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잠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후유증'으로 진종일 리포트와 씨름하게 됐다. 150여 명의 리포트와 시험지를 채점하는 일이 생각만큼 만만찮다. 예전엔 학기말에 350명까지 채점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탓(?)인지 100명만 넘어도 숨이 차다(100통이 넘으니 이메일 발송도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저녁을 먹고 나서 속이 다 울렁거린다. 이럴 때 딱 어디론가로 '넘어가고' 싶다. 비욘드(beyond)란 전치사가 머리속에 떠오른 이유이다. 그리고는 지난주에 나온 신간 <그레이트 비욘드>(지호, 2006)에 대해 몇 자 적고 싶어졌다.

 

 

 

 

책의 부제는 '고차원, 평행우주 그리고 만물의 이론을 찾아서'이다. "인간의 인식 너머에 있는 차원과 그것을 탐구한 물리학자들의 이야기. 지난 백 년 동안 이루어진 발전으로 중요한 물리적 개념이 된 고차원에 대해, 지은이 폴 핼펀은 고차원 이론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까지 모두 담았다."라는 게 책의 개요이고.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와 <초공간>이 최고의 책들이다(비록 나는 <초공간>만 읽었지만).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함께 이 분야의 필독서 내지는 필수 소장도서 되겠다. 젊은 물리학자 폴 핼펀이 차세대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까?

문화일보(06. 12. 22) 인식한계 넘어선 고차원이론 ‘미지’를 탐구해 온 과학자들

물, 불, 흙, 그리고 공기. 그리스 자연철학 이래로 세상을 구성하는 네가지 근원적 물질로 이해됐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다섯번째 물질에 대한 탐구가 계속됐으며 유력한 후보로 빛이 꼽혔다. 물리학에서 이 제5원소의 존재를 뛰어넘어 버린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본질을 넘어, 속도에 착안하면서 상대성이론이라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창을 열었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일반상대성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넘어 이를 통합하는 ‘통일장’이론에 몰두했지만 실패했다. 이 책은 최신 과학이론을 ‘더 그레이트 비욘드(The great beyond)’, 현재를 넘어서는 위대한 무엇에 접근해온 과학자들의 기록이다.

현재 인식 가능한 차원은 1차원 점, 2차원 면, 3차원 입체, 그리고 4차원 시간이다. 이런 4차원 속에 존재하는 우주의 힘은 전자기력, 중력,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 4가지 힘이다. 이 가운데 인간이 현재 가장 잘 알고 있는 힘은 전자기력이다. 19세기 맥스웰이 전자기현상을 네 개의 식으로 기술하는 데 성공한 이래 현재 가장 작은 세계에서의 전자기적 현상을 양자전기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이 중력이다. 17세기 뉴턴이 발견해 20세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새롭게 해석됐지만 전자기력과는 달리 아주 미세한 세계에서는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약한 상호작용은 1896년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방사성 붕괴, 즉 약한 핵력이고, 마지막 강한 상호작용은 원자핵이 왜 분해되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우주의 발생과 함께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네 가지 힘은 고집 센 형제들처럼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네 개가 한데 모이면 현재의 4차원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 ‘더 그레이트 비욘드’를 도입하면 거짓말처럼 설명이 된다. 이것이 20세기초 독일의 수학자 데오도르 칼루차와 스웨덴의 물리학자 오스카 클라인이 제시한 ‘칼루차-클라인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과 관련 3년 가까이 고민하다가 1919년 “이론의 형식적 일치에 놀라울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비주의의 영역으로 흘러가면서 무관심해졌다가 최근 초끈이론, M이론 등 다차원 이론을 통해 새로운 힘을 받고 있다. 또 새로운 강입자가속기 등의 개발은 실험적 입증을 가능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과연 미지의 새로운 차원이 밝혀질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새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김승현 기자)

경향신문(06. 12. 23) 재미있고 쉬운 ‘최첨단 물리학’

