 일단 적어놓기로 한다.

 

 

 

 

사실 가닥이랄 것도 없는 게 지난주에 <예술의 비인간화>(고려대출판부, 2004)를 다시 구한 다음에(이전에 갖고 있던 미진사판은 중역본이었다) 한번 '진지하게' 읽어볼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하이데거의 <철학입문>을 손에 들면서 오르테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이 오르테가의 책도 1929년에 마드리드대학교에서 행한 강의록이기에 시기적으로도 <철학입문>과는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철학입문>은 1928-9년 겨울학기에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행한 강의록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형이상학입문>(문예출판사, 1994)도 실로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오르테가의 <형이상학 강의>(서광사, 2002)까지 같이 읽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해서 묶여진 게 하이데거-오르테가 커플이다.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은 오르테가는 한편으로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정신적 스승'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게 아마도 스페인쪽에서 많이 하는 얘기일 듯한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대중'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바가 얼마간은 인정이 되는 모양이다(특별히 실존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걸로 돼 있다).   

In the 1920s and 1930s under the spell of Ortega y Gasset, Bergson, Spengler, Keyserling and others, a reaction arose among intellectuals against the democratic and social enlightenment. The philosopher's attempt to make the "revolt of the masses" responsible for the alienation and degradation of modern culture, prepared indirectly way for fascism. Politically Ortega favored a form of aristocracy - culture is maintained by an intellectual aristocracy because the revolutions of the masses threaten to destroy culture. From the late 1920s Ortega's thought showed the influence of Martin Heidegger, whose major work, Sein und Zeit (1927, Being and Time), was not transparently political but was later interpreted against his Nazi sympathies.

 

6년의 나이차이니까 그냥 동료나 선후배 정도의 관계일 텐데(오르테가는 독일 유학시절 주로 베를린대학과 마부르크대학에서 공부했고 하이데거 또한 마부르크대학에 몸 담았었다), 여하튼 철학자로서의 절대적 크기를 떠나서 각각 20세기 독일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사유를 비교해가며 더듬어보는 일은 흥미로울 듯하다(단, '레져 클래스'에 속하지 않는 탓에 이런 독서계획을 여유 있게 실행할 만한 여건은 되지 않는다. 다만 준비하고 꿈꿀 따름이다).

철학에 대한 두 사람의 기본적인 입장을 맛보기로 읽어본다. 먼저 하이데거: "우리는 철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철학하지' 않아도 철학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실존하는 한, 언제나 필연적으로 철학한다. 인간으로 거기 있다는 것은 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은 철학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은 철학할 필요가 없다. 신이 철학을 했다면 그 신은 신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의 본질은 한 유한한 존재자의 유한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철학입문>, 15쪽)

이이서 오르테가: "과거와 비교해볼 때 현재는 상대적으로 명백하게 철학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즉 사람들은 철학하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적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인 단어들이 날아오르면 곧바로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먼 길을 여행객이 돌아왔을 때 그의 여행담을 듣기 위해 그에게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철학자들에게로 모이고 있다.(...)  이와 같은 대중들의 정신적 변화와 일치하는 놀라운 사실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철학자는 지난 시기 철학자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정신 상태로 철학을 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에 어떻게 우리가 지난 시기 철학자들을 지배했던 정신과는 완전히 다른 정신으로 철학에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철학이란 무엇인가>, 3쪽)

07. 01. 16.

P.S. 오르테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형이상학 강의>는 모두 같은 역자가 스페인어에서 옮긴 것이다. 한데 <형이상학 강의>의 서두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옥의 티가 눈에 띄어 적어보면, "오르테가는 생적 이성을 인간 삶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제시한다."(10쪽)나 "이러한 도구적 이성으로의 생적 이성을 발견한 오르테가는..."(11쪽)이라고 할 때 '써'는 모두 '서'로 바뀌어야 한다. 처음엔 오타이겠거니 했는데, 반복되는 걸로 보아 역자나 편집자가 한국어에 좀 무신경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러한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생적 이성을 발견한 오르테가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폐기하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Cogito quia vivo).'라는 명제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정열적인 삶은 철학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 삶 자체가 바로 철학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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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隣) 2007-01-1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독서 계획이시네요. 그래요, 나만의 독특한 의미 부여와 발견의 공부만이 긴 공부길을 지치지 않게 하겠지요. 오르테가는 철학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지의 철학이지요. 로쟈님에게 자극받아 저도 어제 받은 철학입문을 그런 식으로 독서해볼까요?^^ 더구나 전 지금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강독회를 하고 있는 처지니, 더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들뢰즈 책 읽으면서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볼까 하다가 바빠서 게을러서 또 잊고 있었거든요. 그런 주제에 이런 말 하긴 체면(?)이 안 서지만,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들뢰즈 만큼 철학하는 인간으로서의 깊은 통찰과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철학자가 있을까 하고 감탄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로쟈 2007-01-1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그렇게 재미있으셨나요? 한 10년쯤 전에 읽을 때 진도가 엄청 안 나가던 책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