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기사 하나를 옮겨온다. 북데일리의 '세계의 책' 코너에서 가져온 것인데, 희귀하게도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주저 중 하나의 <호모 사케르>의 국역본이 근간예정인 상태에서 해를 넘기는 것 같아 유감스럽지만 대신에 영역본들이라도 뒤적거려봐야겠다(*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이 최근 출간됐다. -08. 11. 14).  

북데일리(05. 12. 05) 선악의 이분법 뛰어넘은 '사도 바울로'

기독교 성인 사도 바울로(서기 10~67년)는 다마스쿠스로 여행하다가 예수의 출현을 보고 사흘간 실명 상태를 겪은 끝에 소명을 받고 제자가 됐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이자 신학자였던 바울로는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로 자신의 종교적 사상을 전해 그 가운데 14통이 신약성서에 포함돼 있다.

이중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이방인이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로 떠오른 바울로 사상의 진수를 가장 분명하고도 명쾌하게 담고 있다. '신앙과 의화(義化)'와의 관계를 소개하는 이 편지는 '성경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듯 다른 편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진수가 들어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미학자 이자 베네치아건축대학 교수인 조르지오 아감벤(63. Giorgio Agamben)은 바울로의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앞부분에 나오는 10개 단어를 텍스트로 하여 매우 획기적인 시각으로 서양사상의 사유적 이분법을 철저히 분석해 냈다. 그의 저서 <남은 시간 :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스탠포드대출판부. 2005)는 그 결실이다. 영어 원제는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아감벤은 그동안 죽은 자와 산 자, 동물과 인간, 육체와 정신, 자연과 문화 등 서구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이원적 대립의 사유구조 속에서 중간지대를 설정, 그 '무언가'의 상태가 현대사회를 지배한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무언가'와의 관계 속에서 아감벤은 '경계'와 '나머지'라는 말을 적시하는 조건은 이원적 대립 관계에 수용되지 않고 계속 '남는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 전형이 로마시대 '성스러운 인간'이란 이름 아래 '인간 외 인간'으로 차별화된 '호모 사켈'이며 혹은 아우슈비츠에서 '회교도'로 불리며 유대인을 돌보고 그들의 최후를 목격한 사람, 죄수도 간수도 아닌 '나머지의 사람'이다.

책은 이런 발상의 사유를 하게 된 저자 특유의 메시아에 대한 이해를 바울로의 편지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낸다. '메시아'란 히브리어로 세계 종말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구세주를 나타내며 그리스어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 예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유태교에서는 아직도 도래하지 않는 메시아를 '지금' 항상 기다리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이미' 도래한 메시아(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차이가 있다.

아감벤은 '지금'과 '이미'의 중간에 놓인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 사건이 결코 '지금' 완료된 것이 아니라 본래 부정적일 미래를 구속하는 응축된 형태로서 점차 다가오는 특이한 '지금의 때'를 밝혀낸다. 이것이 '나머지 시간'이다. 그때 구원에 대한 갈구를 통해 '자유인' 바울로가 기독교의 사도가 된 시점이 바로 '나머지 시간'이다. 이런 사상적 관념은 기독교인 바울로에게 인종, 종교, 성별이라는 차이는 의미가 없고 현대인에게 '약함' 관심을 둘 때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서 '바울로'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노수진 기자)

06. 11. 30.

P.S. 아감벤의 책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스탠포드대학의 '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시리즈로 나란히 나온 알랭 바디우의 <성 바울: 보편주의의 정초>(영역본 2003)와 테어도어 제닝스의 <데리다 읽기/ 바울 생각하기>(2005) 등이 있다. 진작에 구해놓은 책들이지만 읽을 여가/기회를 아직 못만들고 있는 책들이다. 아직은 '나머지 시간'을 살 나이가 아닌 탓인가?..

 

 

 

 

바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신학'과는 무관하며 지젝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다. <믿음에 대하여>나 <혁명이 다가온다> 등에서 바울에 대한 언급을 읽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참고로 지젝이 추천하는 바울 관련서는 독일 철학자 야곱 타우베스(Jacob Taubes; 1923-1987)의 <바울의 정치신학>(199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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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 2006-11-30 16:3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서재는 늘 좋은 글,정보들이 넘쳐나는군요..^^ 요즘 게을러진 책읽기에 탄력을 주고자 아감벤의 '바울' 불어본,영어본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올 겨울 공부계획이죠. 90년대 후반 바디우의 '바울'의 출간되었을 때 상당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종영씨가 이행총서로 계획했다가 포기한(버린?) 신학적 사고(Christian Jambet의 '알라무트에서의 위대한 부할'도 저작권만 사놓고 포기됨)가 저에겐 아직도 매력적입니다. 사실 바디우나 아감벤의 '바울'은 ' 네그리의 '욥기'보다는 더 매력적입니다.... 꼬르벵(H.Corbin)의 책들('이슬람철학사'..)와 함께 농사꾼에겐 이 겨울이 공부의 계절이 될듯합니다..

"종말의 도래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곧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시간 이해였고, 그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자이다.(124쪽)" 알랜 시걸, <예수 2000년>,대한기독교서회

로쟈 2006-11-30 16:39   좋아요 0 | URL
제 경우 바울에 대한 관심은 지젝에 의해 촉발된 것인데, 바디우, 아감벤 등이 모두 바울론을 쓰고 있어서 이게 거으 '트렌드' 수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련서 몇 권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두려고 합니다...

아포지 2006-11-30 18:01   좋아요 0 | URL
관려서 정보들을 모으신다니.. 참고로.... Theodore W. Jennings, Jr. 의 "Reading Derrida/Thinking Paul" 라는 책도 있더군요. 데리다에 관한 책이니 벌써 아시는지도 모르겠네요...

2006-11-30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30 20:13   좋아요 0 | URL
apouge님/ 예, 갖고 있는 책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님/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진득하게 매달려 있지 못하는 성격/처지인지라...

Nabi 2006-11-30 20:56   좋아요 0 | URL
지젝이 The Parallax view에서 네그리와 아감벤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아감벤의 생각이 더 묵시적(265쪽)이라고 지적한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울과 관련한 묵시적 사고에 대한 참고 자료들은... 데리다 <최근 철학에서 제기된 묵시론적 목소리에 관하여>, 지젝,바디우와 활발히 교류하는 신학저널JPS(http://www.philosophyandscripture.org)실린 바울과 관련된 글들. Ward Blanton의 Apocalyptic Materiality: Return(s) of Early Christian Motifs in Slavoj Zizek(http://www.jcrt.org/archives/06.1/index.html).. 리요타르의 책 The Hyphen : Between Judaism and Christianity (Philosophy and Literary Theory)도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얇은 책이 왜그리 비싼지 아직도 구입을 미루고...)

로쟈 2006-11-30 21:14   좋아요 0 | URL
Nabi님/ 거의 전문적인 서지인데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리오타르의 책 같은 건 도서관에서 주문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