이론물리학의 묘미는 사람의 생각만으로 자연의 숨은 비밀을 밝히는 데 있다. 즉, 비싼 실험장비 없이도 펜과 종이만으로도 우주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순수이론물리학에서는 매우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 질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왜 공간에는 가로·세로·높이만 있는지,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고, 시간을 나타내는 데는 하나의 숫자만 있으면 되는지 등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다행히 이론물리학에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관적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가 간혹 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한 이론물리학자는 매우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운이 따른 물리학자들이 칼루차와 클라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가로, 세로, 높이라는 세 개의 공간 차원을 뛰어넘는 여분의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여러 가지 자연의 기본 상호작용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을 제안했다.

자연의 기본 힘을 설명하는 방법 중 가장 우아한 것은 중력을 4차원의 시공간이 굽어진 것으로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이다. 중력 외에도 자연의 기본 힘에는 세 가지가 더 있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이다. 이 힘들을 설명하는 이론은 일반상대론과는 판이하게 달라 보인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기본 힘을 설명하고 있음은 무언가 현재까지의 물리학이 덜 발전해서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더 큰 이론적 체계에서는 네 가지의 기본 힘들이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적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칼루차와 클라인은 4차원 이상의 여분의 차원이 있는 시공간에서의 중력이 4차원에 투영될 경우 중력 이외의 힘들로 나타남을 계산을 통해 보였다.

20세기 초에 발표된 이러한 칼루차와 클라인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 들어와 11차원의 초중력이론(supergravity)으로 발전했으며 11차원이 모든 힘이 들어갈 수 있기에 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10차원의 초끈이론(물질의 근원이 점입자가 아닌 작은 진동하는 끈으로 되어있다는 이론)이 대두되어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이론의 강력한 후보로 논의되고 있다.

사실 이론물리학에서는 아이디어의 부침이 심하다. 그러나 칼루차와 클라인의 여분의 차원의 아이디어는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론물리학의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사용되고 있다. 폴 핼펀은 20세기 물리학 중에서도 우주와 통일장 이론에 관해 일반인들에게 많은 책을 써오고 있는 저자이다. 이번에 출간된 ‘그레이트 비욘드’에서 핼펀은 최첨단 물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재미있는 글 솜씨를 잘 조합해 매우 읽기 쉬운 책을 만들어냈다. 보기 드문 책이다. 이러한 책을 접하는 사람은 제목만 들어도 어렵게만 다가오는 통일장 이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최신 과학이론에 대한 과학사라고 볼 수 있다. 과학사라 해서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없는 과거의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부분에는 물론 과거 물리학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모아놓았지만-어떻게 이렇게 좋은 자료를 많이 수집하였는지 감탄할 만하다- 뒷부분에는 아직도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의 산 증언이 많이 기록돼 있다. 특히 반가운 것은 필자가 미국에 막 유학 갔을 당시 칼루차와 클라인 이론으로 예일대학이 유명했는데 책에 지도교수 초도스의 일화가 잘 담겨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8할 정도를 할애해 칼루차와 클라인의 기하학을 통한 통일장 이론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사에 흥미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제12장에서는 현재 물리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여분의 차원이 크다는 ‘브레인 월드이론’ 등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의 우주와 아주 가까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평행한 우주가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다른 차원과 다른 우주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면, 인간이 지구만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이 우주에서의 중요한 위치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분야에 대한 책을 몇 권 이미 섭렵한 독자에게는 물리학 자체에 대해서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낳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즉, 물리를 공부했건 안했건 간에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이론물리학자들 간의 대화와 상호 교류에 관한 증언은 이 책만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몇몇 물리학자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또 아쉬운 점은 이와 같은 훌륭한 책이 한국사람에 의해서 직접 집필된 적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그런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남순건|경희대교수·물리학)

06.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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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12-27 00:20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비로그인 2006-12-27 02:12   좋아요 0 | URL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브라이언 그린의 신작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몹시 기대됩니다..

로쟈 2006-12-28 16:2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책은 갖고 있는데, '명퇴'라도 해야 읽을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