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시로 오늘 쓰려던 건
로쟈,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였지
라스콜리니코프로 불렸던 라스콜니코프
청량리를 지나간다는 생각에
삼천포로 빠져 버린 라스콜니코프
로지온의 애칭 로쟈를 닉으로 쓰고 있으니
나는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생각
무얼 쓰더라도 라스콜니코프가 된다는 생각
라스꼴니꼬프도 어렵지 않다
라스꼴이라고 떼줄 수도 있다
라스콜은 분열이란 뜻이니 라스콜니코프는
분열적 인간, 나는 분열증 환자 같으니라구
라고 적었지 아주 오래전 리포트에
그 라스콜니코프가 도끼를 외투 안쪽에 걸고
전당포로 걸어갈 때 나도 동행했던가
칠백 삼십 보를 걸어갈 때 망이라도 보았던가
전당포 노파 알료나의 정수리를 도끼로 내리칠 때
(연소자 관람 불가랍니다)
도끼날도 아니고 도끼등으로 내리칠 때
나도 옆에 있었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알료나는 쓰러졌지
오 로지온!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라스콜니코프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알료나의 장롱과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지
무엇이건 뒤져야 했지
인기척이 느껴져 화들짝 뛰쳐나왔네
리자베타가 거기에 있었네
알료나의 이복자매 리자베타가 거기에
있다니 라스콜니코프는 다시 도끼를 치켜들었다네
리자베타의 이마를 내리쳤다네
(제발 연소자는!)
맙소사, 리자베타는 전당포에 없어야 했다네
리자베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네
라스콜니코프는 정신이 없었다네
모든 걸 계획해도 소용 없는 일
우리는 하려고 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하듯이
머리가 하는 일을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듯이
완벽한 범죄이론이 있어도 완전범죄는 없다네
라스콜니코프는 정신없이 하숙집으로 돌아왔다네
어제의 라스콜니코프는 더이상
오늘의 라스콜니코프가 아니라네
오 로쟈, 사랑하는 아들아
어머니의 편지가 서랍에 있었지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들을 이해하지 못할 테지
로쟈는 다시는 어머니를 껴안지 못할 테지
오 로쟈는 자기 자신을 죽였다네
이렇게 써도 될까 싶지만
(요즘은 죄와 벌도 안 읽는다고 하니)
로쟈의 일은 내가 잘 아는 일
무얼 쓰든지 라스콜니코프의 이야기
에필로그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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