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에 실은 '책과 생각' 칼럼을 옮겨놓는다. 강의에서 자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비교하고는 하는데, 마침 어제도 <고리오 영감>에 대해 강의하게 되어 그에 대해 적었다. 엊그제 원고를 쓰느라 세 종의 <고리오 영감> 번역본을 에코백에 넣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원고는 지방강의차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썼다.  



한겨레(18. 09. 14) 라스티냐크와 라스콜니코프라는 갈림길


몇년 전에 프랑스문학을 강의하면서 발자크의 소설과 처음 만났다. 프랑스 소설의 거장을 대학시절에 손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만남'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어로 번역했다는 <외제니 그랑데>도 읽다가 덮은 기억이 있다. 발자크 소설의 재미와 의의를 알아보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때문인지, 문학을 보는 안목이 깊어진 덕분인지 정색하고 손에 든 발자크는 매우 흥미로웠다. 근대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발자크는 제시하는 듯 보였다.

 

무엇이 근대인가. 좁은 의미의 근대를 산업혁명(영국)과 시민혁명(프랑스)이라는 이중혁명의 결과로 이해한다면 본격적인 근대는 19세기 이후에 시작된다. 근대의 대표적 문학장르로서 소설의 전성기가 19세기인 것은 자연스럽다. 그 전성기에 구간을 설정하자면 발자크부터 도스토옙스키까지다. 작품으로는 <올빼미당원>(1829)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까지인데, 근대소설의 표준으로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5)를 꼽을 수 있다.

 

작중에서 ‘부성애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고리오 영감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몰락한 시골 귀족의 아들 외젠 라스티냐크다. 그는 출세를 위해 파리로 상경하여 하숙생활을 하며 법과대학에 등록한다. 법조인이 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지만 마음을 바꾸게 되는데,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상류사회 귀부인들과의 연줄이나 결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지참금을 동원하여 자신의 두 딸을 귀족들과 결혼시킨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과 라스티냐크는 가까워진다. 평생 모은 재산을 딸들에게 쏟아부은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와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는 처지다. 그런 아버지를 두 딸과 사위는 체면상 부끄럽게 여기며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마차만 보낸다. 쓸쓸한 장례식을 치른 라스티냐크가 파리를 향하여 “이제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라스티냐크의 투쟁 선언은 그가 사회에 던지는 첫번째 도전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의 탄생기이기도 하며, 이후 발자크 소설에서 라스티냐크는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에게 투쟁은 어떤 의미였던가. 비속한 범죄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는 “사회의 3대 표현”을 본다. 몇 종의 번역본을 참고하면, 복종(순종)과 투쟁, 그리고 반항(저항)이 그것이다. 시골에 있는 가족들의 태도이기도 한 복종은 따분하고, 같은 하숙생이면서 범법자인 보트랭이 대표하는 반항은 불가능하다. 남은 것은 비록 불확실하더라도 세상(사회) 속으로 나아가는 투쟁이다.



<고리오 영감>이 표준적인 소설이라는 말은 라스티냐크의 투쟁이 근대소설의 기본형이라는 뜻이다. 근대소설은 라스티냐크와 같은 청년 주인공이 상경하여 출세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가 표준일 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1866)이 갖는 특이성이 드러난다. 가난한 법대 휴학생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했지만 사교계의 귀부인들과 아무런 연줄도 없었던 러시아판 라스티냐크다. 신분상승의 경로가 막연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는 주인공의 시도는 과격한 방식을 취하게 된다. 게다가 고리오 영감과 그의 귀부인 딸이 곁에 있었던 라스티냐크와 달리 라스콜니코프에게는 가난한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와 창녀 소냐가 있었을 따름이다.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의 차이이면서 프랑스 소설과 러시아 소설의 차이다.


18.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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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18-09-1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 깊은 곳에서 교수님의 글을 신문으로 봤어요
신문에도 책의 표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18-09-14 23:17   좋아요 0 | URL
아. 작가 그림이 들어갔네요. 온라인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