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를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물론 책에 관한 것이고, 세계 각국의 베스트셀러로 2006년 한해를 되돌아보는 기획기사인데, 그 중 독일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재작년에 방한한 바 있는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역사철학서 <분노와 시간>이다. <냉소적 이성비판>으로 명성을 얻은 바로 그 철학자의 최신간이다. 기사를 봐서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책인데 내년에 번역돼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전에 1권만 나오고 소식이 없는 <냉소적 이성비판> 2권이 먼저 번역돼 나와야겠지만.


한겨레(06. 12. 29) 베스트셀러로 짚어본 2006 세계…유럽편
독일에서는 가을 출간된 <분노와 시간>(Zorn und Zeit)이라는 에세이 형식의 역사 철학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철학서가 베스트셀러에 들기 힘든 건 어디나 매한가지이지만, 이 책은 독일 출판계에서 하나의 신화를 이뤄냈다(*주어캄프출판사에서 출간했고 356쪽 분량이다).

저자인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68세대로 칼스루에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텔레비전 철학토론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그는 <냉소적 이성 비판>으로 이미 1980년대에 베스트셀러 철학서를 내놓았다.

‘정치, 심리적 시도’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세계 역사를 심리, 인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슬로터다이크는 ‘분노’라는 감정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즉 억압되어 쌓인 분노가 근대 해방운동, 지난 세기의 전체주의까지의 역사에 기본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서구사회의 역사는 ‘분노 감정의 경영관리’의 역사라고 말한다. 공동체의 분노의 집합은 재화의 축적에 비유된다. 대표적인 예로, 레닌의 코민테른은 인민들의 분노가 모여 작용하는 ‘분노의 세계은행’이다.
반면, 이슬람 세력은 차세대 역사 변화의 원동력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왜냐면 이슬람은 엄청난 선교력이 있고, 특히 소외되고 약한 자들의 마음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의 좌절한 젊은 남성들이 서구세계에 대해 갖는 시기심과 분노는 역사를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슬로터다이크는 이들이 정치적 저항세력으로서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이슬람 세력은 정치·문화적 알맹이가 부족해 공산주의 같은 ‘저항세력의 세계은행’을 설립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다.(베를린/한주연 통신원)
06. 12. 29.






P.S. 출간돼 있는 역사철학서 몇 권을 나열해본다. 슬로터다이크의 '역사철학'은 아마도 이 계열의 맨마지막 장에 와야 할 듯싶다. 그리고, '냉소적 이성' 외에 '분노'란 말은 슬로터다이크의 키워드로 더 등록해야겠다. '분노의 관리로서의 세계사'는 '자유의 확장으로서의 세계사'(헤겔)와 짝패를 이룰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