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06. 12. 01) 서양철학의 새지평 개척 베르그손 철학 다시 읽기

근대 서양 철학과 과학의 대표 주자로, 정신과 물질 이원론자인 데카르트와 기계적 운동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꼽힌다. 그리고 이같은 전통은 인간 중심적인 기독교적 인간관과 결합한, 서양 근 대 문명의 한계로도 이해된다. 인간의 이기적인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경제 제일주의를 비판할 때 서양 근대의 기획이 도마에 오 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 은 불교나 노장, 혹은 유학의 양명학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 다.

하지만 동양의 불교나 노장, 그리고 양명학이 이른바 정파(正派)라 할 유학의 주자학 입장에서 보면 사파(邪派)였듯이, 서양에서도 불교나 노장에 비견할 만한 지적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들이 근래 프랑스에서 일군의 걸출한 철학자들을 만나 자본주의를 축으로 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탁월한 설명력을 발휘했으니, 바로 현대 프랑스 철학이다. 그리고 그 절정에는 들뢰즈가 서 있는 듯 보인다.

한국에서 베르그손이 각광받게 된 계기도 들뢰즈 철학의 곳곳에 서 배어나는 베르그손의 영향력 때문이리라. 들뢰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니체와 함께 베르그손을 꼽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린비 출판사가 ‘연구공간 수유 + 너머’와 함께 기획한 ‘리라이팅(rewriting·다시 쓰는) 클래식’의 하나로출간된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은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쓴 것이다.

‘물질과 기억’은 베르그손이 37세 되던 1896년 출간돼 당시 고교 교사였던 베르그손을 단번에 유명인사로 만든 책. 당시까지 이어져 온 철학 전통은 물론, 심리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탁월한 분석으로 출간되자마자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으나, 비전문가가 이해하기에는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의 철학적 방법론과 주요 개념의 대부분을 포괄하면서도, 심 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약 20년간 베르그손에 천착하며,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를 번역하고 베르그손 연구서를 낸 저자가 ‘물질과 기억’ 에서 드러나는 베르그손의 철학을 쉽고도 입체적으로 조망한 책이다. 어렵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개념에 대해서는 부록까지 만들어가며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에는 그림까지 삽입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물론 ‘리라이팅 클래식’의 첫 책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처럼 게으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문외한이더라도 조금만 집중해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 면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이미지’와 ‘기억’이라는 독특한 개념들로 설명하면서, 서양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베르그손의 면모를 즐길 수 있다.(김종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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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7 02:14   좋아요 0 | URL
물질과 기억’은 베르그손이 37세 되던 1896년 출간돼 당시 '고교 교사'였던 베르그손을 ...<- 이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군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굉장히 부러워집니다..

로쟈 2006-12-28 16:26   좋아요 0 | URL
프랑스에서도 드문 경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