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이란 제목의 책이라면 어떤 내용이 연상되는가? 아무래도 그리스 비극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쓴 인문교양서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사실이 그러하며 원제 또한 그러하다. 이번에 번역본을 낸 출판사에서도 한번쯤 고민을 해봤겠지만 '비극'보다는 '러브'와 '섹스'의 선정성에 기대/내기를 건 듯하다. 표지까지 어두침침해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목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책인 듯싶어서 부랴부랴 낚시질을 해둔다.

 

경향신문(06. 12. 23) 고대 그리스인도 ‘몸짱’에 열광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그리스 문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그리스 비극의 세계적인 권위자. 그의 저서 ‘그리스비극 읽기(Reading Greek Tragedy)는 이 분야의 대표적 참고문헌이다(*그렇다면 이 책이 먼저 소개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조만간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은) 그런 그가 섹스 몸 결혼 종교 오락 정치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현대를 조목조목 비교해놓은 대중교양서다. 2004년작.



일례로 현대의 ‘몸짱’ 열풍과 비슷한 몸만들기 노력이 고대 그리스 시민(여성과 아이와 노예를 제외한 남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자넨 올림픽 경기 선수 못지않게 몸을 관리해야 하네”. 이는 소크라테스가 몸이 빈약한 친구 에피게네스에게 한 말이다. 훌륭한 몸은 자아감을 높였던 만큼 체육관과 다이어트 및 운동안내서가 번창했다.

그리스인들의 부부관계가 가족유지를 위한 형식적인 것이었다는 대목도 있다. “아내와 연인처럼 같이 자는 것은 간통만큼이나 혐오스러운 짓”이라는 세네카의 말대로라면 아내에게 애정을 갖는 것은 비극적이거나 희극적인 일이었다.

동성애는 보편적일 뿐 아니라 명예롭게 받아들여졌다. 사춘기를 지나 턱수염이 나기 직전의 미소년은 성인 남성들에게 갈망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그 소년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벼락을 맞은 듯 눈을 홉뜨면서 혼란스러워 했다. 모든 이들이 그를 조각상처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소년의 망토 안을 얼핏 보고서 활활 타올라 더 이상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타우레아스체육관에서 미소년 카르미데스를 본 뒤의 느낌을 이렇게 토로했다.

상류층 여성이 거친 남성에게 끌리는 일도 다반사였던 것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의 부인인 파우스티나는 한 검투사를 좋아하게 돼 그것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황제는 즉시 그 검투사를 죽이게 해서 왕비와 잠자리를 갖기 전 그의 피로 목욕을 하도록 했다.

여성에 대한 비하는 서구문명의 전범인 고대 그리스의 치부였다. 미술이나 조각작품에서 여성의 몸을 볼 수 없는 것은 여성의 몸을 남성의 몸의 기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혈액과 체액이 흐르는 관이 서로 연결돼 있는 항아리로 간주됐는데 이것이 잘 뚫려있는지 보기위해 여성의 질 속에 밤새 마늘조각을 넣어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입을 통해 냄새가 올라오는지 확인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후대인들에게 숭모의 대상이었던 고대 그리스를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모습으로 복원해놓는다. 그 목적은 “네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면 너는 언제나 어린아이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라는 키케로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한윤정 기자)

06. 12. 23.

 

 

 

 

P.S. 그리스 비극과 관련한 책 몇 권의 이미지를 띄워놓는다.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과 함께 시중에서 구해볼 수 있는 작품집에는 현암사에서 출간된 '그리스비극' 시리즈가 있다. 천병희 교수의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와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는 이 분야의 '업적'이다. 그리스 비극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다루고 있는 사이먼 골드힐의 책과 같이 읽으면 유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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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티우스 2006-12-24 19:58   좋아요 0 | URL
이 '우리'의 문제... 저자 혹은 기자에 따르면, 한국인인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고대 그리스를 알아야 하는군요... 가히 그리스는 우리의 또 다른 '또 하나의 조국'입니다....

책 자체는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네요...^^

로쟈 2006-12-24 20:08   좋아요 0 | URL
철학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