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받은 책 중의 하나는 들뢰즈의 <푸코>(동문선, 2003)이다. 다른 판본인 <들뢰즈의 푸코>(새길, 1995)를 갖고 있고 또 동문선의 책이 출간 당시 워낙에 '고가'여서 따로 구입하지 않았었는데, 영역본을 주대본으로 한 <들뢰즈의 푸코>가 부정확한 대목이 여럿 된다고 하여 불어본을 옮긴 <푸코>까지 주문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진 이유는 얼마전에 <바보배>(안티쿠스, 2006)도 출간된 김에 모셔두기만 했던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03)를 읽어볼까 해서 러시아어판과 같이 꺼내두었다가 이왕이면 <지식의 고고학>을 한번 더 읽고 시작하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푸코>의 첫장은 <지식의 고고학>을 다루고 있다.

 

 

 

 

기억에 나는 그 책을 10년쯤 전에 영역본과 같이 읽었더랬다. 마치 10년전 일기를 꺼내읽듯이(그맘때 나는 갓 서른이 된다는 묘한 설레임을 갖고 있었을까?) 다시 책을 손에 든다. 그리고 <지식의 고고학>에 대한 리뷰들을 잠시 찾아보니 역자인 이정우 원장의 글이 눈에 띈다. 책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고전"이라는 강조밖에 하고 있지 않지만, 워밍업으로 읽어봐도 좋겠다.

경향신문(04. 10. 15) 담론의 논리적 기초 서술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해서 한국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후기 산업자본주의 시대, 정보화 시대, 포스트모던 시대, 탈근대의 시대 등 무엇으로 부르든 이 시대는 군정(軍政)시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다양한 특성들을 보여준다.

시대의 이런 변환과 더불어 철학에서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곧 19세기적인 사유 양태들(현상학, 해석학, 변증법 등)에서 새로운 사유양식들로의 이행이다. 이 새로운 사유양식들은 매우 이질적이어서 일반화하기 힘들지만, 이 사유들이 군정시대와는 크게 다른 90년대를 사유하기 위해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미셸 푸코이다.

유신 이후 한국 사상을 이끌어간 것은 마르크시즘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 데리다의 탈구축주의 등이 주도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푸코는 알튀세와 더불어 정확히 그 사이에 위치한다.

한국에서 푸코의 사유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는데, 이 시대는 타자들(=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대이며, 담론계가 전반적으로 재편성되던 시대이며, 마르크시즘 이후의 새로운 실천 방식들이 모색되던 시대이다. 이것은 곧 두 적대세력의 시대, 과학성의 시대, 혁명의 시대로부터의 단절 또는 변환을 함축한다.

한국에서 푸코의 사유는 무엇보다 권력의 이론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즉 푸코의 사유는 ‘지식-권력’의 틀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때로 이 생각은 사회학적 환원주의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곧 푸코에게서 ‘지식(savoir)’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것은 곧 한국에서 푸코는 보다 현실적인 정치문제와 관련해서만 다루어지고 그 과학사적 맥락이나 철학적 토대는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음을 함축한다. 이것은 또한 푸코 사유에의 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선용(善用)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지식의 고고학’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위상을 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저작은 푸코 사유의 허리에 위치한다. 이전의 고고학적 저작들(‘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과 이후의 계보학적 저작들(‘감시와 처벌’ ‘지식에의 의지’) 및 윤리학적 저작들(‘쾌락/기쁨의 선용’ ‘자기 돌보기’) 사이에 위치하면서 푸코 사유의 전반적인 문제의식, 논리적 기초, 원리적인 개념들, 중요한 방법들 등을 전반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저작이다.

이 저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담론’이다. 90년대에 새롭게 도래한 단어들 중 아마도 가장 넓게 퍼진 단어들 중 하나가 담론일 것이다. 이 개념은 곧 과학적 명제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넓은 언어적 차원을 가리킨다. 즉 담론 개념은 90년대에 있었던 문화적 변화들을 단적으로 응축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지식의 고고학’이 새롭게 도래한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고전인 것은 이 때문이다.(이정우|철학아카데미 원장)

06. 12. 14.

P.S. <지식의 고고학>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은 그의 콜레주 드 프랑스의 취임강연인 <담론의 질서>(서강대출판부, 1998)이다. 이 또한 새길사(1993)에서 먼저 출간되었던 책이고 나는 그 판본으로 읽었었다(영역본에는 두 텍스트가 합본돼 있다).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계간 <세계의 문학>에 게재된 적도 있다. 게리 거팅의 <미셸 푸코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백의, 1999)도 <지식의 고고학>에 대한 유용한 안내를 포함하고 있다.

Археология знания

러시아에서 내가 구한 책들 가운데 아끼는 책의 하나는 바로 러시아어판 <지식의 고고학>(2004)이다. 마침 내가 체류 중에 책이 나왔고, 장정도 예쁘게 돼 있다. 416쪽 분량이니까 두께도 만만치 않지만(국역본보다 왜 더 두꺼운지는 아직 모르겠다. 비록 들뢰즈의 <지식의 고고학>론이 부록으로 포함돼 있긴 하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여하튼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치지만 2007년 1월에 읽을 책으로 <지식의 고고학>을 미리 예약해 두기로 한다. 10년쯤 시간을 되돌려 (비록 '고고학적 시간'은 아니더라도) '회고적 시간'을 잠시 살아보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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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난해하던데요 ;;;

로쟈 2006-12-15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역자였나) '회색'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풍부한 사례들을 다룬 푸코의 다른 저작들에 비하면 난해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게 오히려 매력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